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 곳도, 돌아갈 곳도 없다...난민 1세대 이야기
머물 곳도, 돌아갈 곳도 없다...난민 1세대 이야기
머물 곳도, 돌아갈 곳도 없다...난민 1세대 이야기
2014.10.10 15:40 by 더퍼스트미디어
 

5개월 전, 이집트인 A 씨는 가까스로 한국 땅에 도착했다. 목숨을 건 시도였다. 인구의 90%가 이슬람교도인 이집트에서 기독교인이란 이유로 공격을 받아 죽을 뻔했다. 이집트에 계속 살면 살해 당할 거란 생각에 A 씨는 무작정 공항에 가서 한국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한국은 이집트 국민이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소에 도착한 A 씨는 온몸에 난 칼자국을 보여줬다. 출입국관리소에선 난민인정신청을 해주고, 현재 머물고 있는 난민지원 NGO를 소개해줬다. A 씨는 지금 한국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미래가 불확실하니 단 하루도 마음이 편하지 않네요.”

A 씨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이집트에서 A 씨는 꽤 잘나가는 요리사였다.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피자를 만들었다. 지금은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 난민 인정은 평균적으로 2~3년이 걸리는 긴 여정이다. 정부에서 받는 생계비로는 생활이 빠듯해서, A 씨도 이제 일거리를 찾아 나선다. A 씨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브룬디 출신 난민들이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로 가기 위해 전세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이로비에 도착 하면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오르게 된다.


  | 난민 정책의 화두는 자립(自立)  

이는 A 씨뿐만 아니라 국내에 들어와 있는 난민 모두의 문제다.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1992년 처음으로 난민협약을 맺은 한국은 94년부터 난민신청을 받았다. 2014년 5월 말 기준으로 난민신청자 총 7443명에 난민 인정자는 393명이다. 신청자 20명 중 1명만 난민으로 인정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자립(自立)이다. 난민으로 인정받는다고 해도 언어, 문화가 전부 다른 땅에서 이들이 정착할 수 있는 방도를 찾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전문가들은 “난민들이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을 정부와 민간이 함께 조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난민 관련 지원을 정부가 모두 떠맡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유럽의 경우, 정부가 난민에 대한 부담을 온전히 짊어져 1~5년씩 집중적으로 지원하는데, 그 결과 받을 수 있는 난민의 수가 극도로 제한됐다. 국민들 역시 세금에서 난민 지원 비용이 빠져나가는 것을 꺼리고 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국가에 민주화를 가져다 준 '아랍의 봄'으로 인해 약 2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 머물 곳도, 돌아갈 곳도 없다  

한국은 어떨까. 정부의 난민 생계비 지원, 숙소 지원, 취업 지원이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 정도이면 끝나기 때문에 그 안에 주거지와 직장을 구하지 못한 상당수의 난민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이에 피난처, 난민인권센터, 휴먼아시아, 어필, 에코팜므 같은 NGO외에도 공감, 동천 등의 재단법인, 명지대 F.O.R 프로젝트 공동체 등 민간지원기관들이 사각을 메우고 있다. 이들 기관은 오랜 시간 난민들과 직접 접촉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정부가 갖지 못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일례로 피난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아 2011년 갈 곳 없는 난민들을 위해 공동주거난민숙소 ‘라이트하우스(Light House)’를 세웠다.

라이트하우스에는 현재 이집트, 중국, 콩고, 에티오피아, 시리아 등에서 온 난민들이 살고 있다. 숙소에 머무는 난민의 수는 하루 단위로 바뀐다. 하루 평균 10여 명의 새로운 난민들이 피난처를 찾아오고 있기 때문. 따로 홍보 하지도 않았는데 소문을 듣고 찾아온다. 이렇게 숙소에 사는 난민들은 평균 12명 정도이다. 그러나 올해 초, 지원금이 끊겨 한 달에 400만 원씩 적자가 나는 위기를 겪었다. 적자는 계속 나고 있는데, 갈 곳 없는 난민들을 나가라고 할 수 도 없고 난감한 상황. 피난처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난민 지원 민간단체들은 운영비의 상당 부분을 후원금으로 충당하기 때문에 원하는 프로그램을 지속하기에 재정적인 어려움이 따른다. 게다가 ‘비정부기관(NGO)’이라는 특성상 정부에게 온전히 의존하지 않으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 민관이 함께 난민 자립 위한 대안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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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국내 최초의 난민 NGO 피난처를 세워 ‘난민계의 대부’로 불리는 이호택 대표는 “너무 많은 지원을 받은 난민은 사회에 나가서 독립을 못 하고 의존적이 되고, 반대로 지원을 못 받는 난민들은 적응조차 어렵다”면서 “정부와 민간의 적절한 지원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유럽과 달리 1~3개월간 철저히 직업교육 중심으로 난민들을 교육한 후 바로 시장에 뛰어들게 한다. 그리고는 ‘어떤 일이라도 하라’고 말한다. 전 세계 난민 8만명 중 7만 명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이다. 생계를 책임져야 할 부담이 적기 때문. 실제로 이렇게 자유시장에 나간 난민들은 스스로 살길을 찾고 있다. 물론 중간에 낙오하는 난민들도 있지만, 그런 경우 미국 내 민간 지원기관들이 체계적인 지원에 들어간다. 영어교육 외에도 숙소, 취업, 생활필수품 제공, 문화교육, 법률 서비스, 의료지원 등을 제공하고 있다. 난민의 숫자가 많은 만큼 할당된 예산도 충분하여 체계적인 지원이 가능하다.

