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의 말 안 듣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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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의 말 안 듣는 사람들
2층의 말 안 듣는 사람들
2017.01.26 14:55 by 김석준

일편단심보다는 ‘조변석개’(아침, 저녁으로 뜯어 고침)와 가까운 에디터가 삼십 년 동안 꾸준히 하는 것 하나. 바로 ‘말 안 듣기’다. ‘TV 보며 밥 먹지 마라, 소화 안 된다’, ‘지갑은 뒷주머니에 넣지 마라, 누가 훔쳐간다’, ‘저축하며 살아라, 미래를 위해서’ 등 부모님의 조언을 오랫동안 흘려듣는 중이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마땅히 해야 할 것들이 있고, 하지 않으면 잔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에디터가 듣는 단골 잔소리 중에는 ‘안 쓸 거면 좀 버려라’는 말도 있다. 언젠가는 쓸 것 같다는 이유로 물건을 쌓아두고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에디터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언더스탠드에비뉴(서울 성수동)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철 지난 포스터로 가방을 만들고, 버려진 자전거로 팔찌를 만들고, 병뚜껑으로 화분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버릴 것을 안 버리는 ‘말 안 듣는 사람들’이다.

쓸데없거나 특별하거나

서울숲 옆에 있는 언더스탠드에비뉴의 편집숍 ‘소셜스탠드’는 멀리서도 한눈에 보이는 초록색 건물이다. 서울숲과 어울리는 초록색 컨테이너로 들어가면 눈을 사로잡는 디자인 소품과 코를 유혹하는 향기가 밀려온다.

언더스탠드에비뉴 소셜스탠드는 1층과 2층으로 되어있다.
소셜스탠드 2층 테라스에서는 언더스탠드에비뉴의 전경을 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말 안 듣는 사람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찾기가 힘들었다. 1층에 개성 있는 브랜드 사이를 유유히 지나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힘겹게 1층을 통과해 위층으로 이동하는 계단 앞에 섰다. 계단을 올라가니 처음 보이는 것은 벽에 붙은 자전거 핸들이었다.

계단을 올라가자마자 보이는 것들은 자전거 안장과 핸들 그리고 체인이다.
바이시클트로피는 폐자전거 업사이클링 브랜드다.

‘바이시클트로피’는 폐차전거 업사이클링 브랜드다. 벽에 거는 핸들은 사냥한 동물의 사체를 박제하는 헌팅트로피(Hunting Trophy)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강동현 바이시클트로피 대표가 직접 길거리에서 오래 방치된 자전거들을 직접 수거해 제품을 만들었다. 벽에 거는 핸들 외에 자전거 체인을 이용한 팔찌도 인기가 많다고. 체인 팔찌는 단순히 자전거의 부품을 이용했다는 것 외에도 팔찌마다 다른 자전거 브랜드명이 새겨져 있다는 점에서 특별함을 더한다.

바이시클트로피의 제품을 보고 난 후, 뒤를 돌아보니 알록달록한 잡화들과 우산이 걸려있었다. 폐우산 업사이클링 브랜드 ‘큐클리프’다.

큐클리프는 지갑과 파우치 등 작은 잡화 위주로 판매하고 있다.

어디선가 우산을 잃어버리고 다시 새 우산을 사는 건 에디터만의 일상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버려진 ‘찢어진 우산’이 전혀 새로운 지갑이나 파우치로 태어난다. 파란색, 보라색, 빨간색 형형색색의 지갑과 파우치는 버려진 우산의 원단으로 만든 것이다. 우산의 패턴은 같을 수 있으나 색의 빠짐 정도와 구김이 달라서 “완벽히 같은 제품은 없다”고 한다. 이쯤 되니 손재주가 좋은 사촌형 다락방에 놀러와 신기한 물건들을 구경하는 기분이다.

업사이클링 브랜드 ‘온기’는 연소가 다 된 연탄을 모아서 새로운 제품으로 만든다. 다 허문 연탄에 세라믹 소재를 섞어서 반죽하면 기존의 연탄의 강도보다 훨씬 강해진다. 그 후 3D프린터를 이용해 연필꽂이나 시계 등 인테리어 제품으로 탈바꿈시킨다.

연소된 연탄을 업사이클링한 연필꽂이

이런 상세한 이야기는 제품 소개 글에도 적혀있지 않다. 모두 2층의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동안 습득한 스토리다. 마치 전시회의 ‘도슨트’처럼 브랜드 스토리를 들려주는 사람이 있었던 덕분. 업사이클링 브랜드 편집숍 ‘업사이클리스트’의 김경준(30)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업사이클링 브랜드를 널리 알리고 싶어서 마침내 편집숍을 만들게 된 그는 업사이클링 브랜드의 매력은 ‘하나뿐인 특별함’이라고 말한다.

“자기표현이 중요한 시대잖아요. 다들 남들과 다른 것을 원하는데, 업사이클링 제품은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함을 표현하는 매력이 있어요. 친환경적이고 사회적 가치를 실현한다는 장점 외에도요.”

‘업사이클링’(up-cycling‧재활용품에 디자인 또는 활용도를 더해 가치를 높인 제품). 여전히 한국에서 대중적인 개념은 아니다. 하지만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은 일찍이 해외에서 제품을 구입해 사오기도 했다. 그중 하나가 ‘쓰레기 감성’이라 불리는 스위스의 업사이클링 브랜드 ‘프라이탁’이다. 프라이탁은 트럭 방수천을 이용해 가방을 만드는데, 세척을 해도 오염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에 ‘쓰레기 감성’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하지만 프라이탁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바로 그러한 ‘특별함’때문에 좋아한다.

