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지리’라 행복해요
‘모지리’라 행복해요
‘모지리’라 행복해요
2017.01.17 15:28 by 류승연

사람들은 종종 이런 오해를 한다. 장애 아이를 키우는 삶은 엄청나게 힘들어서 인생이 불행할 거라고. 심지어 친구들조차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내가 안쓰럽기만 하다.

“승연아, 힘들지?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도 돼. 일부러 행복한 척하지 않아도 돼. 나한테는 힘들다고 다 말해도 돼”

그래. 힘들다. 정확히 말하면 몸이 힘들다. 남들은 출산 후 몇 년이면 졸업하는 갓난아기 뒷바라지를 십 년 가까이 하고 있으니 체력이 달린다.

갓난아기는 작기라도 하지, 130cm가 넘고 30kg에 육박하는 초등학생 어린이의 ‘수발’을 드는 게 만만한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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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친 몸과 별도로 정신은 힘들지 않다. 오히려 행복감을 느낄 때가 많다. 내 몸을 힘들게 하는 장애 아이 때문에 내 인생이 얼마나 행복한지 말을 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불쌍한 내가 사람들 앞에서 힘든 티 안 내려고 행복을, 씩씩함을 가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눈물을 글썽인다. 내 손을 잡는다. 위로를 한다. 언제든 찾아오라는 고마운 말도 잊지 않는다.

그쯤 되면 난 깨닫는다. ‘아~ 지금 난 불행한 인생 코스프레를 해야 하는 거구나’. 사람들은 보고 싶어 하는 모습만 보기 마련이다.

장애 아이를 키우는 행복이 있다. 장애 아이만이 줄 수 있는 기쁨도 있다. 내 아이가 장애아라서, 모지리라서, 웃을 수 있는 오늘이 있다. 활짝.

장애 아이들만이 가진 미덕이 있다. 바로 감정에 한없이 솔직하다는 것이다. 꼬물거리는 아기 시절에는 누구나 갖고 있던 이 미덕을 우리는 ‘사회화’라는 이름으로 점점 잃어간다. 유치원에 들어갈 나이만 되어도 아이들은 제법 영악해진다. 집에서 보는 모습만이 다가 아니다.

작년 말, 처음으로 장애인 체육대회에 참여를 했다. 본격 행사에 앞서 개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심심해하는 하객들을 위해 주최 측에서 댄스음악을 틀었다.

나이가 마흔을 넘어가니 요즘 음악은 하나도 모르겠다. 가수도 모르고 노래 제목도 모르지만 오고가며 어딘가에서 들어본 선율에 절로 고개가 까딱거려진다. 발도 흔들흔들 박자를 맞춘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나오자 이제는 따라 부르기도 한다. “우~ 섹시 베이베 워! 워! 오빤 강남스타일”

그때였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청소년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익숙하고 신나는 댄스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게 신호탄이었을까? 여기서 저기서 하나둘 아이들이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한다. 하객들의 전면과 양옆은 이미 춤추는 아이들로 점령을 당했다.

비장애인 부모와 형제자매들이 자리에 앉아 발을 까딱거리고 남들에게 안 들릴만한 성량으로 조용히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을 때 장애인 아이들은 신나는 음악에 몸을 맡겨 기쁜 마음을 표현하는 ‘솔직함’을 택했다.

이 아이들에겐 이것이 당연한 일이다. 음악이 나오니 신이 났고, 신이 나니 기분이 좋아져서 춤을 췄을 뿐이다. 잘 추는 것도 아니다. 세련된 칼군무는 기대할 수가 없다. 단지 음악이 가는 대로 몸을 맡긴다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그 모습은 정말이지 환상적이라고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었다.

나는 입이 떡 벌어져서 사십 평생 처음으로 마주한 낯선 광경에 감동하고 있었다. 이러한 성질의 감동을, 즐거움을 나는 우리 아들에게 매일 받으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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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들도 기분이 좋을 때 춤을 춘다. 그러고 보면 춤이라는 건 훗날 학습된 무엇이라기보다 날 때부터 내재된 인간의 본능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우리 아들은 기분이 좋을 때면 엉덩이를 뒤로 빼고 양 무릎을 엉거주춤 굽힌 뒤 양팔과 고개를 옆으로 덩실덩실하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건 뭐 춤이라기보단 타령에 맞춰 흐느적거리는 수준인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렇게 웃음이 난다. 장소도 가리지 않는다. 마트 한복판에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식당에서…. 안 그래도 기분이 좋은데 엄마 핸드폰에서 좋아하는 뽀로로 노래라도 흘러나오면 그대로 댄스머신 출격준비를 한다. 엉덩이를 뒤로 빼고 엉거주춤하게 서는 게 준비 자세다.

