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있는 곳, 아담스피크·아누라다푸라
스리랑카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있는 곳, 아담스피크·아누라다푸라
스리랑카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있는 곳, 아담스피크·아누라다푸라
2016.11.09 15:57 by 황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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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에서는 잠시 스리랑카의 신앙생활에 대해 소개해드렸는데요. 이번 화 역시 그와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스리랑카에서 종교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유적지들을 중심으로 소개해 드리려고 하거든요!

스리랑카는 한국에는 잘 알려 있지 않지만 천혜의 자연과 다양한 문화유산으로 해마다 많은 유럽의 배낭여행객들이 들르는 관광명소입니다. 산은 산대로 아름답고, 몰디브와 가까운 푸른 바다와 오래된 불교 유적들, 식민지 시절의 유산까지 많은 매력을 가지고 있는데요. 물론 모든 곳을 소개해드리고 싶지만, 저는 제가 6개월 동안 지내며 다녀왔던 곳들 중 기억에 남았고 또 스리랑카의 문화와 생활, 그리고 사람들의 가치관이 느껴졌던 여행지를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스리랑카인들의 신앙의 지붕, 아담스피크

스리랑카 제일의 성지로도 알려져 있는 아담스피크(성스러운 발자국이란 의미인 ‘스리파다’라고도 부릅니다)는 단순히 불교뿐만 아니라 스리랑카의 많은 종교들의 성지가 되는 곳입니다. 불교도들은 부처님의 발자국이 남겨져있다고 믿으며 힌두교도들은 시바신의 것으로, 이슬람교도들은 아담이 낙원에서 추방되었을 때 내려온 곳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죠. 다민족 다종교국가의 문화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곳인데요. 12월에서 3월까지가 순례기간이며 그 이후에 기간은 동물들이 순례를 한다는 믿음도 있다고 합니다.

한참 사무실 일로 정신없이 지내다가 운 좋게 초대를 받았습니다. 순례 기간이 막바지에 다다른 3월, 아슬아슬하게 방문할 수 있었는데요. 급하게 결정하게 된 일정이라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사무실 동료들에게 외쳤습니다. “나 스리파다 가기로 했어!” 그랬더니 “정말 괜찮겠어?”부터 “스리랑카 사람인 나도 한 번도 안 가봤는데!” 같은 반응들이 쏟아졌지요. 그 중에서도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스리랑카에선 아담스피크를 한 번도 가지 않은 사람은 바보라고 하고, 두 번 간 사람도 바보라고 해.”

네. 아담스피크는 해발 2200미터도 넘는 산입니다. 그리고 그 ‘발자국’은 정상에 있고요.(미리 알아차렸더라면…)

아담스피크로 가기로 한 날 저녁, 일행들과 퇴근 후 곧 바로 밴을 타고 출발했습니다. 험난한 스리랑카 산골길을 지나 아담스피크 초입에 도착한 건 자정이 다 되어서였죠. 이내 아담스피크로 올라가는 수천 개의 계단이 저를 맞았습니다. 제일 짧은 길을 선택했음에도 불빛을 따라 이어진 길은 멀어 보이기만 했습니다. 스리랑카라고 하면 더울 것만 같지만, 이곳은 고산지대인 만큼 다들 털점퍼와 목도리, 귀마개, 장갑 등으로 단단하게 무장한 채 올라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흰 실을 풀면서 기도하며 올라가는 스리랑카 사람들

저녁 12시 반쯤 스리랑카 현지인들의 노랫가락을 들으며 한 발 한 발 떼기 시작했습니다. 오르는 길엔 사원도 틈틈이 있고, 간단한 요깃거리를 할 수 있는 천막들이 있습니다. 순례지이기 때문에 육류가 들어간 음식보다는 삶은 렌틸콩과 옥수수나 차 등이 주 간식거리였습니다. 수다를 떤다든가 하는 모습도 볼 수 없었고 다들 경건한 모습으로 묵묵히 오르기만 했지요. 쉽지 않은 길임에도 불구하고 맨발로 올라가시는 할머니들, 그리고 엄마아빠에게 안겨서 올라가는 어린 아이들이 많아서 놀라웠습니다.

올라가는 데는 예상보다 좀 더 걸려 5시간정도가 소요됐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추위에 떨면서도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니 경건한 마음이 들었는데요. 운이 안 좋게도 비가 오고 구름이 끼는 날이라 동트는 모습은 구경하지 못했습니다. 정상에서는 맨발로 있어야하는데, 옷에도 습기가 차서 매우 추웠지만 스리랑카인들의 신앙심을 깊이 느낄 수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이곳을 등반한 횟수만큼 칠 수 있다는 종도 울려보았습니다.