프라이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2층에 입점한 ‘누깍’을 보고 눈을 뗄 수 없을 지도 모른다. 프라이탁과 비슷해 보이지만 더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프라이탁이 트럭 방수천을 이용해서 만들었다면, 누깍은 광고 배너를 재활용해 만들었다. ‘광고 배너’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아무런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지극히 정상이다. 왜냐하면 한국에는 광고 배너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비슷한 것으로는 현수막이 있기는 하지만, 한국의 현수막 90% 이상은 면을 이용해 물에 쉽게 젖고 재활용하기가 어려운 소재인 반면, 스페인의 광고 배너는 PVC라는 플라스틱 소재를 쓰기 때문에 방수가 되고 외부 손상에도 강하다.

스페인에서 실제로 쓰는 배너. 필요한 부분만 잘라내어 제품으로 만든다. 광고 배너의 종류로는 음악회, 미술전시회, 콘서트, 영화제, 스포츠이벤트, 맥주 광고 등이 있다. 오른쪽은 메신저백이다.
광고 배너를 이용해 제품을 만들던 누깍은 2017년에 자동차 튜브를 활용한 새로운 제품군을 선보였다.

시(市)의 허가를 받아 길거리에 거는 스페인의 광고 배너는 보통 6개월씩 걸고, 비를 맞아도 색이 빠지면 안 되기 때문에 튼튼하게 만든다는 특징이 있다. 특히 스페인의 광고 배너는 보다 화려한 색감과 수려한 디자인을 뽐내려는 경향이 많아, 패션 소품으로 만들어내기에 적합하다.

사진 출처: 누깍 페이스북 페이지(https://www.facebook.com/vahoworks)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 PVC는 겹 수에 따라 강도가 달라지는데 프라이탁의 PVC는 세 겹을 쓰고 광고 배너는 두 겹을 쓴다. 그렇다고 해서 쉽게 찢어지지는 않는다.

“산업폐기물만 업사이클링의 재료가 되는 건 아니에요. 업사이클링 브랜드 ‘바다보석’은 조개나 불가사리와 같은 천연재료를 이용하기도 해요. 바닷가에 버려진 조개나 깨진 유리병을 가공해서 만드는 액세서리로 만들죠. 플리마켓을 제외하고는 제주도에서만 판매를 하시는데, 유일하게 서울에서는 여기(소셜스탠드)에서만 판매하고 있죠.”

도슨트 같은 김경준 대표의 설명을 들을 때마다 잠시 혼동된다. 쇼핑에 나온 것인지, 전시회에 온 것인지 말이다.

시들지 않는 위안

“2층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요. 아직은 1층 유동인구가 더 많긴 하지만, 일단 2층에 올라오면 손님들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죠. ‘이건 뭐로 만든 거예요?’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브랜드의 재밌는 이야기가 시작되니까요.”(김경준 대표)

전시회 같은 기분이 드는 이유는 또 있다. 가드닝 브랜드 ‘O,43’(이하 오사삼)의 존재는 2층을 꽃향기 나는 공간으로 바꿔 놓았다.

1층에서 올라오는 것을 기준으로 왼쪽에는 업사이클리스트가, 오른쪽에는 오사삼이 위치해있는데 왼쪽에는 화려함이, 오른쪽에는 은은함이 두드러진다. 업사이클리스트를 모두 둘러본 에디터는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발길을 돌려봤다.

흔히 꽃이라고 했을 때 ‘영원’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축하 인사와 함께 손을 떠나는 꽃다발은 며칠 사이에 썩거나 버려진다. 하지만 오사삼의 꽃은 시들지 않는다. 오사삼이 특별한 이유다.

“생화에 식물성 오일을 첨가해 3년에서 5년 동안 살아있게 만들었어요. ‘프리저브드 플라워’라 부르죠. 많은 게 버려지는 시대인데, 지속가능한 것들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최승미 대표)

드라이플라워가 쉽게 부서지는 것에 반에, 프리저브드 플라워는 촉촉한 상태로 3년에서 5년 동안 유지가 된다

화려한 색을 자랑하는 프리저브드 플라워 옆에는 아담한 다육식물이 벽에 빼곡히 붙어있었다.

“병뚜껑을 업사이클링해서 화분으로 만들었어요. 병뚜껑 옆에 자석을 넣어서 붙일 수 있게 했죠. 이래 뵈도 1년은 가는 녀석들이죠. 화분이 작으니까 물을 줄 때는 티스푼으로 주면 돼요.(웃음)”

최승미 대표는 살아있지만 말은 못하는 식물에게 위안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화분에 적힌 문구는 식물들이 주는 위로의 말을 문구로 상상하여 표현한 것이다.

자석을 이용해 공간에 대한 제약이 없는 편이라 공간 활용에 민감한 자취생들이 키우기에 적합해 보인다. 흙이 아닌 이끼에 심어서 거꾸로 해도 쏟아지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매장에 있는 다육이의 종류만 해도 100가지 이상. 하지만 식물이 매력적인 진짜 이유는 종류가 많아서도, 키우기 쉬워서도 아닐 터.

“사업을 시작하고 힘든 순간이 많았어요. 그때마다 식물을 통해 위로를 많이 받았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식물을 심으려고 화분 앞에 앉았는데 그 순간 행복해지고 너무 예쁘게 보이더라고요.(웃음)”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꽃은 순간만 화려하다고. 그 순간이 지나면 쓸모가 없다고. 또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쓸모없어진 물건은 버리는 게 당연하다고.

하지만 모두가 당연하다고 하는 말을 흘려듣는 ‘말 안 듣는’ 사람들도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남들과 다르게, 조금 더 의미 있고, 흥미롭게 살기 위해서는 말이다. 소셜스탠드 2층의 사람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