아들의 덩실덩실 춤은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준다. 평소엔 ‘장애인 바이러스’에 옮기라도 할 듯 거리를 두는 일반인들도 아들이 춤추고 있는 동안에는 자신도 모르게 엄마미소를 띄며 아이를 응시한다. 입꼬리가 씨익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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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출 때만이 아니다. 아들은 행복한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평소엔 아빠가 뽀뽀해달라고 빌어도 있는 힘껏 거부하지만, 아빠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을 때는 먼저 다가가 작은 손으로 커다란 아빠 얼굴을 잡는다. 뽀뽀를 한다.

‘아빠가 운전기사 노릇을 한 덕분에 재미난 곳에 놀러 왔으니 고마워요’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은데 아들의 뽀뽀를 먼저 받은 아빠는 감동한 나머지 아이를 부서져라 껴안고 침 범벅이 될 때까지 놔주지 않는다. 또 당했다 느낀 아들은 “이잉~”하며 한동안 아빠를 거부하지만 얼마 안 가 기분이 좋아지면 다시 또 찾아와 뽀뽀뽀. 그리고 또 “이잉~”. 다시 또 뽀뽀뽀. 무한 반복이다.

요즘 TV를 보면 ‘모지리’라는 표현이 자주 쓰인다. 배우 서인국이 드라마 ‘쇼핑왕 루이’에서 모지리 역할을 했고, 최근엔 나영석 PD가 ‘신서유기3’를 통해 가수 송민호에게 모지리라는 캐릭터를 안겨줬다.

사전을 찾아보니 모지리는 ‘머저리’의 전라도 방언이라고 한다. 말이나 행동이 다부지지 못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기도 하고, 지능이 정상 범주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 명사형으로 쓰이기도 한단다.

하지만 난 모지리라는 말이 나쁘지 않다. 정박아, 지진아, 애자(장애인을 비하하는 말)로 불리는 것보단 모지리로 불리는 게 낫다. 왠지 더 정감이 간 달까. ‘모지리’라는 단어에는 ‘정박아’라는 말에서는 찾을 수 없는 애정 같은 게 살짝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 아들이 장애아라서, 모지리라서 우리 가정에는 늘 웃음꽃이 활짝 핀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집에 손님들이 왔다. 사람들이 많으니 활기가 차고 아들은 기분이 좋다. 그러다 손님 중 누군가가 일어난다. 화장실에 가려는 것일 수도 있고 물을 마시려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들은 손님이 가려는 것으로 이해를 한다. 갑자기 급한 표정을 지으며 손님들이 입고 온 외투를 양손 가득 안는다. 질질 끌고 가서는 부엌에다 휙 하고 던져놓는다. 그러면 외투가 안 보여서 손님들이 안 갈 것이라 생각하는 거다.

저녁 시간에 코코몽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아들. 아빠가 퇴근했다. 아빠가 집에 오면 그때부터 TV는 아빠 차지다. 아들은 또 다시 마음이 급하다. 감정을 숨길 줄 모르는 이 아이는 모든 것이 표정으로 다 드러난다.

두리번거리며 리모컨을 찾는다. 탁자 위에 있는 걸 발견한다. 리모컨을 집어 든다. 누르는 버튼이 밑으로 향하게 해서 다시 탁자에 내려놓는다. 안심한 표정으로 제 할 일을 한다. 아들은 리모컨 누르는 버튼이 밑을 향해 안 보이게 있으면 아빠가 채널을 바꾸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이고~ 이 모자란 놈! 그게 숨기는 거야? 아이고 이 모자란 놈아~ 이뻐 죽겠네. 쪽쪽쪽”. 뽀뽀를 안 하고 배길 수가 없는 일상이 매일같이 이어진다.

이렇듯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지점에서 장애아인 아들은 모자란 행동으로, 솔직한 감정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빵~하고 터지는 웃음을 선사한다. 행복을 선물한다.

“아이고~ 이렇게 예쁜 놈이 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내 입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이 말이 튀어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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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내 아들이 장애아라서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니다. 당연한 일이다. 행복이 두 배라면 슬픔은 열 배쯤 되는 것 같다. 특히 아들의 문제행동이 두드러지는 시기가 주기적으로 찾아오는데 그럴 때면 딱 이 세상을 하직하고 싶은 마음만 들기도 한다.

하지만 장애아인 자식의 인생이 슬프고, 그 아이로 인해 나머지 가족들의 인생도 슬프다 해서 불행하기만 한 건 아니다. 힘든 것과 불행한 건 엄연히 다르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거다.

모지리면 어때? 모지리라서, 모지리만이 줄 수 있는 행복이 있는데…. 내 아들이 모지리라서 나는 오늘도 행복하다. 진심으로.

/사진:류승연

동네 바보 형 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장애인 월드’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에피소드별로 전합니다. 모르면 오해지만, 알면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런 비장애인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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