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인도엔 ‘돈’ 난리가 났다!
지금 인도엔 ‘돈’ 난리가 났다!
2016.11.25 10:32 by 성서빈

지난 11월 8일 저녁 10시 반경… 누워서 페북 뉴스피드를 보다가 오백 루피, 천 루피가 어쩌구 하는 영문 기사가 눈에 띄었다. 평소 영문 기사를 굳이 노력하면서까지 읽지는 않지만, 그땐 달랐다. 눈에 확 들어오는 기사였다. 내용인즉슨,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약간 어리둥절함까지 했던 인도의 화폐 개혁안이었다.

11월 9일 0시부터 인도의 고액권 화폐인 500루피(한화 약 8700원)와 1000루피(한화 약 17,400원)짜리 구권을 사용을 못한다는 것이 골자다. 인도 정부가 소위 검은돈과의 전쟁을 선포한 셈이다.

인도, 검은돈과의 전쟁이 시작되다!

11월 8일 오후, 500루피와 1000루피 지폐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담화 발표 뉴스. 처음에는 눈에 확 띄도록 돈다발 사진이 대표 이미지였는데 캡처를 하려고 보니 모디 총리 사진으로 바뀌어 있다. (사진: 페이스북)

곧이어 각종 뉴스피드는 구권을 어디에서 언제까지 사용할 수 있고, 신권은 언제 받을 수 있으며, ATM이나 현금 인출, 신권 환전은 하루에, 한주에, 한 달에 얼마나 할 수 있는지 정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인도 은행은 예금할 수 있는 한도가 정해져 있다. 일정액 이상으로 예금하면 세금이 높아서 인도 부자들은 집에 현금 다발을 보관하고 있는 게 보통이다. 고액권 유통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500루피, 1000루피 지폐를 갑자기 사용하지 못한다면? 그래서 은행에 넣거나 바꿔야 한다면? 그 반발의 강도를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나로서는 사실 인도를 여행하는 한국 여행자들이 먼저 걱정이 되었다. 이제 겨울이라 인도 여행 시즌이 시작되었고, 당장 내일 도착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구권을 가진 여행자들이 은행에서 시간을 꽤 허비하겠구나 싶었다.

화폐 개혁을 환영합니다, 모디 총리님!

화폐 개혁은 탈세, 위조지폐, 부패 등의 청산을 목표로 시행되었다. 인도사람들의 첫 반응은 가히 폭발적인 수준. 관련 뉴스의 댓글들은 나렌드라 모디 총리를 거의 영웅화하다시피 하는 내용 일색이었다. 이 개혁으로 말미암아 인도의 부패 정치인과 탈세 부자들을 척결할 거라고 굳게 믿었고, 천재적인 모디 총리가 급작스럽게 발표한 것도 강력한 타격이 되었을 거라고 칭찬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의 뉴스. 수입과 맞지 않는 예금액 중 2.5백만(Lakh) 루피(한화 약 4백 35만 원) 이상에는 200%의 세금 패널티를 주겠다는 뉴스에는 상대적 빈곤에 불만이 고조되었던 인도 사람들의 댓글이 무수히 달렸다.

구권 유통과 신권 교환 정보를 집약한 표도 앞 다투어 게시되었다. ATM기기에서 하루에 이천 루피, 한주에 사천 루피만 인출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한주에 한화로 대략 7만원이면 적은 돈은 아니지만, 갑자기 임대료나 각종 대금을 치러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가 되었다. (사진: 페이스북 게시물)
수입하고 맞지 않는 구권 2.5백만 루피 이상을 예금하면 200% 세금 패널티를 받게 된다는 타임즈오브인디아 뉴스. 아래는 관련 댓글을 모아봤다.
가네쉬: 왜 2.5렉이야? 더 낮춰야 함. 온 나라에 긍정적인 기운을 준 화폐개혁을 한 모디 정부가 자랑스러움. Ache Din arey hain!!(“좋은 날이 온다!”라는 모디 총리의 선거 캠페인 슬로건)
무라리드하란 나이르: 기도합시다. 검은돈이라는 악을 근절할 이 첫 걸음이 성공하기를 기원하며...
수미트 굽따: 완전 좋아!
닥터 빌라스 라왓: 진짜 우리 위대한 총리의 위대한 개혁이다. 검은 돈을 가진 자들을 잡을 굉장한 한 수가 될 것.
슈밤: 오늘 난 인도사람이라서 너무 자랑스럽다. 이런 식으로만 가면 곧 전 세계인이 미국인이나 캐나다인이 아니라 인도사람이 되고 싶을 걸.

