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조인 서비스 (후편)
활동보조인 서비스 (후편)
활동보조인 서비스 (후편)
2017.01.03 16:56 by 류승연

금쪽같은 내 새끼를 남의 손에 맡기기로, 장애인 활동보조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마음먹은 건 아들의 자립을 위해서였다. 아홉 살이 된 지 3일. 아들은 오히려 어릴 때보다 더 엄마만 찾는 어린 아기가 되었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할머니나 외할머니한테 맡겨놓고 한 두 시간 나가서 일 보고 오는 게 가능했는데 지금은 내가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우왕~”하면서 맨발로 엄마를 찾아 뛰쳐나온다. 나 홀로 독박육아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들의 엄마 의존도 역시 높아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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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어 엄마 없이도 혼자 살아나갈 수 있도록 하려면 지금부터 연습을 해야 했다. 보통의 아이들은 세 네 번 말하고 경험하면 이해하는 상황을 지적장애를 가진 아들은 수백 번 반복 주입시켜야 겨우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내가 처음으로 한 일은 장애인 등급 재판정 심사를 요청한 것이었다. 3~4년 전 아들은 재활병원에서 심사를 받고 지적장애 2등급을 통보 받았다.

의사는 말했다. “동환이는 인지 면으로 보면 1등급인데 사회성이 좋아서 2등급이 됐네요. 1등급이랑 3점 차이예요. 아깝다”

당시 나는 ‘장애인 월드’에 막 입문한 신참이었기 때문에 뭐가 아까운 건지 몰랐다. 사회성이 좋으면 좋은 거 아니야? 이렇게 예쁘게 웃으며 어른들에게 잘 안기는데 좋기만 하구먼.

2등급이라 장애인 주차증 딱지를 못 받는 거? 에이 그럼 안 받으면 되지. 거기 말고도 주차할 데 많은데 뭘. 장애인 콜택시 사용 못하는 거? 에이 택시 안 타고 내가 운전해서 데리고 다니면 되지 뭐.

“등급은 상관없어요. 그건 종이에 기록된 숫자일 뿐이고 동환이는 동환이잖아요”

내가 순진했다. 나는 2등급을 받은 게 아들의 상태가 그리 심각하지 않다는 인증인 것 같아서 오히려 좋기까지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1등급이 분명한 아이는 1등급을 제대로 받는 게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말 한 마디 못하고, 먹고 입고 등 스스로 신변처리 못하고, 아직도 기저귀를 차는 우리 아들이 2등급이면 대체 1등급은 어떤 아이들이 받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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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우리 아들은 아직도 기저귀를 찬다. 소변은 잠잘 때를 빼고는 90% 이상 가리는 데 대변은 아직도 먼 나라 이야기다. 아이가 커가면서 기저귀 값도 무시 못 할 지경에 이르렀다. 마트에 파는 아기용 기저귀는 작고, 성인용 기저귀는 커서 간혹 밤에 실수하는 어린이들을 위한 팬티형 기저귀를 입히는데 개당 가격이 천원을 넘는다.

잠자는 동안 3~4개의 기저귀를 갈아치우고(왜 이리 자면서 오줌을 많이 싸는지 모르겠다), 응가를 안 한 상태에서 외출을 할 때면 기저귀를 채운다. 밖에서 바지에 똥 싸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다.

이로 인한 불똥은 가끔 나에게 튀곤 하는데 남편은 마트에 가서 내가 생리대를 고를 때마다 “아들 기저귀 값 대는 것도 허리가 휘는데 마누라 기저귀 값까지 대야겠어? 애도 다 낳았는데 그냥 빨리 폐경해버려~”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재치 있는 농담이라도 한 듯 혼자서 큭큭 거리며 뿌듯해 하는데 그럴 때면 입을 꼬매 버리고 싶다. 농담을 할 게 없어서 마누라 폐경을 가지고 농담을 해?

어쨌든 아들의 시간은 아직도 꼬물거리는 갓난 아기에 머물러 있다.

“동환아~ 바지 가져와”라고 시키면 와서 뽀뽀를 하고, “동환아~ 코 어딨어? 코?”라고 물으면 바닥에 드러눕는다. 아직 수용 언어가 돌쟁이만도 못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아홉 살의 이 아이가 2등급이라니. 가끔 보면 친구 집에서 키우는 푸들이 아들보다 더 똑똑하던데….

