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오지랖은 사양합니다!
부디 오지랖은 사양합니다!
부디 오지랖은 사양합니다!
2016.12.06 15:04 by 류승연

오늘은 장애 아이가 아닌 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얘기를 해볼까 한다.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자식의 인생이 한 없이 불쌍하고 안쓰럽지만, 독한 마음먹고 얘기하자면 ‘니 팔자’다. 하지만 서운해 할 필요는 없는 게 ‘니 팔자’로 인해 ‘부모의 팔자’도 같이 변했으니 외로운 인생 길, 적어도 동행하는 이 있어 쓸쓸하진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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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장애 아이의 부모들은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또는 아이가 장애 판정을 받는 그 순간부터 팔자가 바뀐다. 인생의 궤도가 180도 변하는 것이다.

처음엔 충격이 휘몰아친다. 무신론자가 갑자기 믿지도 않던 신을 탓하며 “하늘이시여! 왜 내게 이런 일이!”라고 절규한다.

멘붕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분노의 시간이 찾아온다. 아이에게 장애가 온 원인을 백 만 가지쯤 추론하며 그 안에서 어떻게든 배우자의 귀책을 찾아내려 애쓴다.

남편은 와이프가 임신인 줄 모르고 한 잔 마셨던 맥주가 원인인 것 같고, 아내는 담배 피운 입으로 뽀뽀를 해댄 남편 때문에 니코틴이 태아로 흘러갔을 가능성을 진지하게 생각한다.

“너 때문이야!”라는 광란의 시간도 지나고 나면 인정과 체념의 단계가 온다. “그래, 어쩌겠니”라며 현실을 받아들이고 살 길을 모색한다.

2~3년 전에 한 기관에서 장애인 가정의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설문을 실시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조사관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는 “장애 아이의 부모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건 일반적인 가정의 부모들보다 훨씬 더 성격이 좋고 표정이 밝다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성격이 좋은 사람들이 장애 아이를 맡아 키우도록 하늘이 점지해 줬을 리는 없다. 만약 그런 거라면 그냥 줘버리겠다. “옛다. 가져가라. 좋은 성격”하고.

힘든 상황을 어떻게든 살아내려다 보니 긍정적인 마인드가 필요했고 그로 인해 부모들이 변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장애 아이를 키우기 위해 더 나은 인간으로, 더 행복한 인간으로 스스로 변화한 것이다. 마치 드래곤볼의 사이어인이 초사이어인이 되는 것처럼 필요에 의해서. 그래야 살아갈 수가 있으니까.

장애 아이를 키우려면 스스로 행복해져야 한다.(사진:Cindy Hughes/shutterstock.com)

여하튼 이 세상 모든 장애 아이의 부모들은 나름의 사정을 잘 이겨내고 각자의 현실에 맞게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아이의 장애 정도와 특성에 맞게 가족 구성원이 오랜 시간에 걸친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모두에게 가장 좋은 삶의 방식을 찾아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 장애 아이의 부모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을 때가 있다. 가끔은 그동안 힘들게 쌓아올린 일상이 휘청휘청 할 정도로 강한 펀치를 맞기도 한다.

낯선 타인이 내 아이에게 ‘장애인 바이러스’가 옮을까 슬금슬금 피하는 때를 말하는 게 아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선의의 마음에서 위로의 말이라고 던지는 한 마디가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힐 때가 더 많다. 참 아이러니 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연말이라고 송년회가 한창이다. 친구들과의 모임에 다녀온 남편이 꽐라가 돼서 들어왔다. 다음 날 아침 잔소리 폭탄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남편이 조용히 털어놓는다. “친구들이 동환이를 시설에 맡기래….”

들고 있던 국자를 놓칠 뻔했다. “뭐? 왜?” 친구들의 말은 남편을 위한 것이었다. 남편과 나, 우리 딸이 아들 하나로 인해 일상의 많은 부분에서 제약을 받으며 살고 있다고, 셋을 살리기 위해 하나를 희생하라는 조언이었다.

가족이 아프면 당신들은 그리 쉽게 병원이나 시설에 내던질 수 있을까? 하물며 부모나 배우자도 아닌 자식인데….

