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조인 서비스 (전편)
활동보조인 서비스 (전편)
활동보조인 서비스 (전편)
2016.12.27 17:06 by 류승연

장애인활동보조 서비스라는 게 있다. 일반 가정에서 아이가 어릴 때 ‘이모님’을 구해 육아에 도움을 받는 것처럼, 장애인들은 활동보조인을 통해 일상생활의 도움을 받는다.

‘이모님’에게 지급하는 비용은 전적으로 부모의 몫이지만 활동보조인은 나라에서 파견해 주기에 부모가 지는 경제적 부담이 적다. 일반적으로 ‘이모님(조선족이 아닌 한국인 이모님 기준으로)’에게 드리는 비용의 10% 안팎 수준이면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아이가 만 7세 생일을 넘기자 국민연금관리공단으로부터 공문이 한 장 왔다.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며 신청을 하라는 내용이었다. 슬쩍 읽고는 그대로 휴지통에 던져 넣었다.

“일반 아이도 아닌 장애를 가진 내 새끼를 왜 남의 손에 맡겨. 그러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말 한마디 못하는 내 새끼. 눈 깜짝할 새 놓치기라도 하면 그대로 평생 생이별이다. 마찬가지로 잠시 한눈팔 때 도로에 뛰어들기라도 하면(아직 인도와 차도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대로 대형 교통사고가 일어날 게 뻔하다. 이런 데 남의 손에 아이를 맡기라고?

사실 활동보조인 서비스에 대한 불신을 더욱 공고히 하게 된 건 일명 ‘상윤이 사건’ 때문이었다. 18세의 발달장애 이 모 군이 두 살의 정상윤 어린이를 밖으로 던져 사망케 한 사건.

당시 이 모 군의 보호자로 복지관에 왔던 이는 활동보조인이었다. 그리고 그는 (아마도 그녀일 가능성이 크다.) 이 모 군이 자기 시야에서 사라졌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모는 다르다. 언제나 눈이 자식에게 가 있다. 아이가 어디를 돌아다니든 말든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지도 않을뿐더러 내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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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쯤에서 잠깐 상윤이 사건을 얘기하고 넘어갈까 한다. 상윤이 사건으로 인해 만연하게 퍼진 장애인 편견에 대해. 활동보조인에 대한 이야기에선 잠깐 벗어나겠지만 이 문제를 언제까지 회피하고 있을 수만은 없기에.

장애인 아이를 둔 부모들에게 가슴이 덜컥할 정도의 충격으로 다가온 게 아마도 이 사건이었을 거로 생각한다. 그리고 언제나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듯이, 이 사건으로 인해 장애인들은 가까이해서 좋을 게 없는 위험한 존재로 낙인이 찍혔다.

아니라고, 그렇지 않다고 100% 부정하지는 못하겠다. 달리 장애 판정을 받았겠는가. 우리와는 다른 감각과 인지 능력, 생각하는 회로도 다르고 의사소통에도 어려움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끔은 돌발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일반인들이 보면 자신의 생각에 더욱 강한 방점을 찍는다.

“저것 봐. 역시 장애인은 위험해”.

그런데 말이다. 나는 지금 여기서, 일반인들이 당연하다고 하는 그런 생각이 사실은 편견에 입각한 것이라는 얘기를 하고자 한다. 본인들은 편견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실에 따라 객관적인 판단을 한다고 믿고 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상윤이 사건으로 인해 장성한 장애인들은 가끔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기도 한다.

“옆에 장애인이 있는데 무서웠어요”.

하지만 장애인에 의한 강력범죄가 일반인들에 의해 일어나는 범죄보다 비율이 높을까? 아니 그 발끝에라도 미칠까?

대한민국에서 한 해 평균 1000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한다는 걸 아는가? 오늘만 해도 3명이 누군가에게 살해를 당했거나 조금 후에 당할 것이다. 한 해 평균 실종자 수가 5만 명을 넘어간다는 건? 바로 어제도 150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실종됐을 것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오늘의 135번째 누군가가 납치를 당하고 있을지 모른다.

통계가 말해주고 있다. 사실에 따라 객관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라면, 정말 무서워해야 하는 건 장애인이 아니라 바로 정상인이라 일컫는 우리 주변의 모든 일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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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람들은 참 매정하게도 상윤이 사건을 전면에 내세우며 “장애인은 위험해!”라고 규정짓는다. 하나의 사건으로 전체를 매도한다. 정작 길에서 만나는 일반인들에게는 아무런 경계도 취하지 않으면서.

