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버려야만 좋은 엄마인가요?
‘나’를 버려야만 좋은 엄마인가요?
‘나’를 버려야만 좋은 엄마인가요?
2017.02.21 13:52 by 류승연

엄마인 내가 ‘나’의 행복을 찾으려 해도 괜찮을 걸까? 엄마만이 아닌 ‘나’로서의 삶을 살고 싶어 해도 괜찮을 걸까? 보통의 엄마들에겐 “당연하지”라고 반응했을 이러한 질문이 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겐 죄가 된다. 아이를 손에서 놓아버린 ‘나쁜 엄마’가 된다.

그래서 ‘나’를 누르고 누르고 또 눌러가며 ‘엄마’로서의 삶만 살도록 강요받고 강요한다.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점점점 나는 없어져 간다.

나는 두 개의 삶을 살고 있다.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딸을 키우는 보통 엄마로서의 삶과 9살이 되었지만 마음속은 두 세 살인 아들을 키우는 장애아이 엄마로서의 삶이다. 두 개의 삶은 화성과 금성의 차이만큼이나 다르다.

07

전쟁 같던 1학년 생활이 지나고 딸이 2학년에 올라갈 무렵이 되자 여기저기서 스스로의 인생을 찾아나가려는 엄마들이 보인다. 아이도 학교생활에 익숙해진 데다 시간적 여유가 많아진 엄마들이 슬슬 전업주부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한 여자의 삶에서 이러한 시기가 왔을 때 주변 사람들은 진심 어린 격려를 한다. 남편들도 좋아라 한다. “드디어 우리 마누라도 돈이란 걸 벌어오려나 보다. 아싸!”라며. 적어도 내 주변에선 그렇다.

하지만 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는 일반적인 이 변화가, 흐름이 통용되지 않는다. ‘엄마’인 내가 ‘나’로서도 살고 싶다는 마음을 품는 순간 아이를 놓아버린 ‘나쁜 엄마’로 매도된다. 질책의 시선을 받는다.

일반 엄마들의 세계에서는 아이에게만 모든 걸 ‘올인’하는 엄마를 그리 바람직하게 보지 않는 반면 장애아 엄마들 세계에서는 아이를 위해 사는 엄마만이 ‘좋은 엄마’로 타의 모범이 된다.

오랜만에 만난 장애아 엄마들의 모임. 한 엄마에 대한 칭찬이 이어진다. 얼마나 열심히 아이를 위해 많은 일을 하는지 주변에서의 증언이 쏟아진다. 내가 들어봐도 대단한 것 같다. 그 시간, 그 정성, 그 노력, 그 체력.

“어떻게 그 모든 게 가능해?”라고 묻자 “‘나’를 버려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옆의 엄마도 거든다. “엄마가 아이를 놓는 순간 아이는 끝이야”

이 때 아이를 놓는다는 건 진짜로 포기한다는 말이 아니다. 엄마가 아이만을 위한 삶이 아닌 스스로를 위한 삶도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을 먹는 것을 의미한다.

엄마의 ‘마음’에 따라 아이는 티가 난다고. 또 그렇게 티가 나는 아이는 학교나 치료실에서 교사들도 잘 봐주지 않는다고. 실제로는 아이를 포기한 게 아님에도 아이를 놔버렸다 생각되는 엄마들에 대한 질책 섞인 말도 이어진다.

벌써 3년 째. “나의 행복을 찾아도 되는 걸까?”의 문제로 고민하던 나는 얼른 입을 다문다. 처음이 아니다. 이런 식의 대화는. 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지금보다 더 좋은 엄마가 되어야만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받는다.

005

자폐 아이를 키우는 한 엄마는 어린이집을 다닐 때부터 청소년이 된 지금까지 아이의 모든 일상을 기록한 두꺼운 노트를 수 권이나 갖고 있다. 노트 안에는 매일 아이가 보인 행동과 말이 빼곡히 기록돼 있고 심지어 그 날 그 날의 사진까지 인쇄돼 붙어 있다.

“승연이 너도 이렇게 해야 해. 아이의 일상을 기록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내가 이렇게 해야 교사들도 우리 아이를 대하는 게 달라져.”

구구절절 맞는 말인데 솔직히 나는 못하겠다. 안 그래도 보통의 엄마들보다 두 세배 많은 노동에 시달리는 삶. 일상조차도 벅찬 나에겐 그것조차도 힘든 일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아이 치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좋은 엄마’들은 좋다는 치료실이 있다면 왕복 두 시간 거리도 마다 않고 아이를 데리고 다닌다. 가까운 데 다니지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엄마가 힘든 만큼 아이가 좋아지니까”라고 대답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어느 순간부턴 장애아 엄마들에게 거리를 두게 되었다. 특별한 일이 있을 때는 만나지만 굳이 평소에 수다 대상으로 찾지는 않게 되었다. 그들 눈에 난 ‘나쁜 엄마’이기 때문이다.

