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질먹으래 가게!(명절 쇠러 가자!)
맹질먹으래 가게!(명절 쇠러 가자!)
2017.02.07 14:35 by 이도원

일 년에 두 번,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날과 추석. 사실 내 친정은 명절 때 명절 분위기를 느끼기 힘들었다. 부모님이 서비스업에 종사하시는 터라, 명절 대목 땐 더 바쁜 일상을 보내야 하셨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동생과 나는 어릴 적부터 가족들이 북적거리는 명절을 지내기보다는, 당일에 잠깐 가서 차례를 지내고 그 이후에는 집에서 둘이 시간을 보내는 게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굉장히 외로웠겠다 싶겠지만 그리 쓸쓸한 명절은 아니었다. 어쩌면 적응을 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게 명절이란 그리 큰 의미도 큰 즐거움도 딱히 없는 날이었다.

(사진:Jens-Olaf Walter/flickr.com)

결혼 전,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남편과 함께 제주도에서 지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추석을 접했다. 결혼하기 전이었지만 함께 명절을 지내며, 처음으로 명절다운 명절을 보내게 되었다. 명절 음식준비와 처음 접하는 제주도만의 명절 음식들. 내겐 새로운 세상이었다.  

남편은 바다와 가까운 모슬포에 살고 있다. 이곳에서는 집안에 따라 명절에 떡 대신 빵을 올리기도 한다. 우리는 떡을 맞춰 올린다. 그리고 바다와 가까워서인지 육고기보단 바닷고기를 더 많이 올린다. 이 외에도 제주의 명절 음식은 정말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처음 제주에 와서 명절 준비를 할 때, 어머님께서 계속해서 ‘적갈’을 미리 재워둬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때 나는 ‘아~ 바닷가 쪽이라서 명절 땐 젓갈을 직접 담그는 구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적갈’은 젓갈이 아니라 고기꼬지를 말하는 거였다. 돼지고기와 소고기만을 꽂아 만드는 고기 꼬지. 고기와 채소들을 번갈아가며 꽂아 달걀옷을 입혀 만드는 육지 스타일과는 달리, 제주에는 고기만 꽂아 만드는 게 특징이다.

적갈을 만드는 모습

말린 바닷고기도 굉장히 중요하다. 흔히 ‘지숙’이라 불리는 데 방어, 옥돔, 구리찌, 상어, 우럭 등 생선의 종류는 다양하다. 생선을 날 좋은 날 미리 말려두고, 냉동보관 해두었다가 전날에 꺼내어 증기에 찌는 것이다.

어머님과 할머님께서 입버릇처럼 ‘지숙이가 가장 어렵다’고 하셨을 땐, ‘지숙이가 누구길래 그러시지’라며 궁금해했었는데, 이번 설 명절 때가 돼서야 정확한 의미를 알게 되었다.

이것이 ‘지숙’이의 모습

이 외에도 명절 때 대접하는 갱(겡)이 있다. 갱은 국을 말한다. 갱거리는 국에 들어가는 생선을 말하는데, 생선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 우리는 주로 옥돔을 갱거리로 쓴다. 이 외에 무나 미역을 넣어 함께 끓인다. 생선이 목에 걸리지 않도록 부드럽게 넘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란다. 갱은 아침 일찍부터 오래도록 끓여 깊은 맛을 나도록 정성을 들인다.

내게는 이런 것들이 굉장히 재밌고 신기했다. 사실 음식 준비가 손에 익지 않아 아직 큰 도움은 못되지만,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가족들과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즐겁다. 서로 궁금했던 것도 묻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말하다 보면 힘들고 길 법한 시간도 순식간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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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한 번의 명절을 보내면, 어려운 제주어 실력이 단시간에 쑥쑥 늘어난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걸스토킹’인가. 부엌에서 일하다 보면 여자들만 갖고 있는 고민이나 궁금증들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게 된다고 하던데. 어느덧 그 속에 내가 자리하고 있다.

명절, 힘들고 어렵다. 그리고 재미있고 신기하다. 이전과는 다르게, 북적거리는 명절을 보내는 것이 이제 나의 명절날 모습이 되어간다. 어쩌면 난 이미 진짜 제주 아주망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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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도원, 비바리(페이스북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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