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산타할아버지는 진짜야.
그 산타할아버지는 진짜야.
2016.12.21 15:36 by 지혜

 

존 버닝햄 쓰고 그린 <크리스마스 선물>

가노 준코 쓰고 구로이 켄 그린 <있잖아요, 산타 마을에서는요…>

앨런 앨버그 쓰고 자넷 앨버그 그린 <우체부 아저씨와 크리스마스>

 

 

어쩌면 우리는 어른이 되는 값으로, 지갑 속에서 ‘새로운 하루’를 꺼내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하루를 야금야금 쓰면서 어른이 되고나면 지갑에는 거의 똑같은 모양의 ‘헌 하루’만 남을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비록 능숙하지만 결국 진부하게, 매일을 살게 된다.

 

그렇게 크리스마스도 점점 다른 날과 다름없는 날이 되었다. 보통의 토요일처럼 데이트를 하거나 친구들을 만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맘껏 떠들다가, 밤늦게 집으로 돌아와도 내일은 쉬는 날이니까 괜찮은 날. 좀 특별하다 해도 케이크를 사고 촛불을 끄고 박수를 치고 선물을 주고받는 ‘코스’는 빠지지 않는 흔한 기념일 중 하루.

 

나는 따분한 사람이라 그럴까, 이제는 이마저도 안한다. 행복한 상상력 따위는 이미 오래전에 던져버렸고 차도 사람도 밀리는 복잡한 거리가 싫어서 집 안으로 꽁꽁 숨는다. 찬바람에 코끝이 시큰해져도 반짝반짝 빛나는 트리를 보고 캐럴을 들어도 ‘그러려니’ 한다.

 

그게 뭐 별거라고.

 

너무 쉽게 늙어버린 나의 크리스마스는 더 이상 재미가 없다. 대신 아이의 크리스마스를 지켜본다. 지갑에 ‘새로운 날’이 두둑하게 들어있는 초록이와, 초록이의 크리스마스는 참 두근두근하다.

 

초록이는 늦가을부터 산타할아버지한테 기도를 시작했다. 기도는 간결하고 명확하다. 내용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구성이 항상 같다. 구체적인 예를 들며 전 착한 어린이입니다, 하는 고백으로 말문을 열고 갖고 싶은 선물을 콕 집어 꼭 달라고 당당히 요구하며 마무리 한다. 덕분에 연말 육아와 훈육은 한결 쉬워진다. 초록이와 친구들은 세상에 나온 지 벌써 6년차에 접어드는데 아직도 ‘이렇게 울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안주신대’가 통한다.

 

막연하기만 하던 산타할아버지의 실체가 명확해지면서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마음이 더 간절해진 듯하다. 초록이는 작년에 어린이집에서 처음으로 산타할아버지를 만났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어린이집에서 공문이 온다. 선물 준비와 포장에 대한 안내이다. 나는 틈틈이 산타할아버지를 향한 초록이의 기도를 엿들었다가 몰래 선물을 마련한다. 마음이 언제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절대 서두르면 안 된다. 은근하게 확인도 해야 한다. “산타할아버지한테 뭐 달라고 얘기했어? 엄마한테만 말해봐, 비밀 지켜줄게.” 아이가 눈치 채지 못하게 선물을 사서 예쁘게 포장하고, 그 위에 누런 소포지로 싼 다음에 다시 신문지로 포장해서 선생님께 슬쩍 전달하기까지 그 과정은 생각보다 어렵다. 이제 금요일이 되면 어린이집에 산타할아버지가 오실 일만 남았다.

 

선물은 집에서 뜯기로 약속을 하기 때문에 터질듯 한 설렘을 누르고 꽤 긴 시간을 견뎌야 한다. 초록이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집에 돌아올까, 어떤 얼굴로 선물을 품에 안을까, 산타할아버지가 자기 마음을 어떻게 알았냐고 깜짝 놀랄까, 작년에 봤던 표정과 환호가 참 예뻤는데 올해는 얼마나 더 예쁠까. 초록이는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고 나는 초록이의 그 마음들을 기다린다.

 

초록이가 조금씩 어른에 가까워질수록, 우리가 나란히 앉아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일은 점점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초록이가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오래오래 믿었으면 좋겠다. 아이 곁에서, 아이의 크리스마스를 지켜보는 행운을 좀더 누리고 싶어 그런다. 초록이가 나중에 산타할아버지를 의심하게 되더라도 나는 절대 웃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말할 것이다. “그 산타할아버지는 진짜야”

 

산타할아버지는 진짜라고 시치미 떼는 그림책들을 소개한다. 아이와 같이 크리스마스의 행운을 마음껏 누리길. 모두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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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할아버지는 반드시 온다,

<크리스마스 선물>

 

 

크리스마스 이브,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고 돌아온 산타할아버지와 순록들은 너무 지쳤다. 심지어 순록 한 마리는 탈이 나서 아프기까지. 할아버지는 피곤을 참고 순록을 챙기고 나서야 겨우 침대에 눕는다. 그런데 그 순간 침대 발치에서 깜빡 잊어버린 하비의 선물 하나를 발견한다. 할아버지는 너무 피곤하고, 순록은 아프고, 하비네 집은 아주아주 멀고먼 롤리폴리 산 꼭대기인데, 산타할아버지는 과연 어떻게 할까.