장애아의 엄마들이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른다. 서점에 있는 장애 관련 책을 마스터하는 것을 넘어 본인 스스로가 놀이치료, 미술치료 등의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따서 아이를 교육시키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04

그런데 난 장애 관련 서적을 읽는 대신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며 살았다. 24시간 아들의 수발을 드는 삶이 벅찰 때마다 나 자신을 위한 책을 읽으며 작은 보상을 했다. 한가하게 자리 잡고 앉아 책 읽을 시간은 없어서 계란이 삶아지는 동안, 멸치 육수가 우러나는 동안, 큰일을 보러 화장실에 들어가는 동안 책을 읽었다.

이런 내 모습은 정상아라 불리는 우리 딸에겐 좋은 모범이 되었다. 딸 역시 “엄마~ 난 책이 너무 좋아~”라며 아침부터 밤까지 책을 읽는 아이가 되었다. 얼마 전 받은 성적표에도 “책을 많이 읽어 어휘력이 풍부하고 문장 구성력이 우수하며 글로 자신의 생각을 잘 나타냄”이라고 종합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딸의 엄마가 아닌 아들의 엄마로 살기 위해선 장애 관련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책을 읽어야 했는데 난 그러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특수교사 뺨 칠 정도로 각종 치료에 전문성을 가진 ‘좋은 엄마’들 사이에서 난 아이에게 무심한 ‘나쁜 엄마’가 되곤 했다.

사실 억울한 일이기도 하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이 세상 누구보다도 많고, 비록 전문가적 치료 지식은 없지만 아이와 눈 맞추고 놀아주는 건 누구보다도 잘 하는데….

무엇보다 “내 행복을 찾아가며 살아도 될까?”라는 마음을 먹는 것만으로도 난 이미 ‘나쁜 엄마’ 반열에 올라서버렸다.

02

내 행복을 찾는 길이란 아이를 포기해 버린다는 게 아니다. 이전까지의 삶이 아이의 삶에만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제부턴 장애인 활동보조인에게 치료실에 왔다 갔다 하는 짐을 나눠주고 그 시간 동안 내 스스로가 행복해지는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이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한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것이다. 아이와의 시간과 내 시간을 구분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거창한 일이 아니라도 좋다. 날씨 좋은 어느 날 시간에 쫓기지 않은 채 혼자서 시내를 걷고 분위기 있는 곳에 들어가 차를 마시는 그런 삶. 아이들을 위한 뽀로로 전시회가 아닌 나를 위한 위대한 화가들의 전시회를 찾아다니는 그런 삶. 그러면서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해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생기는 그런 삶.

그리고 여건이 허락된다면 한 달에 두 번쯤은 밤 시간에 ‘프로젝트 모임’에 나가 보다 창조적인 일을 하는 그런 삶. 치료실 순방을 활동보조인에게 맡기고 내가 찾고자 하는 ‘내 행복을 찾아가는 삶’이란 그런 삶이다.

작년에 아들의 특수반 교사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엄마인 내가 내 행복을 찾아가도 되나요?”. 돌아온 건 “어머니~ 아직 이르세요.”라는 답변이었다. 함께 있던 엄마들도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아이가 13개월일 때부터 안고 다니며 치료실에 다녔다. 오가는 택시 안에서 젖을 먹였고, 십 분씩의 쪽잠을 다 합해 하루 한 두 시간 자는 날도 숱하게 이어졌다. 만으로 7년 동안 장애아이의 엄마로서만 살았다. 남들 몇 배의 노력과 희생과 눈물이 뒤따랐고 이제 나는 ‘나’로서의 삶도 찾고 싶다.

06

‘나’를 버려야만 하는 게 장애아 엄마라지만 왜 꼭 그래야만 하는지 잘 모르겠다. 엄마인 내가 행복해야 장애아인 내 아이도 행복해지는 게 아닐까? 내가 너무 이기적인 마음을 품고 있는 걸까?

물론 주변의 반응이 호의적이지 않다 해서 내 행복을 찾고자 하는 여정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죄책감마저 떨칠 순 없겠지, 환영받지 못하는 나의 여정은. 장애아 엄마, 아니 ‘좋은 장애아 엄마’로 살기 참 어렵다.

/사진:류승연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The First 추천 콘텐츠 더보기
  •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이제 헤어 케어도 브랜딩이다!

  •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1년 사이 가장 주목할만한 초기 스타트업을 꼽는 '혁신의숲 어워즈'가 17일 대장정을 시작했다. 어워즈의 1차 후보 스타트업 30개 사를 전격 공개한 것. ‘혁신의숲 어워즈’...

  •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초개인화의 기치를 내건 스타트업들이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관광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틈새에 대한 혁신적인 시도 돋보였다!

  •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기업의 공간, 자산 관리를 디지털 전환시킬 창업팀!

  •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의 등장!

  •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유망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 맞춤형으로 지원한다!

  • 초록은 동색…“함께 할 때 혁신은 더욱 빨라진다.”
    초록은 동색…“함께 할 때 혁신은 더욱 빨라진다.”

    서로 경쟁하지 않을 때 더욱 경쟁력이 높아지는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