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결혼 이야기
우리의 결혼 이야기
2017.01.05 10:54 by 지혜

가스 윌리엄즈 쓰고 그린, <토끼의 결혼식>마리예 톨만/로날트 톨만 그린, <나무집>

아이에게는 오랜 친구가 있다. 말은 잘 못하지만 걸음마에 자신감이 붙었을 때 만났으니, 여섯 살 인생 대부분을 함께 한 셈이다. 초록이와 준이, 이 둘은 걸음마에서 달리기, 떼쓰기에서 반항하기, 분리불안에서 어린이집 입소까지 서로의 지난 세월을 다 지켜봤다. 어디 그 뿐인가. 화가 나서 괴물처럼 변한 엄마 모습, 쉬를 못 참고 실수해서 무거워진 엉덩이, 코에서 방금 파낸 커다란 코딱지 같은 삶의 민낯까지 생생하게 공유하는 인생의 동반자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노는 데도 이들에게는 부족한 것인지, 집에 갈 시간이 되었다고 재촉하는 엄마를 뒤에 두고 준이가 묻는다. “초록아, 우리 그냥 결혼할까?” 말투와 표정이 제법 진지했다. 그렇게 이 둘은 헤어지지 않고 계속 같이 놀고 싶어서 결혼을 결심하게 된다.

밤톨 같이 동그란 눈을 하고서 “참 좋아서 같이 놀고 싶으니까” 결혼을 한다고 했다. 하얀 토끼와 까만 토끼처럼, 그리고 나처럼.

 

 

언제까지나 늘 너와 함께 지내고 싶어,

<토끼의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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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에 사는 하얀 토끼와 까만 토끼는 둘이 있을 때 행복하다. 매일 아침이 되면 햇살 속으로 뛰어나가 하루 종일 같이 논다. 까만 토끼는 둘이 있는 시간이 좋아서 영원히 함께 있고 싶은 소원까지 생겼다. 자주 슬픈 표정을 짓는 이유는 아마도 그 마음이 너무 간절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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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나의 모든 것이 되어 주면 좋겠어.” 망설임 끝에 전한 떨리는 그 목소리로 하얀 토끼의 마음은 부드럽게 일렁거린다. 둘은 손을 꼭 잡고 “언제까지나” 함께 하기로 한다.

내가 기다리던 결혼도 그랬다.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우리’, 더 이상 의심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그 사람의 사랑을 온전히 다 가질 수 있는 방법, 이별이 주는 관계의 허무함과 상처에서 벗어나 누리는 안정, 서로를 향한 진정한 사랑의 증거이자 결론이 결혼이었다.

빨리 결혼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어서. 결혼에 대한 기대와 의지가 가장 크게 부풀었던 스물여덟에, 나는 기어코 결혼을 했다. 까만 토끼처럼 애인에게 말했다. “나는 너랑 같이 살고 싶어. 그러니까 우리 결혼하자, 빨리.” 애인의 눈이 하얀 토끼처럼 동그랗게 커졌던 기억이 난다.

결혼을 했고, 7년이 지났다. 오직 사랑을 향해 있던 결혼의 의미는 구체적인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살았고, 살고, 살아내야 하는 것, 결혼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였다. 화장실을 쓰는 방식이나 밥을 먹는 습관을 조율해야 했고, 나의 엄마와 성격도 말투도 행동도 전혀 다른 처음 만난 ‘엄마’에게 적응해야 했으며, 매년 끝없이 오르는 전세금을 걱정해야 했다.

아이가 생긴 후에는 더 치열하게 결혼을 ‘살았다.’ 우리가 만든 작은 존재를 키워내려면, 자아실현은 물론이고 밥을 먹거나 잠을 자는 기본적인 욕구도 포기해야 할 때가 많았다. 나와 남편은 서로의 인내심을 끌어다가 썼다.

그동안 숱하게 들었던 말, ‘결혼은 현실’이 맞았다. 하지만 먹고사는 고달픔에 가려진 또 다른 ‘현실’의 의미를 말해보고 싶다.

기쁘거나 속상한 날, 그저 그런 날 언제든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늦은 저녁, 아이가 부르는 노래에 맞춰 다 같이 못난 춤을 추고 마음 놓고 웃어대는 일요일, 생일을 축하하며 따뜻한 미역국에 밥을 말아 먹는 아침을 살았다. 작년에 두 번의 전신마취 수술을 했을 때, 내 보호자는 남편이었다. 수술에 동의를 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 남편은 땀과 피로 찌든 몸을 기꺼이 챙겼고 나는 스스럼없이 의지했다. 어쩌면 ‘결혼은 현실’이라는 말은, 서로에게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을 함께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여섯 살 초록이와 준이처럼, 우리는 서로의 지난 세월을 다 지켜보고 삶의 민낯을 생생하게 공유한다. 이것은 한 사람의 성장을 끝까지 응원하고 나도 몰랐던 ‘나’를 알아보는 일이다.

 

 

변하지 않는 어떤 것,

<나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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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의 결혼식>이 결혼을 하는 이유에 대해 말했다면 <나무집>은 결혼 그 이후에 대해 말한다. 하얀 토끼와 까만 토끼처럼 다른 색 곰 두 마리가 나무집으로 온다. 흰 곰은 헤엄을 쳐서 오고, 갈색 곰은 배를 타고 온다. 이 둘은 생김새처럼 살던 곳도 살던 방식도 달랐을 것이다.

먼저 도착한 흰 곰이 갈색 곰을 기다린다. 점점 가까워지는 얼굴에 그 마음이 온전히 담겨있다. 준이와 초록이처럼 토끼 두 마리처럼 그리고 우리처럼 “언제까지나 늘 너와 함께 지내고 싶어”서 이 둘도 나무집을 찾아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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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을 보며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계절과 배경은 끊임없이 바뀌고, 온갖 동물 손님들이 나무집에 왔다가 간다. 나뭇가지 바로 아래까지 찰랑거리던 물은 마르고, 하늘은 분홍색이 되었다가 노란색이 되고 어스름한 푸른빛으로 변하기도 한다. 커다란 구름으로 뒤덮일 때도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은 단 하나, 곰 두 마리가 사는 나무집이다.

결혼을 살아내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다른 시간과 공간을 살던 사람과 한 집에서 살며 삶을 공유한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우리 집을 지나갈 것이다. 두 사람은 그 때마다 흔들렸다 멈추고 울다가 웃는다. 우리의 결혼, 그 중 하루도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Information

<토끼의 결혼식> 글·그림: 가스 윌리엄즈 | 역자: 강무환 | 출판사: 시공주니어 | 발행: 1997.01.06 | 가격: 8,000원(원제: (The) rabbbit's wedding)

<나무집> 글·그림: 마리예 톨만, 로날트 톨만 | 출판사: 여유당 | 발행: 2010.06.10 | 가격: 10,000원(원제: De Boomhut)

 

/사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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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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