이호택 대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부와 민간이 매칭펀드(Matching Fund) 식으로 협력하는 것”이라면서 “민간기관이 개인후원 등을 통해 50%의 펀드를 마련하고 나머지 50%를 정부로부터 지원받아, 지속 가능한 난민 자립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IOM 한국대표부 제공>

 

이들도 우리의 가족입니다 _중도입국 자녀를 위한 이웃사랑다문화안산지역아동센터의 새로운 시도현장

 

“이 대본에서 사자는 어떻게 연기해야 할까?” 확성기를 통해 들려오는 질문에 스무 개의 앳된 얼굴이 사뭇 진지해진다. 5초쯤 지났을까. “목소리가작고 자신감이 없어야 해요”, “소심해야 해요”, “무서운 걸 보면 도망가요”, “나중엔 용감해져요” 등 다양한 대답이 교실 이곳저곳에서 쏟아져 나온다.

지난 7월 24일, 안산에 위치한 ‘이웃사랑 안산 다문화 지역아동센터(이하 이웃사랑 센터)’ 현장. 서로 다른 언어, 사회, 문화를 가진 45명의 아동이 이곳에서 한국을 만난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아이들을 반긴다. 이중 언어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쉽고 정확하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합창 수업을 통해 한국어 발음 교정을 한다. 뮤지컬 수업으로 우리말의 감정과 표현력을 기른다. ‘3년만 센터에 나가면 한국에 적응할 수 있다’는 입소문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2008년 5월, 다문화 아동센터를 짓는다는 말에 시청 직원이 그 다음날 바로 인가를 내줬죠. 아동센터는 많지만, 당시 다문화아동센터는 저희가 최초였거든요.”

정권 센터장이 안산 최초로 다문화아동센터를 ‘개척’하던 그 시절을 회고했다. “초창기엔 센터에서 부모 중 한 사람이 한국인인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돌봤습니다. 그런데 2011년을 기점으로 부모 모두 한국인이 아닌 아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다문화 아동의 새로운 카테고리였던 거죠.” 그는 이들을 중도입국다문화아동(이하 중도입국자녀)이라 했다. 이웃사랑센터 내의 중도입국자녀의 비중은 어느덧 75%를 넘어섰다. 전체 45명의 아이 중 30여 명이 중도입국자녀다. “중도입국자녀들은 두 가지로 분류될 수 있어요. 먼저, 중국인 엄마가 한국 남자와 재혼해서 살다가 예전 결혼에서 낳은 자녀를 한국으로 데려오는 경우가 있어요. 또 한국으로 일하러 온 이주노동자들이 자녀를 데려오기도 하죠.” 2012년 1월 말까지 출입국관리소에 귀화를 신청한 부모 동반입국 청소년 가운데 19세 이하 청소년은 5828명에 달한다.

센터는 서로 다른 경험을 하고 온 아이들의 한국 적응을 위해 다양한 문화 체험과 멘토링을 도입했다. 용인 서원고, 부곡고, 원곡고 학생들이 정기적으로 센터에 방문해 아이들의 공부를 봐주고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한다. 서울 무료영어지식봉사단인 ‘꿈나학’은 벌써 5년째 영어 멘토링을 지속하고 있다. 신분과 학력 인정을 받지 못해 학교에 가지 못하는 미등록 아이들을 위해 인식개선활동도 진행한다. 정권 센터장이 원곡 초등학교 운영위원을 하면서 미등록 아이들의 교육권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 미등록이주아동은 학교의 재량에 따라 초중고에 진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도입국자녀들은 학교 적응을 힘들어해요. 밥 먹듯 학교를 빠지고 피시방에 가있죠. 성장기를 외국에서 보내 한국어 습득이 쉽지 않기도 하지만, 매사에 의욕이 없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한국어 수업을 하려면 ‘한국말 배우는 거 힘든데 왜 해요?’, ‘책은 재미없는데 왜 봐요?’라는 대답을 듣기 일쑤였죠.” 이웃사랑센터는 뮤지컬 교실을 통해 아이들의 사회성을 기르는 데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삼성꿈장학재단의 지원도 큰 도움이 됐다. “아이들이 눈치가 없어요. 어떤 상황에서 놓였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잘 몰라요. 이에 뮤지컬 교실에서 역할극을 만들어 서로의 감정을 배우도록 했습니다. 나를 다른 사람의 입장에 놓아보면서 느끼는 거죠. ‘아, 이 상황에선 이렇게 행동해야겠구나’ 하고 말이죠.” 중도입국자녀는 실제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다. 청소년기 자아정체성 확립이라는 발달적 과업과 함께 새로운 문화에 적응해야 하는 이중의 어려움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모가 재혼한 경우에는 새롭게 형성된 가정에 적응해야 해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경우가 많다.

정권 센터장이 보는 미래의 다문화아동센터의 역할은 중도입국자녀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국은 현재 대한민국 국민과의 사실혼 관계에서 태어난 다문화아동들을 위해 많은 지원을 해주고있어요. 하지만 중도입국자녀들같이 소위 ‘외국인의 자녀’에게는 혜택이 돌아가지 않죠. 중도입국자녀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과 응원, 그리고 지지가 필요합니다.”

한국사회에서 자라날 중도입국자녀, 그들은 외국인의 자녀가 아닌 우리 모두의 자녀다. (사진_정은진)




 



글/정은진
정은진
소셜에디터스쿨 청년세상을 담다 1기 이호택 대표님과 정권 목사님, 지난 이 주간 두 개의 바다를 만났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물결치는, 하지만 결국은 같은 소리를 내며 부서지는 눈부신 바다였다. 청세담과 함께 한 지난 24주를 돌아보면 꿈만 같다. 지면상으로만 보던 기자님을 실제로 만날 수 있었던 것만 해도 영광인데 그들이 멘토를 자처하며 내 곁을 든든히 지켜주었다. 청세담지기들 역시 부족한 나를 전적으로 이해해주고 ‘받아’준 또 하나의 바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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