자신이 방문한 횟수만큼 타종한다는 종도 울려보았습니다.
정상은 해발 2000가 넘는 구름 위에 있습니다.
날이 밝으며 모습을 드러낸 고산지대의 풍경은 평소 스리랑카에서 접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내려오는 길, 서서히 구름과 안개가 걷혔고 평소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고산지대의 풀과 나무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산에도 대략 5시간이 걸렸는데요. 오히려 다리에 힘이 풀려서인지 올라가는 길보다 힘들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따금씩 맞이한 폭포와 같은 멋진 풍경이 저를 응원해주는 것 같았지요. 중간 중간 쉬어갈 땐 현지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야생 과일도 난생 처음 먹어보면서 스리랑카인들의 생활과 종교를 한 발 더 가까이에서 엿볼 수 있었습니다.

차밭이 나왔으니, 이제 거의 다 내려온 것입니다.

10시간의 여정이 끝나자 왜 두 번 가는 사람들을 ‘바보’라고 했는지, 동료들이 왜 그렇게 걱정스런 눈초리로 저를 쳐다봤는지 깨달을 수 있었는데요. 부실한 체력이 문제였겠지만, 지상에 도착했을 쯤에는 눈앞이 핑 돌아서 걷는 것조차 힘들었고, 한 일주일간은 근육통이 계속되었습니다. 꼭 체력을 충분히 단련하시고 맑은 날에 다녀오는 것을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스리랑카의 천년고도, 아누라다푸라

하지만 개인적으로 아담스피크보다 더욱 혹독한 여정을 보낸 곳이 있었으니, 바로 아누라다푸라입니다. 그만큼 제일 특별했던 여행지로 기억되고 있는데요. 이곳은 무려 기원전 5세기부터 약 1000년간 스리랑카의 수도였던,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곳입니다. 같이 일하는 동료의 가족여행에 초대받아서 간 여행이라 더욱 뜻 깊었고, 스리랑카의 어느 불교잡지사 사장님께서도 동행해주셔서 유적의 의미도 정확히 알 수 있었고, 직접 의식에도 참여해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 모로 스리랑카의 불교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평소에도 ‘스리랑카 사람들은 항상 참 친절하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요. 이 여행에서 스리랑카의 정(情)을 참 많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초대 받은 날, 직접 준비해주신 식사자리에서는 계속 “더 먹어, 많이 먹어”라며 챙겨주셔서 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가족 여행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콜롬보에서 아누라다푸라까지는 기차로 약 4시간 정도 걸리는데요. 기차 안에서는 스리랑카에 존재하는 모든 간식들을 맛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것저것 먹으라며 계속 사주셨거든요.

여행을 하면서 가이드 역할을 해주신 잡지사 사장님은 ‘오야(스리랑카어로 삼촌)’라고 불러드리는 것을 좋아하시기도 했는데요. 스리랑카는 한국처럼 식당, 가게,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들을 이모, 삼촌이라고 부르는 문화가 있답니다. 신기하죠?

아누라다푸라로 가는 기차. 일등석이지만 오래된 기차라 냉방이 되지 않고 덜컹 덜컹 거립니다. 철도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기차가 스리랑카에서는 꽤 흔합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로띠’. 밀가루 반죽 안에는 매콤한 고춧가루로 버무린 감자 등이 들어있습니다.
‘할라파’라는 스리랑카간식. 쿠라칸밀가루(조)와 코코넛을 반죽해 칸다 잎에 넣어서 찐 간식입니다. 제가 일하던 UN안의 식당에도 가끔 파는데요. 쫀득쫀득하고 달콤한 맛이 납니다.
렌틸콩을 뭉쳐서 새우를 같이 튀긴 새우‘와디’. 오독오독 씹는 맛이 고소해서 제일 좋아하던 스리랑카 간식인데요. 20루피 정도로 한화 150원에 사먹을 수 있습니다. 매운 것을 좋아하는 스리랑카인들은 튀긴 고추와 함께 먹기도 합니다. 이 외에도 정말 많은 간식들을 맛보았습니다.

오랜 유적이 가득한 아누라다푸라는 한국으로 치면 경주와 같은 곳인데요. 이동하는 순간에도 유적들이 곳곳에 보였습니다. 워낙 많은 유적들을 주말간의 짧은 일정 속에 다 둘러보진 못했고, 정말 중요한 곳만 모아서 들렀습니다.

흰옷을 갖춰 입고 스리마하보디(절)에 가는 길. 여기에선 절에 갈 때는 흰옷을 입는 것이 문화인데요. 전통복인 흰 사롱을 둘러보았습니다.