 

딱 하나 남은 선물을 전하기 위해 산타할아버지는 순록 대신 비행기를, 지프를, 스키를, 온 세상에 탈 것들을 타고 조금씩 하비네 집에 가까워진다. 기꺼이 도움을 준 사람들 덕분이다. 단 한 명의 아이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모두가 춥고 어두운 겨울밤을 달린다. 저 멀리, 산 꼭대기에 사는 가난한 소년 하비의 행복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이들은 알고 있다.

 

군데군데 피식 웃게 하는 장면들이 즐겁다. 당연하다는 듯 침대에 누워있는 순록의 표정에 초록이가 웃었고 빨간 외투 아래 보이는 줄무늬 잠옷에 내가 웃었다. 할아버지의 여정은 고되기만 한데, 자꾸만 웃음이 나와 죄송했다. 귀여운 상상이 돋보이는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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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할아버지의 사생활,

<있잖아요, 산타 마을에서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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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4일 밤, 산타할아버지는 공식적인 활동을 한다. 하지만 나머지 날들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아이들은 궁금하기 마련이다. 산타할아버지는 어디에 사는지, 내 이름과 내가 받고 싶은 선물은 어떻게 아는지, 착한 일을 할 때 어디에서 지켜보고 있는지, 장난감은 어디에서 가져오는지와 같은 질문에 이 그림책은 동글동글한 글과 따뜻한 색깔로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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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부터 12월까지, 산타 마을이 쉼 없이 굴러가는 모습을 차례차례 보여준다. 산타할아버지들은 계절에 맞게 장난감 씨를 뿌리거나 신체 검사를 받고 여름 휴가를 떠난다. 내 마음이 가장 오래 머물렀던 달은 9월이다. 장난감 밭에서 장난감을 거두어들여 예쁘게 포장하는 산타할아버지의 손길과 표정은 나까지 설레게 만들었다. 이 그림책의 그림들이 참 좋아서 달력으로 만들어 일 년 내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이의 성향이나 엄마의 취향에 따라 다른 그림책으로 산타할아버지의 사생활을 상상해보는 것도 괜찮다. 썰매의 구조와 속도, 장남감을 만드는 공장, 어린이들을 모니터링하는 요정과 컴퓨터 사무실처럼 구체적인 그림과 과학적인 근거를 들어 설명하는 ‘산타백과사전’ (앨런 스노 글 그림, 청어람미디어 펴냄)이나, 나머지 11개월 동안 다이어트를 하고 여행을 다니고 공부를 하는 산타할아버지의 다양한 모습이 흥미로운 ‘산타할아버지 11개월 동안 뭐 하세요?’ (마이크 라이스 글 마이클 G. 몽고메리 그림 미래아이 펴냄)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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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쓴다는 것,

<우체부 아저씨와 크리스마스>

 

 

스마트한 이 시대에도 여전히 손으로 쓰는 편지는 유효하다. 더군다나 산타할아버지에게 마음을 전하는 길은 편지가 유일하다. 산타할아버지를 그리는 그림책에서 편지는 빠지지 않는 아이템이다. 할아버지의 하얀 턱수염과 빨간 코트처럼, 편지라는 고전적인 연락 방식은 계속 이어질 것 같다. 우리의 산타할아버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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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은 상상이 ‘진짜’가 되는 순간들을 모았다. 우리 동네에도 있는 우체부 아저씨가 그림책에서나 보던 동화 속 주인공들과 산타할아버지에게 차례로 편지를 배달한다. 그림책을 넘기다 보면 배달 된 편지 봉투가 나오고 그 안에는 진짜 크리스마스 카드가 들어있다. 아이들은 빨간 모자 아가씨와 꼬마 생강빵, 늑대 대신에 직접 봉투를 열어 편지 받는 기쁨을 누린다. 각각의 봉투에 들어있는 크리스마스 카드, 주사위 놀이판, 장난감 마을 신문, 늑대 감시원 안내서, 만화경 엽서 덕분에 책은 그 자체로 작은 선물 상자가 된다. 

 

 

 

그림책들을 배부르게 읽고 나서 우리는 산타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기로 한다. 다섯 살 초록이는 아직 글씨를 쓸 줄 몰라 그림을 그렸다. 엘리베이터에서 어른을 만났을 때 부끄러워서 인사하기 싫었지만 씩씩하게 인사를 했으니 선물을 꼭 달라고 그렸다는데, 산타할아버지께서 알아보실지 걱정이다. 뭐, 못 알아보셔도 어떤가. 이미 초록이의 마음은 산타할아버지에게 닿았을 텐데.

 

 

Information

<크리스마스 선물> 글·그림: 존 버닝햄 | 역자: 이주령 | 출판사: 시공주니어 | 발행1997.01.01 | 가격: 8,000원(원제: Harvey slumfenbuger's christmas present) 

<있잖아요, 산타마을에서는요…> 글: 가노 준코 | 그림: 구로이 켄 | 역자: 고향옥 | 출판사: 길벗어린이 | 발행1999.11.20 | 가격: 9,000원(원제: あのね, サンタの國ではね…)

<우체부 아저씨와 크리스마스> 글: 앨런 앨버그 | 그림: 자넷 앨버그 | 역자: 김상욱 | 출판사: 미래아이(미래M&B) | 발행2005.11.15 | 가격: 14,000원(원제: The Jolly Christmas Postman)

 

/사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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