이런 찬사 일색을 보면서 뭔가 인도라는 나라의 변화의 물결 안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지금 한국이야말로 그렇겠지만.) 하지만 막상 Bank Holiday(안정적인 구권 환전을 위해 9일, 10일 평일에 은행이 쉬었고 주말에 정상 영업함)가 끝나고 은행에 갔을 때도 이들이 칭찬만 할까? 사실은 엄청나게 불편한 상황이 다가오고 있었다.

매일 줄 서는 시간만 6시간?!

하필이면 화폐 개혁 바로 이틀 전에 6만 루피나 찾아 놓는 바람에 환전할 구권이 무지하게 많았다. 가족이 치과치료를 받을 예정이었고, 여행까지 계획하고 있어서 카드 사용이 어려운 인도의 지방도시에서 사용할 현금도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6만 루피를 바꾸려면 하루에 4천 루피씩 15번을 은행에 가거나, 통장에 구권을 예치한 후에 인출로 하루에 만 루피, 일주일에 이만 루피까지만, 즉 3주 동안 출금할 수 있는 것이다. 하이고, 복잡타. 어찌되었든 동네 구멍가게도 구권은 거절하고, 정부인증 우유가게(공공업무를 보는 곳은 24일까지 구권 사용 가능)에는 줄이 너무 길고, 왠지 큰돈은 받아주지 않을까 근거 없이 믿고 있던 치과에서도 구권을 받아주지 않았기에 부랴부랴 교민들 대상으로 운영하는 신한은행 뉴델리지점으로 환전과 예치를 하러 갔다.

뉴델리 신한은행 환전 개시일 어수선한 광경. 평소에는 사람이 한두 명밖에 없지만 이날 대기번호는 50번이 넘었다. 오른쪽 사진은 신권 환전에 대한 안내문.

생각보다는 수월하게(!) 1시간 정도 기다려서 구권을 예금한 후 4천 루피 인출을 했다. 이곳에서 뉴델리의 한국 사람은 다 만난 것 같았지만, 교민 규모가 작은 터라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밖에서 보는 인도 은행의 줄은 훨씬 무시무시했기에…

구권 통용 금지: 문제가 심각해서 폭동이 있을 거라는 NDTV의 18일 뉴스. 열흘이 지나도록 은행마다 이런 식이다. 길을 점거한 줄 때문에 교통이 막히는 것은 당연.

날마다 출퇴근하며 동네 은행 줄을 목격하고 있다. 멀리서 보면 조용한 줄서기인데 가까이서 보면 은행의 창살문에 팔을 집어넣고 들어가겠다고 몸싸움을 하는 곳도 있었다.

환전 개시 첫날, 동네 은행 모습은 무질서함의 극치였다. 낡은 총을 옆으로 멘 낯익은 경비원 모습도 겁날 정도로 험악해진 분위기. 인도사람도 기가 막힌다는 듯 보고 있다.
환전 개시 일주일 후, 조용한 줄서기를 보여주는 가운데 사람들 사이에 그동안 쌓인 불만이 억눌려 있다.

개혁안을 내놓고 열흘이 지난 지금, 인도는 점점 안정을… 찾아가기는커녕 더욱 소란스러워지고 있다. 구권 환전으로 시중에 백 루피짜리 지폐도 부족해지면서 2천 루피만 인출이 가능하기도 했고, ATM기는 텅텅 빈 날이 부지기수다. 모디 총리의 천재적인 화폐 개혁안은 법률에 위반되는 행위라며 의회의 공격을 받고 있고, 신문과 뉴스에는 구권 돈다발을 들고 있으면서도 야채를 사지 못해서 농약을 마시고 죽었다고 주장하는 일들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병원에서 구권을 거부해서 1살짜리 아이가 죽어가는 반면, 남인도에서는 구권을 어떻게 신권으로 바꿨는지 모르지만 부패로 알려진 대부호가 한화 천억 단위의 호화 결혼식을 자행해 하루 4천 루피도 겨우 인출하는 서민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더욱 고조시켰다.

