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오 시대로부터 그리스-로마 시대에 이르는 이집트 문명기 내내 아스완 지역은 질 좋은 석재가 생산되는 곳으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피라미드나 여러 신전들, 이집트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수 많은 석상들, 그리고 날렵한 자태를 뽐내는 오벨리스크까지, 이집트 문명을 상징하는 다양한 종류의 석조 작품들은 아스완에서 채굴되는 석재가 아니었다면 만들어지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특히 아스완에서는 화강암이 많이 생산되었는데, 이 화강암은 석회암이나 사암에 비해서 더 견고한 석재인 만큼 거대한 구조물을 많이 만들었던 고대 이집트의 건축행위에서는 필수적인 재료였습니다. 이곳에서 생산된 석재는 배에 실려 고대 이집트 문명의 동맥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일강의 흐름을 따라서 그리 어렵지 않게 북쪽으로 운송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아스완에서 생산되는 석재는 고대인들에게만 유용한 건축 자재는 아니었습니다. 고대가 끝난고 나서 한참 시간이 흐른 1902년에 건설된 아스완 로우댐과 1970년대에 들어와서야 완공된 아스완 하이댐 건설에도 아스완에서 채굴된 석재들이 사용되었습니다. 전국토의 95% 이상이 사막인 이집트에서 이런 석재 생산지가 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문명사적인 천운’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스완에는 엘레판티네섬에 있는 채석장과 필라에 섬 맞은편의 샬랄 채석장 등 몇 군데의 채석장이 있지만, 그 가운데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아스완 시내에서부터 남쪽으로 약 1.5km 정도 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여전히 아스완 지역의 최고, 최대 채석장으로서의 화려했던 옛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옛 채석장 유적에 가기 위해서는 택시를 타거나 자전거를 빌리는 것, 모두 다 괜찮은 방법이지만 1.5km의 거리는 충분히 걸어갈 수도 있는 만큼 도보로 이동하는 것도 좋습니다.
이곳 채석장은 우리들이 여지껏 이집트 여러 곳에서 보았던 인상적인 석재물들과 석조상의 원재료가 되던 돌을 생산하던 아주 중요한 유적입니다. 채석장 곳곳에서 실제로 채석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채석장 한켠에는 여행자들의 눈길을 끄는 엄청나게 거대한 채석의 흔적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참호 속에 영원히 누워버린, 길이는 42미터, 무게는 1200톤이 넘는 엄청한 규모의 ‘미완성 오벨리스크’입니다.
올라갈수록 점점 가늘어지는 사각 기둥 꼭대기에 ‘피라미디온’이라고 불리는 작은 피라미드가 얹혀 있는 형태로 만들어진 오벨리스크는 고대 이집트 문명을 상징하는 몇 가지 상징물들 하나입니다. 물론 이집트를 대표하는 상징물들 가운데는 피라미드가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파리미드가 옮겨가는 것이 불가능한 거대한 구조물이었던 만큼, 고대 이집트에 열광했던 후대인들은 피라미드를 소유하고 싶은 욕구를 오벨리스크를 통해서 대신 풀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제국주의 시대의 서구 열강들은 오벨리스크를 획득하는데 열을 올렸고, 그 결과 오늘날 런던의 템즈 강변, 파리의 콩코드 광장, 로마 곳곳, 그리고 이스탄불과 심지어는 대서양 건너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에서도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경우에는 오벨리스크가 무려 13기나(로마에는 8기) 이곳저곳에 세워져 있는데, 그건 고대 로마의 황제들 역시도 이 오벨리스크에 큰 매력을 느껴 그것을 제국의 심장부로 옮겨 놓았기 때문입니다. 고대 이집트에 대한 열광은 그 역사가 매우 깁니다.
사실 오벨리스크는 ‘꼬챙이’라는 뜻을 지닌 그리스어이고 고대이집트 인들은 이것을 ‘테크-헤누’라고 불렀습니다. ‘테크-헤누’라는 단어가 뜻하는 바는 불분명하지만, 오벨리스크 자체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태초의 순간에 심연 속에서 가장 먼저 그 모습을 드러낸 최초의 언덕, ‘벤벤’과 관계가 깊습니다.
동시에 오벨리스크는 태양과 동일시되는 태양신앙과 관계과 깊은 기념물입니다. 오벨리스크는 원래는 두 개가 한 쌍으로 세워지는 것이 원칙지만, 해외로 반출되거나 시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게 무너진 것들이 많아서 오늘날 이집트에서는 여전히 쌍으로 서있는 오벨리스크를 찾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현재 이집트에 남아 있는 오벨리스크 가운데 유명하면서, 동시에 가장 크고 보존 상태가 훌륭한 곳은 룩소르의 카르낙 신전 안에 있는 높이가 29.56미터에 이르는 하트셉수트 여왕의 오벨리스크입니다.
유럽 각지로 반출된 오벨리스크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런던의 템즈강변에 서 있는 오벨리스크입니다.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이라는 적절치 않은 이름을 지니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이곳 아스완에서 누워있는 채로 만나게 되는 미완성 오벨리스크는 이 ‘클레오파트라의 바늘’보다 무려 6배나 큰 거대한 규모입니다. 규모가 엄청난 만큼, 굳건한 의지를 갖고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 분명한 이 오벨리스크 제작은 공사의 최종단계에서 발견된 기반암에 생긴 균열 때문에 솜씨 좋은 고대 이집트인 석공들조차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고, 결국 완성되지 못한 상태로 그대로 남겨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애써온 고대의 석공들이 그때에 느꼈을 애석함을 상상하니 어쩐지 조금은 숙연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고대의 석공들이 언제나 실패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엄청난 업적을 끊임없이 이루어낸 위대한 장인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룩소르의 라메세움에서 보았던 람세스 2세의 거대한 석상이라던가, 멤피스에서 만날 수 있는 그의 또 다른 거상은, 지금이야 모두 누워 있지만 원래는 성공적으로 완성되었던, 이곳에 누워 있는 오벨리스크보다 더 무겁고 더 거대한 작품들입니다.
/사진:곽민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