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열의 대왕, 람세스2세의 여자들
정열의 대왕, 람세스2세의 여자들
2016.12.09 17:30 by 곽민수

람세스 2세는 사랑도 뜨겁게 하던 아주 정열적인 남성이었습니다. 그는 100여 명에 이르는 아들들과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아들 숫자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으로 여겨지는 많은 딸을 낳았습니다.

당연히 그에겐 여러 명의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네페르타리(Nefertari)와 이시스-네페르트(Isis-Nefert)인데, 이 두 왕비에게서 람세스는 아들 여섯과 딸 둘을 보았습니다. 네페르타리는 람세스 2세의 재위 24년경 사망하는데, 죽기 전까지도 독보적인 지위를 갖고 있던 람세스의 제1 왕비였습니다. 그녀는 아케나텐의 부인이었던 네페르티티(Nefertiti)와 이름이 비슷해서 종종 혼동되기도 하지만 둘은 분명히 다른 인물입니다. 네페르타리의 유명세는 물론 람세스 2세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주 아름답고 또 상당히 잘 보존되어 있는 그녀의 무덤(QV66)도 그녀의 유명세를 키우는데 한 몫 거들었습니다.

네페르타리. (Nina de Garis Davies의 그림)
네페르타리 무덤 입구. 무덤은 보존을 위해서 이렇게 자주 관광객의 입장을 제한합니다.
화려하게 꾸며진 네페르타리 무덤 내부. 사진 촬영 후 보정 (사진: scionik.ru)

네페르타리가 사망한 후에는 이시스-네페르트가 제 1왕비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하지만 이세스-네페르트에 대한 기록은 네페르타리만큼 많이 남아 있지는 않습니다. 이세스-네페르트는 그녀 자신보다는 그녀의 아들들 때문에 유명세를 얻었습니다. 그녀가 낳은 세 명의 아들 가운데 한 명이자 람세스의 열세 번째 아들인 메렌프타(Merenptah)는 람세스 2세의 뒤를 이어서 운 좋게 파라오가 되었습니다. 람세스는 거의 90세까지 살았는데, 워낙 장수를 하다 보니 그의 아들들은 대부분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서열 13위인 메렌프타가 왕위에 오른 것도 사실은 이 때문입니다. 물론 메렌프타가 왕위에 올랐을 때에는 그도 이미 마흔이 넘은, 당시 기준으로는 꽤 고령이었습니다.

룩소르에 있는 메렌프타의 장례신전. 신전은 이렇게 터만 남아 있습니다.

이시스-네페르트의 또 한 명의 유명한 아들은 카엠와세트(Khaemwaset)입니다. 람세스 2세의 넷째 아들인 그는 굉장히 독특한 인물인데, 생전에는 맴피스에 있는 프타 시전의 대신관이자 굉장한 마법사로 이름을 날렸고, 고대의 기념비들을 발굴하는데 열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이집트학자들에게는 ‘최초의 이집트학자’라고 불리기도 하죠.

사카라에서 우리가 만났던 파라오 우나스의 피라미드에는 카엠와세트가가 그곳을 보수하고 관리했다는 비문이 남아 있습니다. 람세스 2세의 치세와 우나스 피라미드가 건설되던 시기는 약 1000년 이상의 시간적인 차이가 있으니, 람세스 2세 시대에도 우나스 피라미드는 이미 ‘고대의 유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카엠와세트는 이집트학자라고 불릴 자격이 충분히 있습니다.

람세스 2세의 부인들 가운데는 그 자신의 여동생과 몇 명의 딸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뭐라 말하기 좀 그렇지만 당대에는 분명 크게 애석하거나 파격적인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람세스 2세에게는 또한 히타이트 공주였던 왕비들도 있었습니다. 세 명이나 있었는데, 이들과 람세스의 혼인은 모두 이집트와 히타이트 간의 평화조약의 결과물이었습니다.

카엠와세트의 두상. 독일 베를린 신박물관 소장.

공주들의 출신지인 히타이트는 람세스 당대에 이집트와 세계의 패권을 두고 경쟁하던 초강대국이었습니다. 이집트와 히타이트, 이 두 강대국은 오늘날의 시리아 근방에서 국경을 맞대고 있었는데, 그에 따라 두 나라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적대적이 되었습니다. 람세스 2세의 선왕 세티 1세 시절에도 끊임없는 국경 분쟁이 있었는데, 그 분쟁에 마침표를 찍기 위하여 람세스는 재위에 오르자마자 히타이트 원정을 준비합니다.

드디어 재위 5년에는 람세스는 병력을 모아 히타이트로 진군을 시작하였습니다. 병력규모는 이집트 역사상 최대로 알려진 2만 명. 람세스는 이 2만 명의 군대를 4개의 사단으로 나누어 각각 아멘, 라, 프타, 세트라는 다들 들어보셨을법한 신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람세스 군의 목표는 카데쉬(Qadesh)라고 불리던 도시였는데, 그곳은 주변이 운하로 둘러싸여 있어서 난공불락의 요새로 명성이 높던 곳이었습니다.

람세스 2세 시대의 이집트와 히타이트

히타이트의 왕 무와탈리스는 이집트 병력의 2배에 가까운 4만 명의 병력과 2,500대 이르는 전차를 가지고 람세스 군을 맞이했습니다. 게다가 훨씬 더 우월한 전술을 가지고 람세스 군을 궁지로 몰아넣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혼전 중에 람세스 2세는 고립되었고, 그의 곁에는 소수의 호위 병력만 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람세스는 용맹함을 마음껏 자랑하며 전장을 누볐고(물론 이집트 측 기록에 따른 것입니다), 결국 또 다른 이집트의 예비 병력이 히타이트군의 측면을 공략함으로 전선을 다시금 교착상태에 빠졌습니다.

룩소르 시전에 위치한 람세스2세의 동상(사진:Graficam Ahmed Saeed/shutterstock.com)

이후에도 몇 차례 격렬한 전투가 있었지만, 양측은 특별한 전과를 거두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무와탈리스는 람세스에게 휴전을 요청하였고, 람세스는 못이기는 척 군대를 철수시켰습니다. 훗날 이 전투에서 람세스가 보인 활약은 엄청나게 과장되어 람세스 2세와 관련이 있는 주요 건축물인 라메세움, 아부심벨, 카르나크, 룩소르 신전 등의 벽면에 큼지막하게 새겨지게 됩니다.

우리가 이미 지나온 여러 유적에서 보왔듯이, 람세스는 전장을 홀로 누비며 수백 명의 적들을 때려눕히는 초인적인 영웅으로 묘사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기는 했을지언정 이것은 분명히 과장입니다. 오히려 람세스는 겨우 패배를 모면한 채 전장에서 후퇴했다는 객관적인 증거들이 더 많은 만큼. 그는 분명히 쾌남이었던 것 같지만, 또 동시에 엄청난 허풍쟁이였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전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람세스 2세. 룩소르 신전의 제1탑문

고고학자와 함께하는 이집트 유적 기행 이집트 연구가 곽민수 필자가 현장에서 직접 전하는 기억과 기록. ‘고고학자와 함께하는 이집트 유적 기행’은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이집트의 매력을 소개하고, 현지 유적을 통해 5000년 전 역사속 세계로 초대한다.

필자소개
곽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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