장애인에 대한 편견 자체를 없애달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건 본인의 선택이니 남이 간섭할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장애인을 위험하다고 규정하고 비난하기에 앞서 자신의 그런 생각이 편견에 입각해 내린 결론이라는 인식은 해줬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 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어. 그래서 싫어. 어쩔 건데?”라고 말하는 편이 훨씬 낫다. “나? 장애인에 대한 편견 없어요. 장애인은 위험하기 때문에 싫은 거예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다시 활동보조인 문제로 돌아와서. 어쨌든 상윤이 사건은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이용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더욱 공고하게 해 준 계기가 되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내 품 안에서, 부모의 책임 하에 데리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장애인 아이의 부모들이 똑같이 비는 소원이 있다.

“자식보다 하루만 더 살게 해 주세요”

고백하자면 나는 그런 소원을 빈 적이 없다. 어차피 이뤄지지도 않을 소원을 뭐하러 빈단 말인가? 장애인 자식보다 딱 하루만 더 살게 해 줄 축복을 내려줄 생각이었으면 처음부터 자식에게 장애를 주지도 않았겠지. 안 그래요? 하나님? 부처님? 달님? 정곡을 찔렸는지 말들이 없으시네…

아무튼 난 장애인인 아들을 온전히 나 혼자의 책임으로 키우는 대신 늙고 병들어 더는 아이를 감당할 수 없을 때 데리고 떠나려 했다. 종종 부모가 장애인 자식을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했다는 뉴스를 접하곤 하는데 그에 대한 비난 여론 뒤에 숨어 나 역시 그런 길을 걸으리라 다짐하곤 했다.

부모 없는 중증 지적장애인의 삶이란 시설에 갇혀 모진 학대를 당하다 죽거나, 산골이나 어촌에 끌려가 노예생활을 하다 비참하게 생을 마감할 거란 두려움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들과 달라도 자신을 사랑해 준 부모 품에서 행복하게만 살다 같이 떠나는 게 장애인인 아들을 위하고, 남겨질 정상인 딸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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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내 생각의 변화를 맞는 계기가 생겼다. 어느 날 복지관에서 부모교육을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의 특수반 엄마들이 함께 모여 장애인 복지에 관한 강의를 들으러 갔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활동보조인 제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활동보조인 제도라는 건 잘만 활용하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든든한 의지가 될 수도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그리고 정말 잘 활용하면, 이 세상에 아들을 남겨두고 가도 될 것 같았다.

부모가 죽은 후에라도 활동보조인이 아들을 맡아 직장(빵 만들기, 수건 접기 등 단순노동 직업을 갖게 되겠지만)으로 출퇴근하는 데 도와주고, 퇴근 이후에도 집에 와서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간단한 일상생활을 하는 데 도움을 준다면 내 아들은 이 사회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몫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쌍둥이 누나에게 짐이 되지도 않으면서.

그리고 훗날 부모가 없는 상태에서도 아들이 혼자 살아갈 수 있도록 하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했다.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지금부터 이용하는 게 첫 시작이었다.

강사는 말했다. 불쌍한 장애인 자식이라고 부모 품에서만 키우다가 나중에 성인이 되어 힘이 떨어진 부모가 활동보조인 서비스의 도움을 받으려 하면 아이가 적응하는데 더 문제가 생긴다고.

안 그래도 학교가 아닌 사회라는 스트레스 상황 속에서 보호자가 바뀌는 갑작스러운 변화까지 맞으면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고. 아이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부모 품을 떠나 자립하는 연습을 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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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의 강의를 통해, 장애인인 내 아이를 이 세상에 남겨두고 가도 될 것 같은 길을 하나 찾았다.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잘 활용하면 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부터 행동에 옮겨야 한다. 나는 내년 봄부터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마음을 먹고 준비에 들어갔다. 장애인 등급 재판정을 받는 것부터 시작이다.

활동보조인 서비스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다음 화에서 마저 이어가도록 하겠다. 지금은 아이를 치료실에 데려가야 할 시간이다. 가기 전에 딸도 피아노 학원에 넣어놔야 하고. 바쁘다. 바빠.

/사진:류승연

동네 바보 형 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장애인 월드’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에피소드별로 전합니다. 모르면 오해지만, 알면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런 비장애인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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