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개학, 일단 GO!
또 다시 개학, 일단 GO!
또 다시 개학, 일단 GO!
2017.02.28 14:20 by 류승연

아이들 개학이 다가오면서 손이 바빠진다. 딸을 위해선 실내화 하나만 새로 장만하지만, 아들을 위해선 편지봉투와 사탕 봉투를 30장씩 준비한다. 개학식 날 같은 반이 된 아이들에게 편지를 돌리기 위해서다.

작년에 초등학교 생활을 1년 해보며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올해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일반 아이들의 사회 속으로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어떻게 이해시켜야 하는지 나름의 교훈을 얻은 것이다.

지난 1년은 심적으로 많이 힘들던 한 해였다. 걱정과 우려를 안고 시작한 학교생활. 매일 아침 교실 앞까지 아들을 데려다놓았고, 하교시간 5분 전부터 복도에서 대기하다 종소리가 울리면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어떤 날은 담임선생님에게, 어떤 날은 특수반 선생님에게 그 날 그 날 아들이 한 일을 전해 들었다. 입학하고 며칠 동안은 착석 여부가 주요 화제였다. 나는 선생님들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만을 되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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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석이 가능해져서 한결 마음을 놓게 되자 이번에는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할퀴기였다. “동환이가 오늘 누구 팔을 할퀴었어요”. 학기 초, 누군가를 할퀴었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다. 매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학교를 갔고 2~3일에 한 번씩 자라지도 않은 손톱을 바짝 깎았다.

친구를 할퀴는 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였다. 차라리 스스로 자해를 하는 게 나았다. 나는 할퀴었다는 얘기를 듣는 날이면 해당 아이의 엄마에게 연락을 해 고개를 숙여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학교에서도 할퀴는 것에 대한 엄격한 훈육이 이루어졌다. 몇 번 친구를 할퀴고 나자 담임선생님도 특수반 선생님도 언제 어떤 상황에서 아들이 손톱을 세우려 하는지 감이 잡혔다. 일이 발생하기 전 “안 돼!”라고 단호하게 말해서 제어를 하거나, 일이 발생하고 나면 복도 옆 교사휴게실로 혼자 유배를 가 혼나곤 했다.

교사들의 노력이 뒤따르고 아들도 학교생활에 적응을 하기 시작하면서 할퀴는 행동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는 게 몇 달 동안 할퀴는 행동이 안 보여 “아, 이제야말로 완전히 사라졌나보다”하며 기뻐하고 있으면 아들은 엄마한테 방심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기라도 하는 듯 이번엔 선생님 콧잔등을 할퀴었다.

보통 사람들이 ‘문제행동’이라고 알고 있는 할퀴는 행동은 사실 ‘부적응행동’이다. 말을 하지도 못하고 잘 알아듣지도 못하니 상황이 이해가 안 되고, 요구사항이 있는데 주변 사람들과 소통이 안 되니 몸짓을 이용해 자신의 부정적인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부적응행동’이기 때문에 학기 초가 지나 반복되는 학교생활에 완벽히 적응을 하고 나면 문제를 일으키는 ‘부적응행동’은 사라졌다. 비록 가끔 튀어나오기는 하지만.

아들에게 필요한 건 시간이다. 편하게 지내는 집에서의 시간이 끝나고 새롭게 시작된 학교생활에 적응하기까지의 시간. 그래서 개학을 하는 3월과 9월이면 아들의 ‘부적응행동’이 최고조에 이르고 4월과 10월 이후부턴 이러한 문제가 현저하게 줄어든다.

그러다 7월과 12월 즈음엔 이보다 더 착한 어린이가 없을 만큼 상황이 좋아지는데 딱 그 때가 되면 방학을 한다. 개학을 하면 다시 또 처음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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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흐름은 유치원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병설유치원을 다녔기 때문에 초등학생들과 방학기간이 같았다. 하지만 유치원 시절과 다르게 초등학교 1년이 유난히 힘들었던 이유는 아들의 ‘부적응행동’을 바라보는 주변의 차가운 시선 때문이었다.

학기 초 두드러졌던 아들의 할퀴는 행동은 엄마들 입을 타고 소문이 점점 부풀어졌다. 소문이 돌고 돌아 내 귀에 들어왔을 때 이미 우리 아들은 무찔러야 할 괴물쯤으로 둔갑해 있었다.

