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남쪽으로: 아부심벨로의 여정
더 남쪽으로: 아부심벨로의 여정
2016.12.02 17:48 by 곽민수

우리들이 다녀온 아스완의 엘레판티네섬은 오래전부터 이집트와 누비아의 접경 지점으로 여겨졌습니다. 이집트의 이 경계를 넘어서야만 얻을 수 있는 진귀한 물품들을 소유하고 싶어 하였습니다. 이집트 문명의 초창기부터 파라오들이 엘레판티네의 남쪽에 대하여 일종의 동경심을 품었던 것은 참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파라오들의 욕망은 이집트의 역사가 지속되는 내내 이집트의 원정대가 남쪽의 누비아로 향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누비아 지역은 오래도록 이집트인들에게 지배를 받거나 착취를 당하는 역사를 갖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신왕국 시대가 되면 파라오들은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높여 누비아를 아예 이집트의 영토에 포함시키려고 시도하였습니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이곳 남쪽 땅에 자신의 권위를 표현하고 이집트 문화를 이식하기 위하여 신전을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들이 이제부터 찾아갈 아부심벨의 신전을 지은 람세스 2세가 그러했고, 정복자 파라오로 명성이 자자한 투트모스 3세가 그보다 먼저 누비아 지역에 신전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집트와 누비아

누비아는 기나긴 역사 속에서 대체로 이집트의 속국 혹은 식민지였지만, 흥미롭게도 반대로 누비아가 이집트를 정복하여 통치했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일명 ‘에티오피아 왕조’로 불리는 제 25왕조의 ‘검은 파라오들’이 그 반격의 역사 속 주인공이었습니다. 사실, 누비아는 이집트의 입장에서는 언제나 변방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랜 기간 동안 누비아는 정치적으로 또 종교적으로 박해받는 이들의 피난처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누비아라고 불리던 지역의 절반 정도는 이제 더 이상 이 땅 위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누비아의 상당부분은 차디찬 인공호수 밑으로 사라져버렸습니다. 우리가 향하는 아부심벨은 이제는 거의 남아있지 않은 서글픈 누비아의 마지막 흔적입니다.

아부심벨로 떠나는 전날 밤, 우리는 밤잠을 설치게 됩니다. 그것은 아부심벨이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라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이는 까닭도 있겠만, 사실 그보다는 우리의 목적지 아부심벨로 향하는 버스가 이른 새벽, 보통은 새벽 3시경에 아스완에서 출발한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집트 정부는 이집트 남부 지방의 치안이 썩 좋지 않은 상태라고 판단합니다. 그것은 아직 도시화되지 않은 이곳이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주요활동 무대이기도 하고, 또 수단과의 국경이 여전히 확정되어있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관광산업이 국가경제에서 차치하는 비중이 꽤 큰 이집트 정부로서는 만일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외국인 관광객이 남부 지방을 여행하는 것을 엄격하게 관리합니다. 그 결과, 아스완에서 떠나는 아부심벨 행 관광버스들은 모두 한 곳에 모여 경찰의 호위를 받아야만 남쪽으로의 이동이 가능합니다. 각각의 여행사와 호텔의 버스들이 한 곳에 모이면 경찰들은 차량 검문을 시작합니다. 물론, 이집트답게 아주 철저하지는 않습니다. 검문이 끝나면 수십 대의 버스들이 일제히 남쪽을 향해 출발하는데 그 장면도 장관입니다. 자, 이제 출발입니다. 남쪽으로!

동이 트기도 전이라 버스 안은 무척이나 어두컴컴합니다. 여행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것인 만큼, 새로운 친구라도 사귀어볼까 주변을 살펴봅니다. 하지만 차 안의 일행은 모두 잠이 덜 깬 모습이어서 도저히 말을 붙여볼 수가 없습니다. 어쩐지 쓸쓸한 마음에 창밖으로 보이는 사막의 하늘, 그리고 그 하늘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별들을 바라보며 고독을 되씹어봅니다. 그러니 살며시 눈이 감기기 시작합니다. 운이 좋으면 꿈속에서 오늘의 주인공 람세스 2세를 만나볼 수 있을 지도 모르니, 자리가 썩 편하지는 않지만 잠을 청해보기로 합니다.

저 동쪽에서 라-호라크티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람세스 2세가 이 세상에서 숨을 쉬며 살아가던 때는 지금으로부터 3000년도 더 전의 일입니다. 그는 20대 중반에 왕위에 올라 근 70년에 이르는 긴 기간동안 왕위에 머물렀습니다. 흔히들 그를 람세스 대왕이라고 부르는데, 우리들이 이미 여러 차례 직접 접해보았듯이 그는 그 칭호에 참으로 잘 어울리는 업적들을 이 이집트 땅 위에 남겼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도 생긴 것 같습니다.

 

쿠푸는 대피라미드를 지었지만,

람세스는 온 이집트 땅을 주물렀다! 

영국박물관의 람세스 거상

그는 어떤 일이든 대규모로 벌이는 통이 큰 사내였습니다. 이집트 곳곳에 산재한 그의 신전과 거상들, 100명이 넘는 자식들, 또 엄청난 규모의 전쟁과 그를 능가하는 전쟁에 대한 과장된 예찬! 그는 이집트 땅에 영원히 잊히지 않는 깊은 흔적을 남기고 90세가 넘어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람세스는 소년시절부터 이집트를 이끌어갈 인물로 기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할아버지인 람세스1세와 아버지인 세티1세가 새롭게 시작한 이집트의 군사적 전통의 영향을 받아, 이미 십대 때부터 여러 차례 대외원정길에 참여했고, 건축가로도 조숙했던 그는 소년시절부터 자신을 위한 신전을(비록 소규모이기는 하지만) 아비도스에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버지인 세티 1세는 아들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아들의 미래를 위해 훌륭한 젊은이들을 골라 람세스와 함께 궁정에서 자라도록 하였습니다. 꽤 오래전이긴 하지만,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었던 크리스티앙 자크의 소설 <람세스>에서는 이런 내용들이 이야깃감으로 잘 사용되고 있습니다.

아비도스에 있는 람세스 2세가 완성한 선왕 세티 1세의 장례신전

 

/사진:곽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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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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