더구나 하루 먹고 하루 살아가는 대부분의 서민들은 신권이 부족해 일당이나 월급을 밀리고 있고, 모든 인도인들이 은행에 가서 줄을 서느라고 이루 말할 수 없는 불편함을 겪고 있다. 게다가 8일 화폐 개혁 담화 직전에 남모를 뒷구멍으로 환전을 마친 정치인들의 이야기라든가, 은행 전산미비로 신분 확인이 안돼서 은행마다 돌며 하루에 서너 번 환전이 가능했다는 이야기들이 돌면서 후진적인 정치, 경제시스템에 대한 분노를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금융 난장판: 온 나라에 비상이 걸리자 일간지에 한 섹션이 이 화폐개혁과 관련한 뉴스로 가득 채워졌다. 의회에서마저 2천 루피짜리 새 지폐 발행에 법률적으로 문제가 있었다고 모디를 비판하고 있다.

부자 나라? 가난한 나라?

인도에 대해서 대부분 불교나 힌두교밖에 잘 모르기는 해도,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잠재력이 큰 나라’라고 한번쯤은 들어 봤을 것이다. 많은 인구와 커다란 땅덩이, 다양한 문화와 오랜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글 CEO 순다르 피차이, 마이크로소프트 CEO 사티야 나델라, 노키아 CEO 라지브 수리, 어도비시스템즈 CEO 샨타누 나라옌, 소프트뱅크 차기 CEO 니케시 아로라, 샌디스크 CEO 산제이 메흐로트라, 여기에 펩시콜라와 시티은행 등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의 CEO가 모두 인도인이라는 것도 듣는 사람마다 깜짝 놀란다. 실로 인도는 대단한 인재들을 배출하고 있잖은가!

그러나 이들 기업의 CEO들은 인도에서 태어났을 뿐 지금은 아예 인도계 외국인이고, 막대한 수입에 대해 인도에 세금을 내지는 않는다. 이들은 국위선양하는 인도인으로서 인도에서 대단한 영웅이 되어 있고 선망의 대상이지만, 인도에서 살지도 않는다. 그들 자녀들도 외국에서 태어나 외국에서 자란 외국인이다. 그렇게 인도는 끊임없이 인재를 배출하고 외국으로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번 화폐 개혁 이후로 일련의 사건, 사례들을 멀리서 또는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느낀 건 인도는 부자 나라, 가난한 나라의 양면을 모두 가지고 있고, 그 상태가 해소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나의 정부 개혁안에 대해서 안정적으로 받쳐주지 못하는 금융 시스템이나 사회 기반 시설을 보면서, 문득 구르가온(Gurgaon)이 떠올랐다. 구르가온은 뉴델리 바로 아래에 붙어있는 공단이고 신도시인데 가는 데 차로 1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처음 구르가온에 갔을 때 입이 딱 벌어질 정도의 신식 회사 건물과 현대식 쇼핑몰, 고급 아파트 단지, 대규모 산업단지들을 보며 “와, 인도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지만, 반면 울퉁불퉁 정비되지 않은 길과 흙으로 대강 덮어 놔서 걷지 못하는 인도(人道), 커다란 건설장비가 방치된 도로, 곳곳에 누운 소들과 맨손으로 일하는 인부들, 시커먼 먼지로 가득 찬 공기를 보면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던 기억 말이다.

어쩐지 10년 후에도 인도는 늘 같은 모습일 것 같은 기시감… 과연 나만의 기우일까?

 

/사진:성서빈


The First 추천 콘텐츠 더보기
  •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바야흐로 초개인화의 시대다. 고객에게 꼭 맞는 접근 방식을 통해 기업과 소비자의 관계는 더 오래, 보다 친밀하게 지속된다. 고객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할수록 초개인화의 완성도가 높...

  •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관광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틈새에 대한 혁신적인 시도 돋보였다!

  •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기업의 공간, 자산 관리를 디지털 전환시킬 창업팀!

  •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의 등장!

  •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유망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 맞춤형으로 지원한다!

  • 초록은 동색…“함께 할 때 혁신은 더욱 빨라진다.”
    초록은 동색…“함께 할 때 혁신은 더욱 빨라진다.”

    서로 경쟁하지 않을 때 더욱 경쟁력이 높아지는 아이러니!

  • “글로벌 진출을 위한 교두보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주 베트남 한국상공인연합회와 업무협약 체결
    “글로벌 진출을 위한 교두보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주 베트남 한국상공인연합회와 업무협약 체결

    대한민국 기업의 글로벌 진출을 위해 공동 협력체계를 확립

  • “우리 시대의 마케팅은 인플루언서를 통해야 한다!”
    “우리 시대의 마케팅은 인플루언서를 통해야 한다!”

    인플루언서 광고 "계속 진행시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