나일강이 시작되는 곳, 엘레판티네 섬
나일강이 시작되는 곳, 엘레판티네 섬
2016.10.20 10:23 by 곽민수

이집트의 도시들은 대부분 나일강을 가운데 두고 둘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아스완 역시 나일강을 기준으로 동안과 서안으로 나뉘죠. 물론 이곳에서도 동안은 삶의 공간, 그리고 서안은 죽음의 대지로 구분됩니다. 동안에서는 굉장한 규모는 아니지만 그래도 있을 건 다 있는 도시를 경험하실 수 있지만, 서안에는 거의 자연 그대로 남아 있는 황량한 대지와 곳곳에 산재해 있는 고대의 무덤만이 있을 뿐입니다. 아스완 서안에는 많은 무덤들이 있지만 이 무덤들은 룩소르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왕묘는 아니고, 대부분 이 지역의 유력자였던 귀족들의 무덤입니다.  

하지만 이곳 아스완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는 도시가 있는 동안도, 무덤이 있는 서안도 아닌 강 한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섬, '엘레판티네(Elephantine)' 입니다. 고대에는 아스완이라는 지명이 없었을 뿐더러 나일강 동안을 중심으로 하는 도시도 아직은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사람들이 거주하는 취락과 다양한 행정, 국가시설은 모두 나일강 위에 떠 있는 엘레판티네 섬 위에 있었습니다.

엘레판티네 섬 (사진 정 가운데)과 아스완. 동안에 형성된 취락과 사막 그대로 남아 있는 서안의 대비가 분명하게 보입니다. (사진:구글어스)
엘레판티네 섬
엘레판티네 섬 전경

자연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오랫동안 이집트의 최남단 경계는 아스완이었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그 경계는 아스완에 있는 엘레판티네라는 섬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고대 이집트에는 ‘엘레판티네부터 델타의 늪지대까지’라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이 표현은 이집트인들이 생각하던 이집트의 지리적 범위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어쩐지 성경에 등장하는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는 표현이 떠오르는데, 어쩌면 이 표현은 이집트에서 널리 쓰이던 표현을 흉내낸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이야 이집트는 그저 옛 문명의 영화를 간직한 뜨거운 사막의 나라 정도로 여겨질 뿐이지만, 고대의 이집트는 주변 지역에서 가장 열렬히 모방의 대상이 되던, 최고의 ‘문화 선진국’이었습니다.

이집트의 남쪽 끝, 엘레판티네 섬은 이집트 문명 초창기부터 지정학적으로 무척이나 중요한 거점이었습니다. 우선 이곳은 남쪽으로부터의 이민족 침입을 막아야 할 국경지대였습니다. 이집트 남쪽에는 호시탐탐 이집트를 노리는 누비아(혹은 쿠시)가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누비아의 힘은 때에 따라 크기가 자주 바뀌기는 했지만, 25왕조 시대가 되면 결국 이집트를 정복하는데 성공하기도 합니다. 그런 연유로 이곳에는 고왕국시대부터 잘 갖춰진 요새가 있었고 그곳에는 수비대가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요새의 흔적을 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엘레판티네 섬의 고왕국 시대 요새 유적
누비아인 궁수들. 누비아인들은 이집트에서 용병으로 자주 고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이집트인들은 보통 피부색이 붉은 색으로 묘사되는데 반하여, 이들은 주로 검은색으로 묘사되었습니다.
후이의 무덤에 그려진 누비아인들

삼엄한 경계가 행해지던 이곳은 또한 분주한 교류의 장이기도 했습니다. 남쪽원정을 떠나는 사람들과 그 원정에서 돌아오는 이들,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돌아오는 신기한 물건들, 또 남쪽지방에서 그곳의 특산품을 팔러 오는 상인들과 그 물건을 구입하려고 하는 이집트인들. 그야말로 이곳은 이곳저곳에서 생산된 상품과 정보가 모이는 생기 넘치는 시장이기도 했습니다. 특히나 이곳에서 거래되었던 물품들 가운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상아였는데, 상아는 선왕조시대부터 이집트의 지배계층이 애용하던 물품이었습니다. 어쩐지 낯익은 이 엘레판티네라는 이름도 영어단어 엘리펀트(elephant⋅코끼리)와 어원적으로 관계가 깊은 그리스어일 뿐더러, 고대에도 이 섬은 역시 ‘코끼리’를 뜻하는 ‘아부’라고 불렸습니다.

이곳 엘레판티네에서 영향력을 갖고 있었던 지방호족들은 항상 ‘남쪽 관문의 수호자’라 불렸습니다. 이들은 끊임없이 탐험대를 조직하여 남쪽으로 보내 진귀한 물건들을 획득하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썼습니다. 춤추는 난쟁이를 데려와 젊은 왕 페피 2세를 기쁘게 하였다는 하르쿠프(Harkhuf)의 이야기나, 원정길에 살해당한 아버지의 주검을 찾기 위해 떠난 모험을 성공리에 마치고 결국에는 아버지 메쿠(Mekhu)의 시신을 이집트로 모시고 돌아오는 사브니(Sabni)의 이야기 등은 모두 이 시기, 이곳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들입니다. 이후 중왕국과 신왕국시대를 거치며 이집트의 정치적 국경이 남쪽으로 확장되면서 엘레판티네섬은 국경요새로써의 중요성은 낮아졌습니다. 하지만 신왕국 말기에 이집트의 정치력 영향력이 감소하며 남쪽의 누비와의 쿠시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상실하게 되었고, 이때에 엘레판티네의 중요성이 다시금 되살아났습니다.

사브니의 무덤 부조

하지만 이런 정치적인 이유와는 별개로 엘레판티네섬은 종교적으로도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 섬 밑에 있는 한 동굴에서 물이 흘러 넘쳐 헤매다 나일강에 홍수가 난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기적의 주관자는 숫양머리 모양의 창조신 크눔(Khnum)이었습니다. 크눔신은 두 여신, 즉 배우자인 새티스(Satis)와 딸인 아누케트(Anukhet)와 함께 삼존을 이룹니다. 엘레판티네 섬에는 이들 세 신을 위한 신전이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건설되었고, 또 나일강의 범람과 관계가 깊었던 만큼 그곳에는 나일로미터라고 불리는 나일강 수위계도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오늘날에도 그 흔적들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이토록 많은 이야깃거리를 품고 있는 엘레판티네 섬, 다음 회에 집적 가보시죠.

크눔 신
엘레판티네 섬의 나일로미터

 

/사진:곽민수

필자소개
곽민수

The First 추천 콘텐츠 더보기
  •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이제 헤어 케어도 브랜딩이다!

  •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1년 사이 가장 주목할만한 초기 스타트업을 꼽는 '혁신의숲 어워즈'가 17일 대장정을 시작했다. 어워즈의 1차 후보 스타트업 30개 사를 전격 공개한 것. ‘혁신의숲 어워즈’...

  •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초개인화의 기치를 내건 스타트업들이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관광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틈새에 대한 혁신적인 시도 돋보였다!

  •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기업의 공간, 자산 관리를 디지털 전환시킬 창업팀!

  •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의 등장!

  •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유망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 맞춤형으로 지원한다!

  • 초록은 동색…“함께 할 때 혁신은 더욱 빨라진다.”
    초록은 동색…“함께 할 때 혁신은 더욱 빨라진다.”

    서로 경쟁하지 않을 때 더욱 경쟁력이 높아지는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