아누라다푸라에서 갔던 곳 중 가장 의미가 있었던 곳은 단연 ‘스리마하보디(Sri Maha Bohdi)’라는 절입니다. 스리랑카의 불교 사원에는 불교를 상징하는 보리수가 자주 보이는데요. 이곳에 있는 보리수는 무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그 보리수 나무의 가지라고 합니다. 기원전 3세기 경에 인도의 부다가야에서 들여와 현재는 사람이 심은 나무 중 제일 오래된 나무라는 기록도 가지고 있습니다. 스리랑카에서 가장 성스러운 불교 유적중 하나이며 전 세계의 불교신자에게 큰 의미를 가지고 있어 스리랑카 성지순례에서 빠질 수 없는 곳이기도 합니다.

스리마하보디에서 흰옷을 갖춰 입고 기도하는 사람들
보리수를 향해 간절한 기도를 올리시던 할아버지

오후에는 ‘푸자의식’에도 참여했는데요. 푸자의식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며 기도를 드리고 절을 하는 것으로, 신자들은 집에서도 많이 하지만 절에서 정해진 시간마다 진행되는 푸자의식에도 많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성스럽게 꽃을 올리며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도 여기에 참여한 것은 처음이었지요. 꽃과 다른 물품들을 공양드렸는데, 어마어마하게도 절에 계시는 스님께 직접 축복을 받기도 했답니다.

쌓여 있는 많은 꽃들
공양물에 손을 대고 기도한 후에 드립니다.
축복을 받는 과정. 흰 실을 풀어서 다 같이 순서대로 감으면서 기도를 하는데요. 이후엔 흰 실을 손목에 걸어주십니다. 3일정도 보호를 해준다고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스님께 직접 축복을 받을 기회는 흔한 기회가 아닌데요. 같이 가주신 분께서 불교계에 계셔서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공양을 드리고 받은 두 번째 축복. 또 하나의 실을 걸어주시고 머리에 재를 찍어주십니다.

두 번의 축복을 받고는 보리수를 향해 다시 한 번 기도를 했습니다. 그제야 경내를 조금 둘러보았는데요. 이런 성스러운 장소에도 스리랑카 내전의 상처가 남아있다는 사실도 알 수가 있었습니다. 1985년 타밀 반군이 습격해 200명의 순례자들을 학살했다는 아픈 역사도 있었습니다.

금색 지지대로 장식한 보리수
꽤 오랜 시간을 스리마하보디에서 보냈는데요. 밖에서 향을 피워 다시 한 번 기도함으로써 의식을 마무리합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맞은편에 있는 ‘르완웰리 세야’로 걸음을 옮겨보았는데요. 스리마하보디와 함께 아누라다푸라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유적입니다. 커다란 건물 하나 없는 도시의 넓은 평원에서 55m의 높이에 달하는 탑은 금세 눈에 띄는데요. 저녁에는 조명을 비춰 눈부시도록 하얗게 빛나 더욱 성스러워 보이는 곳입니다.

멀리서도 밝게 빛나는 탑
여행 내내 저를 딸처럼 대해주셨습니다.

르완웰리 세야에서도 스리랑카의 역사를 알 수 있습니다. 이곳은 무려 기원전 140세기경에 싱할라 왕조의 영웅인 둣타가마니왕에 의해 지어진 곳입니다. 아누라다푸라를 침략해온 엘라라 왕과 타밀군을 무찌른 영웅으로 유명한 왕인데요. 많은 유적을 남겼지만 제일 유명한 유적중 하나가 이 르완웰리 세야 입니다. 그래서 탑 입구에도 합장을 하고 있는 왕의 동상이 아직도 서 있습니다.

저녁 늦은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탑을 향해 가고 있었는데요. 멀리서 보이는 하얀 탑이 정말 빛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꽃을 올리고 향을 피우고, 탑을 한 바퀴 돌면서 또 한 번 기도를 하고 나서야 그날의 일정이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스리랑카의 역사의 한 순간을 살다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여러 가지 의식에도 참여해보면서 처음으로 현지인들의 생활에 녹아든 듯한 경험을 했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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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엔 불교가 처음 전파된 ‘미힌탈레’와 스리랑카인들의 정신문화 수도인 ‘캔디’에 대해서는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이어지는 이야기에도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사진: 황연재

UN 희망원정대 네팔, 우즈베키스탄, 몽골, 가나, 피지, 스리랑카. 이 여섯 나라에서 활동하는 UN 봉사단 청년들이 현지에서의 활동과 생활을 고스란히 글과 사진에 담았습니다. 각자가 속한 UN 기구에서의 이야기와 함께 그곳의 사회와 문화, 여행정보 등 6개월 동안 보고 겪은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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