게다가 그 때는 아들이 학교생활에 완전히 적응을 해서 잘 지내고 있던 시기였는데도 부풀어진 소문에 불안감을 느낀 일부 엄마들은 아들의 퇴학을 위한 교육부 진정을 넣을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그 때 나는 땅을 치고 후회를 했다. 아들을 괴물로 둔갑시킨 데는 나도 한 몫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겪는 초등학교 생활. 게다가 학기 초 친구들을 할퀴는 행동. 나는 죄인이 되어서 반 엄마들을 만날 때마다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만을 연발했다. 보통 반 엄마들끼리 만나면 “안녕하세요”라는 인사가 먼저 오가는데 장애아 엄마로 살아가는 난 “같은 반 엄마세요?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먼저 튀어 나왔다.

언제나 고개 숙인 죄인. 저자세의 장애아 엄마. 심지어 장애인에 대한 편견으로 똘똘 뭉친 한 엄마조차 “너무 그렇게 저자세로 하지 않으셔도 돼요”라고 충고할 정도였으니.

그런 내 행동이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아들이 위험인물로 낙인찍히는 데 일조를 해버렸다. 엄마가 만나는 사람들마다 사과부터 하고 다니니 정말 아이가 위험한 괴물이라도 된 것처럼 모두에게 의심 없이 받아들여져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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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첫 번째 시행착오였다. 고개 숙인 죄인으로 지낸 것. 매일 교실로 등하교 시키다보니 아이들의 면면을 다 보게 된다. 나 홀로 소풍도 따라가서 아이들과 하루를 지내보며 더욱 잘 알게 됐다. 평상 시 우리 아들은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말썽꾸러기 사내아이들도 많다는 걸.

하지만 그 아이들의 엄마들은 나처럼 고개 숙인 죄인으로 살지 않는다. 나만 그랬다. 내 스스로가 내 아들이 장애인이라는 것에 너무 매몰돼 필요 이상으로 의식하고 고개를 숙이며 살았다. 그러다보니 내 아들이 한 일만 필요 이상으로 확대 해석되었다. 그런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내가 일조를 해 버린 것이었다.

두 번째 시행착오는 장애를 가진 우리 아들의 특성에 대해 반 친구들이나 엄마들에게 미리 이해를 시키지 않은 것이다.

3월 학부모총회 때 딸의 학교에 참석을 했던 난 4월이 되어서야 아들 반 엄마들에게 인사를 하고 아들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미 엄마들의 마음속에 편견이 제 멋대로 자리 잡게끔 내 스스로가 한 달 넘는 시간을 줘버린 셈이었다.

그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한 1년이었다. 물론 1년이 지나고 아들도 학교생활에 적응을 해 ‘부적응행동’이 많이 사라지고 나니 상황도 바뀌기 시작했다. 소문처럼 부풀어진 괴물이 아니라 아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엄마들도 일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종업식 다음 날 한 엄마와 통화를 했다. (동환이에 대해 잘 모르고) 무조건 자기 아이 걱정만 했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울컥함이 치솟았다. “우리 아이가 동환이 덕을 본 것도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듣자 고맙기까지 했다.

그래서 준비를 한다. 사탕을 넣을 선물봉지 30장과 예쁜 편지지 30장. 작년과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지난해 겨울방학이 시작되면서 1년을 같이 지낸 친구들에게 사탕봉지를 돌렸다. 그 때는 고마웠다는 작은 메모를 붙였다. 하지만 이번엔 편지다. 편지여야 한다. 개학식 날 새롭게 한 반이 된 친구들에게 편지가 붙은 사탕봉지를 돌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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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아 안녕~! 난 동환이라고 해. 나는 아직 말을 못해서 우리 엄마가 내 마음을 대신해 써주고 있어”로 시작되는 편지에는 동환이가 왜 장애인이 되었는지, 어떤 특성이 있는지 등이 자세히 쓰여질 거다.

그리고 돌아오는 3월 학부모 총회에는 아들의 학교에 참석을 할 거다. 담임선생님에게 미리 양해를 구해서 총회 시작 전 5분의 시간을 달라고 할 거다. 엄마들에게 인사를 하고 아들에 대해 이해를 구하는 시간을 가질 거다. 솔직하고 담담하게 말하되 전처럼 필요 이상으로 미안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못 갈 데를 간 것이 아니다. 우리 아들은. 의무교육을 받으러 학교에 왔고 뺑뺑이에 의해 같은 반이 되었을 뿐이다. 국영수 등의 주요과목 시간에는 특수반에 내려가 있어서 일반 아이들의 학습에도 지장을 주지 않는다. 고개 숙인 죄인일 필요가 없다. 나 역시 당신들과 똑같은 반 구성원의 엄마일 뿐이다.

개학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새로운 엄마들도 만날 것이다. 그리고 작년과 달라진 내가 그 안에 있을 것이다.

나의 변화가 아들의 학교생활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아직은 모르겠다. 또 다른 시행착오를 겪는 1년이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은 직진이다. 난 엄마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후퇴란 없다.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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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류승연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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