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기적
작은 기적
작은 기적
2017.03.02 17:12 by 고수리

혼수품을 사러 엄마와 백화점에 갔을 때의 일이다. 엄마는 비싸고 좋은 그릇과 조리도구들을 바리바리 챙겨서 사줬고, 우리 사정에 비해 부담스러운 가격인 걸 알고도 나는 암말 않고 다 받았다. 왜냐하면, 그동안 많이 챙겨주지 못한 미안함에 딸에게 뭐라도 더 보태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혼수품을 다 사고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섰다. 그런데 엄마가 어떤 가게 앞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폴란드 그릇을 파는 가게였다. “어머나, 이렇게 예쁜 그릇들도 있었니?” 엄마는 어린애처럼 초롱초롱한 눈빛이었다. 동그란 도기들에는 소박하고 따뜻한 색감의 꽃과 문양들이 그려져 있었다. 점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폴란드 장인이 작은 부분 하나까지 손수 만들었다고. 핸드메이드 제품이라 그런지 가격도 비쌌다.

작은 기적

“역시 장인이 만든 거라 다르구나. 예쁘긴 한데 너무 비싸네…” 엄마가 못내 아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엄마, 갖고 싶은 거 하나 골라. 내가 사줄게.” “아니야. 너무 비싸다.” 엄마의 만류에도 나는 기어코 머그잔과 찻잔세트 하나를 선물했다. 자잘한 보라색 수국이 그려진 항아리 모양의 잔이었다. “엄마, 시집가는 딸이 주는 선물이야. 이 잔으로 차 마시면서 힐링해.”

“고마워, 딸.”

혼수품에 비하면 하나도 비싸지 않았다. 다른 폴란드 그릇들도 더 사주겠다고 했지만, 엄마는 손사래를 치며 이거 하나면 충분하다고 했다. 두 손에 쏙 안기는 수국 머그잔을 받아 들고선 소녀처럼 기뻐했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애지중지하던 머그잔 손잡이가 똑 떨어져 깨지고 말았다. 매일매일 그 수국 머그잔만 사용하던 엄마가 실수로 커피를 쏟았고, 식탁에서 떨어진 잔의 손잡이 부분이 깨지고 만 것이다. 엄마는 앓는 소리로 구구절절 사연을 말했다.

“수리야, 어떡하니. 네가 선물로 사준 잔이 깨졌어. 손잡이 부분이 떨어져버렸지 뭐야. 깨진 조각도 아까워서 찾아들고선 여기저기 붙일 방법을 알아봤는데, 아무래도 원래처럼 예쁘게 만들 수는 없을 것 같아. 아까워서 어떡하니. 우리 딸 선물인데….”

나는 해당 폴란드 그릇 본사에 머그잔을 고칠 방법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원래처럼 완벽히는 아니더라도 깨진 부분을 고쳐보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엄마는 본사에 깨진 머그잔을 보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냥 잔만 보낸 게 아니었다. 깨진 조각과 손으로 직접 쓴 메모를 동봉하여 보냈다고 했다.

안녕하세요. 이 머그잔은 우리 딸이 시집갈 때 준 특별한 선물이에요. 평생 잘 쓰고 싶었는데. 제 실수로 깨져버려서 너무나 마음이 아프네요. 저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책을 읽을 때도, 티타임을 가질 때도 이 머그잔에 차를 부어 한 모금씩 마시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딸애를 생각하면서요. 원래와 똑같지 않아도 괜찮아요. 이 머그잔을 계속 사용할 수 있게만 어떻게 고칠 방법이 없을까요? 부탁드려요.

그리고 몇 주 뒤, 손잡이가 고쳐진 머그잔이 도착했다. 본사에서도 덩그러니 잔만 보낸 게 아니었다. 반듯반듯 손 글씨로 적어 내려간 메모를 동봉해서 보냈다.

고객님 안녕하십니까. 항상 저희 제품을 아끼며 사랑해 주셔서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사실 깨진 도자기를 다시 붙인다 해도 처음의 상태와 같아질 수 없고, 깨진 조각도 맞지 않아 본사에서는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하지만 고객님의 정성 어린 메모를 본 후, 저희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조치를 취해보고자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따님을 생각하시는 고객님의 마음을 생각하며, 저희 또한 최선을 다해 작업을 하여 고리를 붙일 수는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제품의 모습이 처음과 같지 않아 고객님의 마음에 들지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고객님과 따님의 사랑이 가득 배어 있는 소중한 첫 잔이 저희 제품이라 더욱 감사한 마음입니다. 추운 겨울, 늘 건강하시고 항상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 L 본사 직원 일동

엄마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딸, 머그잔이 왔네. 찻잔 가득 기쁨이 흘러넘친단다.” 고쳐진 손잡이 부분은 원래의 문양과는 달랐지만, 투박하고도 정성스러운 손길이 닿아있기에 엄마는 그 머그잔이 더욱 좋아졌다고 했다. 엄마는 얼마나 기뻤는지 그 후로도 다섯 번이나 내게 전화를 했다. 그렇게 엄마의 머그잔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특별한 선물이 되었다. 뭉클한 작은 기적. 결국은 마음이었다. 나의 마음과 엄마의 마음, 그리고 겨우 깨진 머그잔 하나를 고치는 데에도 최선의 정성을 담은 회사의 마음. 저마다 다른 문양의 조각들이 이어져 아름다운 퀼트처럼, 마음과 마음이 이어진 아름다운 머그잔은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었다.

씽씽 찬바람이 불어도 엄마의 두 손에 따뜻하게 안길 머그잔. 손잡이에 다른 문양이 붙어있어도 참말로 예쁘기만 하다.

이 콘텐츠는 첫눈출판사에서 출간한 책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의 내용을 재가공한 것입니다. 고수리 작가와 책에 대해 더욱 궁금하신 독자분들은 첫눈출판사 브런치로 방문해 주세요.


The First 추천 콘텐츠 더보기
  •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이제 헤어 케어도 브랜딩이다!

  •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1년 사이 가장 주목할만한 초기 스타트업을 꼽는 '혁신의숲 어워즈'가 17일 대장정을 시작했다. 어워즈의 1차 후보 스타트업 30개 사를 전격 공개한 것. ‘혁신의숲 어워즈’...

  •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초개인화의 기치를 내건 스타트업들이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관광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틈새에 대한 혁신적인 시도 돋보였다!

  •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기업의 공간, 자산 관리를 디지털 전환시킬 창업팀!

  •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의 등장!

  •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유망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 맞춤형으로 지원한다!

  • 초록은 동색…“함께 할 때 혁신은 더욱 빨라진다.”
    초록은 동색…“함께 할 때 혁신은 더욱 빨라진다.”

    서로 경쟁하지 않을 때 더욱 경쟁력이 높아지는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