그리고 지적장애 2등급을 받은 또 다른 아이를 보면 어눌하지만 말도 꽤 하고, 심지어 한글까지 공부한다. 우리 아들이 한글을? 오오. 그 날이 오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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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기다리면 다시 장애인 등급 재심사를 하게 되고 1등급이 확실한 우리 아들은 그 때 가서 1등급을 받아도 된다. 하지만 나는 몇 년을 기다리지 않고 지금 다시 재심사를 요청했는데 그건 등급이 높을수록 활동보조 서비스 받을 수 있는 ‘시간’을 많이 받기 때문이었다.

장애인 활동보조 서비스는 주민센터나 구청 등에 가서 접수를 하면 국민연금관리공단 측에서 심사원(?)이 나와 여러 항목에 체크를 한다. 문항에 따라 점수를 매긴 뒤 점수가 높을수록 많은 시간을 할당받는다. 그 때 장애 등급이 높을수록 더 많은 점수를 받기 때문에 장애 등급 재심사 요청을 하게 된 것이었다.

‘시간’을 많이 할당 받는 건 중요한 일이었다.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적은 시간을 받게 되면 활동보조 서비스를 이용하면서도 이용하지 않을 때의 고충까지 고스란히 안게 되므로 혼란과 부담만 가중될 터였다.

무엇보다 내 새끼를 잘 봐달라는 ‘보험’ 차원에서도 시간은 많이 배정받아야 했다.

선배 장애인 엄마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활동보조 선생님(일반 아이들의 육아를 담당하는 분들은 ‘이모님’이라고 불리는 반면, 활동보조 교육을 이수하고 현장에 나선 이들은 ‘선생님’이라고 불린다)에게 시간은 보너스처럼 지급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우리 아들이 월 100시간을 할당받았다 치자. 일주일에 20시간씩 한 달에 80시간을 활동보조 서비스를 이용하면 20시간이 남는다. 남는 시간은 안 써도 그만이지만 직장에서 보너스를 주듯이 남는 시간을 활동보조 선생님에게 드리기도 한단다.

물론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이렇게 실제 이용한 것보다 시간을 더 주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지만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단다.

엄마들의 고민이 시작되는 부분도 여기란다. 일반 가정에서 아이가 어려 이모님의 도움을 받을 때 혹시라도 내 아이에게 피해가 갈까봐 이모님의 눈치를 살피는 것처럼, 장애아 부모들도 활동보조 선생님의 눈치를 보며 시간을 어찌할까 고민한다고.

처음부터 시간을 더 드리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당연하게 생각해 무리한 요구를 해오기도 하고, 활동보조인 사이에서도 소문이 돌아 정당한 제 시간을 받고 일했던 분들도 “누구네는 그렇다더라”라며 추가 시간을 결제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고.

그래서 처음부터 추가 시간을 지급하지 않도록 칼처럼 맺고 끊는 게 중요하다던데 사람 앞일은 어찌될 지 모르는 거니까…. 보험(?)을 들어놓는 셈치고 일단은 충분한 시간을 할당받는 것에 올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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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활동보조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마음먹고 일을 진행시키니 불안감이 엄습해 오는 것도 사실이다. 언제 도로로 뛰쳐나갈지 모르는 이 아이를 활동보조 선생님이 눈을 떼지 않고 항상 손을 잡고 다녀줄까?

혹시 길에서 땡깡이라도 부리는 어느 날에는 아들을 때리면 어떡하지? 말을 못하니 알 수도 없는데. 학교에서 점심을 안 먹고 곧바로 치료실에 가는 날에는 중간에 간식을 잘 먹여줄까? 추운 날에는 목에 수건을 잘 둘러줄까? 젖은 옷은 제 때 갈아입혀 줄까?

걱정을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그저 좋은 선생님이 배정되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아들이 다니는 음악치료실에는 내가 우리 아들을 살피는 것보다 더 꼼꼼히 장애 아이를 챙기는 활동보조 선생님이 한 분 있는데 그런 선생님이 우리 아들에게도 와주는 행운이 함께 하길 바랄 뿐이다.

아, 그리고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면 내 삶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다. 그 동안은 아들에게 묶여 엄두도 못 냈던 ‘경제활동에 나설 시간’이라는 게 내게도 주어지는 것이다. 이런 계획도 세워보고 저런 계획도 세워본다. 계획만 세웠는데도 벌써부터 통장 잔고가 빵빵해진 느낌이다.

우리 가족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될 활동보조인 서비스. 기대 반 우려 반의 마음으로 어느 봄날부터 시작될 그 날을 기다려본다.

/사진:류승연

동네 바보 형 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장애인 월드’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에피소드별로 전합니다. 모르면 오해지만, 알면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런 비장애인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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