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니에요
후니에요
2016.11.15 17:29 by 오휘명
(사진: Boguslaw Mazur/shutter.com)

네, 후니라고 해요. 나이는 여덟 살. 사실 진짜 이름은 ‘박훈’인데요, 엄마랑 아빠도 ‘훈아’, ‘훈이’라고 부르는데요, 친구들은 전부 다 저를 ‘후니’, ‘후나’, ‘후니이’, ‘바쿠니’라고 불러요. 그래서 나도 나를 소개할 때 후니라고 말해요. 그렇지만 이상하죠, ‘후니’라는 이름은 왠지 모르게 콧물을 잘 흘릴 것 같은 이름이잖아요. 아니에요? 아저씨는 모르는 그런 게 있어요.

아저씨 이름은 뭐예요? 응, 응. 그렇구나. 그 이름은 다르게 불릴 일이 없는 이름이네요. 비밀인데요, 사실 우리 엄마랑 아빠가 모르는 사람이랑은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왜 아저씨랑 이야기하고 있냐고요? 그야, 저녁만 되면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없고, 오늘은 엄마랑 아빠 둘 다 늦게 들어오는 날이거든요. 이런 날에 집에만 앉아있을 수는 없지. 미리 말하는데, 허튼짓할 생각 마세요. 나도 다 배워서 알아요. 아동 납치, 아동 성폭행, 시체 유기, 하여튼 뭐 그런 말들이요. 거 참, 웃지 말라니까요.

*

이상한 걸 물어보시네, 무슨 말이 그래요? 나 말고 다른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냐니?

이 시간이면 당연히 다들 학원에 갔죠, 학원. 꼭 아저씨는 학원에 안 다녔던 것처럼 말하네. 물론 나는 안 다니고 있지만요.

뭐, 많죠. 태권도, 피아노, 웅변, 아, 근데 웅변이라는 게 뭔지는 사실 잘 몰라요. 어쨌든, 영재 수학, 유학원……. 어휴, 많기도 많지. 누가 그랬는데, 유학원이라는 곳에 다니는 애들은 나중에 전부 다 훌륭한 사람이 된대요. 나도 조금은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역시 가기 싫더라고요. 에이, 그런 것들은 재미없어. 나는 지금도 훌륭한 어린이야. 훌륭한 후니에요.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고요? 그걸 내가 지금 어떻게 알아요? 뭐, 친구들 몇 명은 벌써부터 외교관이랑 회계사, 공무원이 되고 싶다고 말은 해요. 근데 아저씨, 외교관이랑 회계사가 뭐 하는 사람들이에요? 모르겠다. 역시 나는 멍청한가 봐. 근데 아저씨, 나는 정말로 내가 뭐가 되고 싶은지 모르겠어요. 내가 이상한 건가요?

*

아저씨도 참 할 짓 없는 사람이네요, 이렇게 오랫동안 나랑 수다를 떨고 있는 걸 보면. 그래서 말인데, 내가 재밌는 거 보여줄까요? 잠깐만, 이게 여기쯤 있었는데, 아! 여기 있다! 보이죠? 이 상처요.

이건 우리 엄마 아빠도 몰라요. 옆 분단 시후라는 애가 낸 상천데요, 내가 조금 놀렸다고 연필로 여기를 콱! 찍더니, 막 흔들어댔어요. 그때 난 상처에요. 그래도 맨날 엄마나 아빠한테 두드려 맞는 그림만 그리는 애니까, 불쌍하니까, 내가 참았어요. 잘했죠?

그리고 오늘은 시후랑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어요. 외교관이니 유학원이니, 알아먹을 수 없는 말들만 하는 놈들보단 시후가 좋아. 시후가 오늘은 그때 상처를 내서 미안했다고 말했어요. 역시 좋은 녀석이라니까.

아저씨, 역시 사나이의 우정이란 멋진 거지요? 하긴, 아저씨가 뭘 알겠어요. 이 시간에 놀이터에 혼자 앉아있는 사람이.

*

그렇지만 사실은 나도 제대로 아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우리는 또이또이네요, 또이또이. 그쯤은 알죠? 역시, 말이 조금은 통하는 어른이라 다행이다.

아저씨는 좋아하는 게 뭐에요? 에? 술? 소설책? 으아, 그런 건 재미없어.

나는 식은 피자, 작은 로봇 장난감, 네, 작아야만 해요. 하여튼 그래요, 그리고 나를 따라오는 달을 좋아해요. 반짝반짝거리는 걸 좋아한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엄마랑 아빠? 장난해요? 당연히 좋아하죠! 사랑하죠, 사랑.

그렇지만 엄마랑 아빠는 나랑은 좋아하는 게 다른 거 같아요. 허구헌날 관리비니 뭐니, 며칠 전엔 글쎄, 이번 달엔 지출이 많았으니 피자를 못 사준다는 거 있죠. 대체 지출이라는 놈이 뭐길래 나한테 피자도 못 사주는지. 조금 서운했어요. 그리고 엄마는 금으로 된 것들을 좋아해요. 아빠도 물건을 고를 때면 금색으로 된 걸 골라요. 반짝반짝거리는 걸 좋아한다는 걸 보면, 나랑 아주 약간은 닮은 것도 같다. 그렇죠?

*

어쨌거나 나는 이제 가봐야겠어요. 엄마한테 문자가 왔거든요. 뭐야, 이런 거 처음 봐요? 키즈폰이라는 거예요. 볼래요? 뭐라는 거야. ‘얼른 들어와서 공부도 하고 책도 읽어야 훌륭한 판검사가 될 거 아니니’라니, 대체 판검사가 뭐길래 그러시는 건지, 참.

아저씨도 빨리 집에 들어가요. 요즘 세상이 너무 험해요. 글쎄요, 사실 나는 험하다는 게 뭔지 잘 모르지만, 아저씨도 그런 거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아동 납치, 아동 성폭행, 시체 유기 같은 거. 어라, 왜 웃는 거예요?

아이고, 이제 진짜 가봐야겠다. 아저씨, 가기 전에 하나만 더 물어보고 싶은데, 어른이 되면 그렇게도 커다랗고 번쩍이는 세상이 펼쳐지나요? 어려운 말들만 쓰면서 살아야 할 정도로? ‘아동납치’라는 게 대체 뭐길래 그렇게들 난리죠? 에이, 어려운 것들은 안 볼래요, 안 들을래. 그런 것들은 재미없어.

어쨌든, 오랜만에 말이 통하는 어른을 만난 것 같아서 재밌었어요. 좋은 사람인 것 같네요. 다음에 또 만나요.

아, 내 이름이요? 그새 까먹었어요?

후니라고 해요. 나이는 여덟 살. 사실 진짜 이름은 ‘박훈’이고, 엄마랑 아빠도 ‘훈아’, ‘훈이’라고 불러요.

그치만 내 친구들은 전부 다 나를 ‘후니’, ‘후나’, ‘후니이’, ‘바쿠니’라고 부르니까, 아저씨도 나를 다시 보게 되면 후니라고 불러주세요.

꼭이요! 후니에요, 후니.

나는 이제 가볼게요. 안녕!

 길 건너 그분들의 사연  세상의 모든 존재들, 나와 나의 주변 ‘것’들이 각자 간직한 마음과 사연. 그 사연들을 손 편지처럼 꾹꾹 눌러 담아 쓴 초단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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