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들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들
2016.12.07 17:57 by 지혜

김효은 쓰고 그린 <나는 지하철입니다>,

강경수 쓰고 그린 <나의 아버지>

 

 

당신은 이미 충분한 이야기,

<나는 지하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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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하철입니다.”

지하철이 스스로를 가리키며 조심스레 말문을 연다. 하지만 시작과 다르게 이야기의 주인공은 ‘사람’이다. 그것도 아주 평범한 사람들. “매일 같은 시간 매일 같은 길”을 오늘도 쉬지 않고 달리는 지하철처럼 매일 같은 오늘을 기꺼이 살아내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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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꼭 연극 무대 위의 배우 같다. 조연은 없다. 모두 유일한 삶을 가진 오늘의 주연이다.

어디든 늦지 않으려고 달리는 완주씨, 자식 입에 들어갈 밥 한 술에 뿌듯해질 할머니, 누군가의 딸이자 엄마인 유선이, 신발 전문가 재성 아저씨, 무거운 가방 같이 축 쳐진 나윤이, 뭐든지 파는 구공철씨, 스물아홉 이도영까지. 지하철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그 이름들을 소리 내어 불러본다. 그리고, 불러보고 싶은 이름 하나가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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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는 노력으로 이루어낸 눈부신 성공 이야기 혹은 안정을 포기하고 자유를 찾아 훌쩍 떠난 여행 이야기 같이, 모두가 주목하는 오늘이 아니지만 괜찮다. 이 그림책이 말하듯 그저 그런 일상이라도 우리의 삶은 이미 충분한 한 편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덜컹 덜컹 덜커덩 덜컹 지하철에 몸을 싣는 매일, 삶이 늘 시적이지는 않을지라도 최소한 운율은 있다.*

*영국의 수필가 앨리스 메이넬의 <삶의 리듬> 중에서 

이야기로 가득한 지하철 안에서 기어코 익숙한 얼굴 하나를 찾아낸다. 꼭 찾고 싶었다. 누구보다 오래 지하철을 탔을 나의 아빠, 김광준이다.

아빠는 작년에 퇴직을 하셨다. 삼십 년 넘게 일한 곳이었다. 그 중 이십 년 동안 꼬박꼬박 지하철을 타셨다. 아빠의 출근길은 아주 복잡했다. 집에서 역까지 가는 마을버스를 타고, 3호선에서 1호선으로 환승한 후에, 다시 역에서 회사까지 가는 마을버스를 타야만 했다.

부모님은 몇 번이나 회사 근처로 이사를 갈까 했지만 결국 떠나지 못했다. 아마도 집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렵게 장만한 신도시 아파트, 거실에는 4인용 소파와 피아노를 두고 딸 둘에게 자기만의 방을 만들어줄 수 있었던 그 집은 아빠가 상상해왔던 스윗홈, 거의 유일한 자부심이었다. 나는 그 자부심을 먹고 자랐다.

그렇게 아빠는 아침마다 지하철에 깊이 몸을 파묻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곳이 일터였으니까. 물론 의사는 아니었고 평범한 사무직이었다. 어릴 때에는 아빠가 일하는 병원에 가면 괜히 우쭐해졌다. 넓고 깨끗한 복도로 걸어 나오는 아빠의 양복이 근사했고 옷에 스며드는 소독약 냄새는 특별했다.

철이 좀 들었을 때에는 ‘니들이 무조건 건강하게만 자라길 바랐다’는 아빠의 말이 마음을 콕콕 찔렀다. 아빠가 일하던 병원은 암을 전문으로 치료하는 곳이었고 말기 환자들이 많이 찾는다고 했다. 우리 또래 아이들이 독한 항암치료를 받느라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아빠 가슴이 너무 쓰렸단다. 아빠는 죽음과 고통의 장면들이 어른대는 곳으로 매일 아침 출근을 한 것이다. 먹고 사는 일은 원래 다 힘들다고 하지만 나는 아빠가 우리 아빠라서 더 짠하다.

서른이 넘었을 때에는 아빠의 좁은 어깨가 눈에 들어왔다. 왜소하게 구부러진 어깨를 나는 이미 눈치 챘는데 아빠는 아직도 큰소리친다.

딸, 힘들면 말해. 아빠가 있잖아.

 

 

아빠 내 뒤에 있는 거지,

<나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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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우리 아빠는 못하는 게 하나도 없었다. 볼링도 테니스도 축구도 자전거도 수영도. 아빠는 운동선수보다 멋있었다. 나한테 다 가르쳐 주겠다고 했는데 나는 너무 빨리 커버렸고, 아빠 옆에 있을 시간과 마음은 너무 빨리 작아져 버렸다.

이제 아빠는 잘하는 것 보다 못하는 게 더 많아졌다. 그 어깨처럼 점점 늙고 허름해진다. 솔직히 나도 아빠도 다 알고 있는데, 우리는 서로 모르는 척 한다.

“아빠, 내 뒤에 있는 거지?”

“그럼, 물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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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오래, 지금처럼 내 뒤에 있을 거라고 믿는다. “우리 아빠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니까.

언젠가 아빠가 이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 어색하고 쑥스러워 사랑한다는 말도 제대로 못하는 나 대신에 ‘당신은 이미 충분한, 한 편의 이야기’라고 전해주길.

  Information

<나는 지하철입니다> 글·그림: 김효은 | 출판사: 문학동네 | 발행일: 2016년 10월 10일 | 가격: 14500원

<나의 아버지> 글·그림 강경수 | 출판사: 그림책공작소 | 발행일: 2016년 5월 8일 | 가격: 12000원

/사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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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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