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의 안식휴가, 적극 추천합니다”
“사회복지사의 안식휴가, 적극 추천합니다”
2016.11.03 08:43 by 윤민지

안식휴가를 제도화한 방화11종합사회복지관

방화11종합사회복지관

과중한 업무로 지쳐가도 하소연할 곳조차 마땅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폭언‧폭행을 당해도 참아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감정을 숨길 수밖에 없는 사람들, ‘사회복지사’의 이야기입니다.

사회복지사가 클라이언트(client, 사회복지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위협을 당하거나 장시간 노동으로 감정적, 신체적 소진을 겪는 상황은 해마다 반복되고 있는 문제입니다. 올해 부산복지개발원이 부산지역 공공, 민간 복지시설 종사자 1,442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를 보면, 최근 3년간 위험한 상황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한 사람이 74%에 달했습니다. 욕설, 위협, 성추행 등 폭력의 양상도 다양했죠. 하지만 40%에 가까운 사회복지사들은 ‘체념’ 또는 ‘무시’하는 것으로 위험 상황에 대처한다고 답했는데요. 사회복지사가 사회복지 현장에서 겪는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가 상당하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안식휴가’, 소진으로부터 벗어나는 탈출구

하지만 사회복지사의 소진을 예방하고 더 나은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법률이나 가이드라인도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그 중 사회복지사 ‘안식휴가’ 제도를 신설하는 움직임이 주목할 만한데요. 안식휴가는 과다한 업무, 장시간 노동에 지친 사회복지사가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중부재단은 2005년부터 사회복지사 안식휴가 지원사업 ‘내일을 위한 休(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회복지사에는 안식월 휴가비를, 기관에게는 복리후생비를 지원하는 내일을 위한 휴는 안식휴가를 제도화할 수 있도록 기관 당 최대 3년까지 휴가비를 지원합니다.

지난 8월, 중부재단은 안식휴가를 제도로 정착시킨 곳으로 안양시부흥사회복지관(관장 이훈)을 소개했습니다.(“사회복지사에게 쉼은 꼭 필요 합니다”) 관장과 직원 모두 중부재단의 ‘내일을 위한 휴’에 선정돼 안식휴가를 떠날 수 있었던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안식휴가 제도화’는 다른 직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여기, 안식휴가 제도화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사회복지사가 가장 근무하고 싶은 기관”이 되기 위해 나서는 또 다른 기관이 있습니다. 바로 ‘방화11종합사회복지관’(서울 강서구)입니다.

“제 클라이언트는 ‘사회복지사’입니다”

지난 13일, 방화11종합사회복지관에서 만난 김상진(48) 관장은 “사회복지사의 클라이언트가 주민이라면, 제게는 직원들이 클라이언트”라며 웃었습니다. 지역주민을 직접 대면하는 사회복지사가 즐겁게 일할 수 있어야 주민들도 질 높은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었죠.

방화11종합사회복지관 김상진 관장

직원들이 즐겁게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김상진 관장은 먼저 모든 직원들과 ‘새로운 비전’을 수립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명목상의 비전이 아닌, 구성원 모두가 공감하고 열정을 끌어낼 수 있는 ‘진짜 비전’이었죠. 단어 하나, 토시 하나에도 머리를 맞대 탄생한 ‘지역주민이 주체가 되어 더불어 사는 행복한 지역사회를 만듭니다’라는 비전은 방화11종합사회복지관의 운영철학이 됐습니다. 이어 구체적으로 안식휴가 제도화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사회복지사는 국가자격증을 가진 전문가지만, 끊임없이 감정노동을 해야 하죠. 직원들의 소진 예방에 필요한 것을 고민하던 중 안식휴가를 떠올렸어요. 근속 몇 년마다 휴가를 제공할 것인지, 제공한다면 며칠을 제공할 것인지 등 하나하나 직원들과 함께 결정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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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방화11종합사회복지관의 운영법인인 서울YMCA에는 사회복지사 안식휴가 규정이 없었는데요. 김상진 관장은 운영법인을 상대로 사회복지사가 안식휴가를 통해 재충전해야 할 필요성을 꾸준히 설득했습니다. 그 결과 2014년, 방화11종합사회복지관에서는 안식휴가를 제도화‧명문화할 수 있었습니다. 김 관장은 “우선 휴가 5일을 제공하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차후 안식월로 확대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제13조

장기근속 직원 및 기관의 공헌도가 높은 직원에게 다음과 같은 포상휴가를 실시한다.

① 만 5년 이상의 근속직원에게 매 5년마다 1주간(총5일)의 안식휴가를 제공한다.

안식휴가의 사용기간은 발생일로부터 1년 내에 사용하여야 하며 분할사용이 불가하다.

단, 회계, 안전관리인 등은 업무특성상 분할사용이 가능하다.