  

나라고 상황이 다르지는 않았다. 1년 만에 모인 친구들과의 송년회에서 나는 속으로 눈물을 흘려야 했다. 친구들은 내게 동환이를 너무 오냐오냐하며(장애인 취급하며) 키우지 말라고 조언했다. 전에 한 번 봤더니 얌전하기만 했다며 종종 해외여행도 데리고 다니며 살라고.

이런 말이 나오면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다. 우리 아들이 일반 아이들과 어떻게 다른지 구구절절 설명하고, 비행기를 탔을 때 갇힌 공간에서 아이가 난리를 치기 시작하면 기내에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최대한 자세히 설명을 해야 하는 것이다.

남편을 위하고, 나를 위한 선한 의도에서 한 조언들이지만 장애 아이를 현실에서 키우고 있는 부모들에겐 상처가 된다.

가족이라고 해서 다를 것도 없다. 바로 옆에서 보고 있어도 아침부터 밤까지 한 집에서 살지 않는 이상 장애 아이를 키우는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때론 남보다도 못한 상처를 깊게 주기도 한다.

주변에 한 자폐아이의 엄마는 시어머니 때문에 많은 눈물을 흘리며 산다. 귀한 자기 아들이 장애 아이를 키우며 힘들게 사는 게 못마땅했던 시어머니는 아들을 치료실에 데리고 다니는 며느리가 보기 싫었다.

손자에게 필요한 건 치료가 아니라 굿을 해서 악귀를 쫓아내는 것인데 며느리가 결사반대하며 굿을 못하게 하자 복장이 터진 것이었다. 악귀만 쫓아내면 손주가 정상인이 될 수 있는데 치료실만 전전하고 있으니 며느리가 곧 악마나 다름없게 보였다.

대한민국 아줌마들의 사이다 역할을 하고 있는 김미경 강사는 이렇게 외친다. “여자들이여~ 행복해져라~.” 시중에 나와 있는 온갖 육아서와 각종 육아 방송들도 같은 말을 한다. “엄마들이(양육자가) 행복해져야 가정이 행복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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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아이를 키우는 가정도 마찬가지다. 부모들이 행복해져야 장애 아이도 행복해진다. 그러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가정 내부에서 일어나는 요인이야 어쩔 수 없지만 외부에서 일어나는 요인들은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하다.

어렵지도 않다. 장애 아이의 부모들에게 왜 그러고 사느냐며 다른 방식으로 살 것을 강요하지만 않으면 된다. 그렇게 살고 싶어 사는 게 아니라 그것이 최선이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것이므로.

모든 육아가 다 그렇듯이 나라에서도 ‘엄마가 행복해져야…’의 법칙은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거 하나는 기특하다.

아이가 유치원이나 학교에 입학을 하면 교육청에서 지원하는 부모 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장애 아이를 둔 부모는 누구나 신청을 할 수가 있다. 아쉬운 건 횟수인데 10회 상담으로 한정돼 있어서 양육자의 마음을 깊숙한 곳까지 어루만지기에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

복지관을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교육청과 마찬가지로 1:1 대면상담은 물론 비슷한 처지의 엄마들이 모인 그룹상담, 앞서 장애인을 키운 선배맘과의 개별 상담 등 부모들의 정신적 힐링을 위한 여러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물론 복지관 역시 총 횟수가 제한되어 있고, 가끔은 전문성에서 문제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잘만 이용하면 꽤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어느 날 한 가정에 장애인이 뚝 하고 떨어졌다. 가장 힘든 건 본인이지만 그 옆의 가족들 역시 이루 말할 수 없는 ‘별 짓’을 다 겪으며 인생을 살게 됐다. 하지만 밝게 살려고 하고, 웃으며 살고자 한다. 그러지 않으면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다.

그래서 부탁을 하고자 한다. ‘별 짓’을 다 겪으며 살지 않아도 되는 일반인들에게.

“걱정하는 마음, 위하는 마음은 잘 알고 있습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 마음만 받겠습니다. 선을 넘는 오지랖은 사양합니다. 그냥 지지의 눈빛으로 지켜만 봐주세요. 그럼 다들 행복하세요~ 우리처럼~. 이만 총총”

(사진:Robert Kneschke/shutterstock.com)

/사진:류승연

동네 바보 형 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장애인 월드’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에피소드별로 전합니다. 모르면 오해지만, 알면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런 비장애인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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