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길 옆 삼시세끼 ‘정선아리랑열차’
기차 길 옆 삼시세끼 ‘정선아리랑열차’
2016.12.24 14:30 by 최현빈

산 너머 산, 그리고 또 산. 겹겹이 펼쳐진 산자락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강원도 정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죠. 태백산맥 중심에 위치한 정선은 전형적인 두메산골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TV 프로그램 <삼시세끼>의 배경으로 등장해 사람들을 자연으로 이끌기도 했지요.

'정선선'은 정선군 민둥산역부터 구절리역까지를 잇는 철길입니다. 현재 열차는 아우라지역까지만 운행하고, 구절리역까지의 마지막 구간은 레일바이크가 다니고 있지요. 서울에서는 청량리역에서 관광열차 ‘정선아리랑열차’를 통해 정선으로 갈 수 있습니다.(하루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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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초입 무렵, 맑은 공기를 쐬고 싶어 무작정 정선행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열차는 끊임없이 깊은 산을 달립니다. 목적지인 정선에 가까워지자 창밖으로 푸른 산과 굽이치는 조양강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조양강은 남한강을 이루는 강 중 하나로, 여름철 래프팅 명소로 익숙한 동강의 상류이기도 하지요.

탄광에서 여행지로

지금은 여행지로 친숙하지만, 정선은 강원도의 대표적인 탄광 도시 중 하나입니다. 국내 석탄의 약 31%(대한석탄공사 기준)가 정선 땅 아래 묻혀 있지요. 광업이 한창 발달했던 80년대 이전에는 석탄을 실은 열차가 정선선의 선로를 힘차게 달렸습니다. 지역의 산업도 마을을 드나들던 광부들과 함께 번성했지요.

하지만 석탄 산업이 점차 쇠퇴하고, 1989년 정부가 경제성이 낮은 탄광을 정리하는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을 펼치면서 광업에 의존하고 있던 정선도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 탄광은 문을 닫고 사람들은 마을을 떠나게 된 것이지요. 태백, 삼척 등 다른 강원도의 광업 도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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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정선을 사람들이 다시 찾게 된 건 이곳이 관광지로 변모하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광산 대신 카지노 시설인 강원랜드가 들어서고, 5일장 또한 정선의 볼거리가 되었습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했던 정선선 열차는 관광열차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열차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도 아름답지만, 구절리-아우라지 구간을 다니는 레일바이크는 눈과 발로 직접 자연을 마주할 수 있는 방법이지요.

정겨운 풍경 가득한 정선아리랑시장

정선 주민들에게 철도는 생활에서 중요한 교통수단입니다. 산골짜기를 따라 드문드문 자리한 정선의 각 지역에서는 아리랑시장, 임계장, 여량장 등 다양한 5일장이 열립니다. 정선 재래장의 대표적인 상품 중 하나는 정선의 산지에서 직접 캔 나물. 열차에선 나물을 팔기 위해 정선 내의 다른 지역으로 향하는 할머니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정선아리랑시장의 모습

정선아리랑시장은 전국 최대 규모의 5일장 중 하나입니다. 매 2일, 7일마다 정선군 정선읍에 서고 있지요. 정선역과 가까운 곳에서 열리기 때문에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 시장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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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시장을 찾았습니다. 한 쪽에서는 머루와 오미자 같은 작은 산열매들이 고운 자태를 뽐냅니다. 어디선가 메밀전병, 빈대떡 등을 굽는 고소한 냄새도 솔솔 납니다. 시장에서 먹거리 코너를 그냥 지나칠 순 없지요. 전병과 빈대떡, 녹두빈대떡을 주문했습니다.

음식들은 고소한 냄새만큼이나 맛있었습니다. 김영희(67·강원도 정선) 할머니는 13년 전부터 이곳에서 메밀전병, 수수노찌 등을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 수수노찌는 수수가루와 찹쌀가루를 섞어 만든 떡. 할머니가 직접 재배한 수수를 빻아 만들었습니다. 김 할머니는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이곳의 풍경은 그대로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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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할머니가 만든 녹두빈대떡. 바삭바삭하면서 따끈한 맛이 입을 쉬지 않게 만듭니다.

김구열(57‧경기 평택)씨는 아내와 함께 가을 여행을 나왔습니다. 언젠가부터 여행을 떠나면 항상 장터를 찾는다는 김씨. 그는 “정선 5일장이 유명하다고 해서 어렸을 적 향수를 따라 찾게 됐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곳에서 무엇을 샀을까요? 김씨의 손에 들린 작은 봉투 속에는 정선의 명물 수리취떡이 들어있었습니다. 산이 많은 정선에서 난 수리취 잎을 넣어 만든 것이지요. 큼지막한 더덕도 그의 눈길을 끌었는데요. 규열씨가 “세상에서 그렇게 큰 더덕은 처음 봤다”며 놀라자, 옆에 있던 할머니가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7~8년은 된 더덕이라 그래. 여기 더덕들은 다 산에서 딴 거야.”

전으로 배를 채운 후, 예쁜 산열매들이 보이는 코너로 갔습니다. 변옹녀(67·강원도 정선) 할머니에게서 색도 예쁘고 몸에도 좋다는 오미자 5천 원 어치를 샀습니다. “이렇게 조금은 안 판다”는 할머니였지만 조르고 졸라 살 수 있었지요. 변 할머니는 정선아리랑시장에서 가장 오랫동안 장사를 해 온 사람 중 한명입니다. 할머니가 처음 물건을 팔기 시작한 것은 스물일곱 살 때,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의 일입니다.

변옹녀 할머니와 오미자

“오늘은 정선에서 팔고, 내일은 진부에서 팔고, 다음날엔 임계에서 열리는 장으로 가야돼.”

변 할머니의 말입니다. 이날 파는 열매와 나물들은 바로 어제 딴 것들. 할머니는 정선아리랑시장을 시작으로 정선 각 지역의 5일장을 돌 예정입니다. 장사를 처음 시작할 때는 아이들의 나이가 서너 살이었는데, 어느덧 손자들이 다 큰 자제분들 손을 붙잡고 시장으로 놀러온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물건 팔 준비하려면 새벽 네 시에 집에서 나와야 돼, 그래도 가족들이 있으니까 피곤한 마음이 들지 않고 행복해”라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시장을 나와 정선선의 작은 역으로 향했습니다. 정선선의 끝, 구절리역은 열차가 다니지 않는 폐역입니다. 하지만 철로엔 사람들이 제법 모여 있는데요. 레일바이크를 타기 위해 찾아온 여행객들입니다. 이들은 구절리에서 출발해 아우라지역까지 레일바이크를 타고 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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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선의 나전역과 아우라지역의 풍경

강이 구절양장(九折羊腸·아홉 번 꺾어진 양의 창자라는 뜻)의 형태로 굽이쳐 흐른다는 뜻에서 이름 지어진 구절리. 여행객들은 굽이친 계곡을 따라 열심히 페달을 밟습니다. 레일바이크는 두 개의 강이 만나는 곳이란 데서 이름 붙여진 '아우라지'에서 멈춥니다.

아우라지에서 바라본 풍경은 아름다웠습니다. 정선선의 열차들, 시장의 할머니들, 흐르는 강물들. 처음 ‘두메’의 이미지만 가지고 방문한 정선에선 다양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아름다움이 오래도록 남아있길 바랍니다.

아우라지에서 바라본 조양강

 

/사진: PJ

필자소개
최현빈

파란 하늘과 양지바른 골목을 좋아하는 더퍼스트 ‘에디터 ROBIN’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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