방화11종합사회복지관 시행세칙에서 발췌 

“안식휴가 제도화, 적극 추천합니다”

안식휴가를 제도화한 후, 지금까지 총 6명의 사회복지사가 휴가를 떠날 수 있었습니다. 중부재단의 내일을 위한 휴 선정자 3명, 기관 자체 안식휴가 대상자 3명이었죠.

김상진 관장 역시 지난해 중부재단의 ‘내일을 위한 휴’에 선정돼 2주간 안식 휴가를 떠날 수 있었습니다. 방화11종합사회복지관에 부임한지 11년만의 일이었죠.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오로지 휴식만 취할 수 있었던 시간은 처음이었다”는 김 관장은 모처럼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며 두 딸의 사진을 보여줬는데요. 김상진 관장에게 속 깊은 첫째, 늦둥이 둘째와 보낸 시간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는 추억입니다.

“가족이 모두 함께 하는 모습을 아내가 가장 좋아했어요. 내일을 위한 휴는 어깨에 인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계기가 됐죠. 저를 돌아보고 숨을 고를 수 있었어요.”

업무에 매진하는 방화11종합사회복지관 직원들의 모습

김상진 관장은 안식휴가 도입을 적극 추천했습니다. “안식휴가는 직원들의 근무에 대한 최소한의 선물”이라는 말과 함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관장의 자리에 오른 분들도 주니어 시절이 분명 있었을 거예요. 지쳐서 쉬고 싶을 때 쉴 수 없거나 눈치를 봐야 한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안식휴가를 제도로 정착시킨다면 직원도 소속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지 않을까 해요. 휴가기간은 기관의 형편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안식휴가 제도 도입은 강력추천 합니다.”

“오늘도 즐겁게”, 김은희 사회복지사의 휴가

이날 찾은 방화11종합사회복지관에서는 중부재단의 지원으로 올해 안식휴가를 다녀온 김은희(43) 사회복지사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1996년 입사 후, 방화11종합사회복지관에서 21년째 근무하고 있는 그는 인터뷰 당일도 “술에 취한 채 계속 전화를 걸어오는 클라이언트를 응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면서도 밝게 웃었습니다. 김은희 사회복지사의 좌우명이 ‘오늘도 즐겁게’라고 하네요.

김은희 사회복지사

지난 7월, 중부재단의 ‘내일을 위한 휴’에 선정돼 2주간 안식휴가를 가졌던 김은희 사회복지사. 사회복지사가 된 후로 출산휴가를 제외하고는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내지 못했다는 그는 “내일을 위한 휴 덕분에 올 상반기를 바쁘게 보내며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시 시범평가, 공개위탁심사 준비, 주민 축제 준비 등이 상반기에 집중돼 업무 강도가 굉장했어요. 너무 많은 생각과 업무가 이어져 어깨에는 집채만 한 짐을 이고 있는 것 같았죠.”

김은희 사회복지사가 안식휴가를 갖자, 평소에는 아이들을 돌봐주시던 시어머니도 덩달아 휴가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김 사회복지사가 야근, 주말근무를 한다는 건 시어머니의 집안일 또한 끝나지 않는 것을 의미했죠.

“6학년인 둘째는 집에 왔을 때 엄마가 있는 걸 보고 좋아했어요. 자기보다 엄마가 늦게 집에 오는 게 내심 아쉬웠나 봐요. 6살 된 막내 아이는 1박2일로 여행 갔던 사진을 보면서 또 가자고 말해요. 기관과 중부재단에 감사한 마음이 컸죠. 안식휴가를 가도록 배려해주시고 다녀와서도 직원들이 반겨줬거든요. 저를 눌러왔던 무게를 떨치고, 잠시 멈춰 서 저를 돌아볼 수 있었어요. 앞으로 또다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이 생겼어요.”

가족들과 함께한 즐거운 시간(사진: 김은희 사회복지사)

“사회복지사를 돕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어요”

김은희 사회복지사는 “사회복지사 스스로가 편안하지 않다면 그 영향이 주민들에게까지 전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회복지사가 편하고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주민들에게도 긍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뜻이었죠. “안식휴가가 제도로서 정착된다면 직원들이 더욱 열의를 가지고 일을 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직원 입장에서는 안식휴가를 제도화, 공식화해야 눈치 보지 않고 휴가를 떠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은 내가 좀 힘들더라도 열심히 일한다면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질 수 있죠. 안식휴가가 문화로서 존재하는 것보다는 제도화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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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버스를 타고 가다 창 밖에서 길을 걷는 장애인을 본 경험은 그를 사회복지사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장애인을 돕고 싶다는 마음을 먹은 후 21년이 흘렀습니다. 어느덧 한 기관의 중간관리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김 사회복지사가 꿈꾸는 미래는 무엇일까요?

“사회복지사가 자신의 역량을 잘 펼치도록 돕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어요.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열정을 내비치는 후배 사회복지사들이 많은데요. 그들이 현실에 부대끼면서 방향을 잃지 않도록 옆에서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그런 사회복지사요.”

/사진: 윤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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