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동, 강철 골목에서의 대화
산림동, 강철 골목에서의 대화
2017.03.14 02:17 by 최현빈

등장인물

최현빈(26): 글의 화자

고대웅(27): 조소작가, 팀 R3028 팀장

이효광(52): 볼트공업사 사장

이태순(48): 유리공업사 사장

 

#1 산림동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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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도 만들 수 있는 곳’. 서울시 중구, 세운대림상가와 을지로4가역 사이 위치한 산림동 골목을 소개하던 문구다. 철과 금속, 유리 등을 다루는 공업소와 장인이 대거 모여 있기 때문에 생겨난 말. 이곳엔 언제나 철 깎는 소리로 요란하다. 거대한 기계들이 신기해 카메라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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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공소 주인: “사진 맘대로 찍다가 카메라 부서져요.”

강철보다 더 차가운 말이 날아온다. 이곳에서 나는 철저하게 이방인이다. 공업소의 장인들은 작업에 여념이 없다. 제조‧건설업이 한창 성장하던 70~80년대, 이곳은 최고의 부흥기를 맞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옛말이다. 곳곳에 내려진 셔터가 2017년 산림동의 지금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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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그려진 셔터는 이곳에 새롭게 칠해지기 시작한 풍경이다. ‘아저씨’들로 가득할 것만 같은 골목에 젊은 예술가의 작업실이 있었다. 산림동을 비롯한 을지로 2가와 4가 사이에는 지난 2~3년간 50여 곳의 작업실과 전시장이 들어섰다. 팀 ‘R3028’은 지난해 1월 산림동에 들어온 예술가 그룹. 그룹의 운영을 맡고 있는 고대웅(27)씨를 먼저 찾아갔다.

 

#2. R3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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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동 47-1번지 오래된 건물 2층에 ‘R3028’의 작업실 겸 전시실이 있다. 검은 정사각형 모양의 간판에 ‘WHITE CUBE’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 곳이다. R3028은 창작자‧교육자를 동시에 지향하는 8명의 젊은 예술가들로 이루어진 팀. 반 층으로 나누어진 공간을 위는 작업실, 아래는 전시장으로 활용한다. 내부는 깔끔하지만, 건물이 오래된 탓에 바람이 불 때마다 차가운 공기가 급습한다.

 

히터를 항상 켜둬야겠다.

고대웅(이하 고): 이 건물이 정말 오래된 건물이라 그렇다. 1936년 만들어진 ‘대경성부대관’이란 지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처음 지어질 때는 ‘ㄱ’자 형태의 건물이었는데 그 위에 증축을 해나가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팀 ‘R3028’ 고대웅 작가

공업소들이 밀집된 지역이 어색하지는 않았나

: 학부 시절 조소를 전공했다. 철공과 석조, 목공을 자주 다루다 보니 이런 골목이 어색하진 않았다. 동양화나 한국화, 일러스트를 전공한 다른 작가들은 이질감을 많이 느끼더라.

다른 작가들은 그런 이질감에 잘 적응했나?

: 처음엔 어색했지만, 오래된 요소에서 오는 그런 이질감들이 나중엔 작품의 좋은 모티브가 되었다. 공업소의 장인과 새롭게 들어온 젊은 작가의 차이는 학위의 유무, 그리고 경험에 따른 숙련도뿐이다.

들어온 지 1년이 되었다. 그동안의 소감이 궁금하다.

: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아버지와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이 하나도 없더라. 오래된 골목은 사라지고, 건물은 허물고 새로 지었으니까. 세대 간의 공감에 이런 공간의 유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고양이들은 건물의 오래된 구조를 꿰고 있어 집들을 자유롭게 드나든다고 한다.

팀 ‘R3028’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해준다면

: 여덟 명의 팀원 중 일곱이 예술교육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각각 팀원들마다 지향하는 방식이 다른데, 작년에는 ‘공동체중심미술교육’이란 공통된 틀 내에서 진행했다.

공동체중심미술교육, 생소한 단어다.

: 각 지역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모두 주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바로 앞 셔터에 내려진 그림을 예로 들면, 이 지역의 아동상담센터에서 보호받고 있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다. 아이들과 미술 교사들이 함께 진행했는데, 그림에 대한 모든 시안을 이곳의 점주들과 함께 회의하며 구상했다.

점주들도 그림에 대해 만족했다는 얘긴가?

: 당연하다. 작가가 지역을 이해하고 주민들과 함께 진행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지난해 서울 혜화동 낙산공원에 그려진 그림을 인근 주민들이 지우는 일이 있었다. 예술가들이 갑작스럽게 지역에 유입돼 일방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빠진 것에서 온 부작용이다.

셔터 그림 이외에 지역에 변화를 준 부분이 있다면

: 철공소 골목에 ‘마당’이라고 불리는 작은 공간이 있다. 그곳에서 재즈, 팝, 전통 연희 같은 공연을 진행했었다.

지난 8월 ‘마당’에서 열렸던 공연(사진: R3028)

외부에서 보기엔 눈에 확 띄진 않을 것 같다.

: 이곳의 장인들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것, 그것이 변화를 만들고 싶은 첫 번째다. 이곳 장인들은 일이 끝나면 이전엔 술을 마시거나 화투를 쳤다. 하지만 요즘은 젊은이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듣는다. 젊은 친구들과 소통하는 것과 거리가 있던 분들이 변화하는 것이다. 이러면 외부에서 이분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들어왔을 때, 대하는 것이 달라지고, 함께 해나갈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달라진다. ‘지역 재생’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이 있다. 예쁜 그림과 조형물이 들어오고 새로운 가게가 들어서는 변화. 그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처음엔 불편해하는 점주들도 있었을 것 같은데.

: 제일 걱정했던 부분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건물 벽돌이 깨진 부분을 그림으로 대신 채워주며 조용히 접근했다. 그런데 반응이 정말 좋더라. 근처 식당 아주머니는 30년 동안 장사하면서 ‘이곳에 그림이 그려진 건 처음이다’ ‘예쁘다’며 응원도 해 주고, 전시실 내에서 작은 공연을 열었을 땐 다들 밖에서 몰래 듣고 있었다. 다음엔 언제 하냐, 또 열어줄 수 있냐고 넌지시 물어보기도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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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3028 전시실 풍경

서울 사대문 안이라, 땅값에 대한 고민도 있겠다.

: 사실 땅값은 이미 너무 비싸다. 이곳이 재건축 못되는 이유도 재건축을 통한 이익보다 땅값이 더 비싸기 때문이다.

이곳의 제일 좋은 점은 무엇인가?

: 일단 교통. 서울 어디를 가든 버스나 지하철 한 번이면 간다. 그리고 이곳의 장인들. 도면만 들고 가면 무엇이든 다 만들어준다. 예술가들, 특히 조소하는 사람들은 이분들이 정말 큰 도움이 된다. 이곳에 들어온 뒤 후배들한테 연락이 오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가 전부 여기 사장님 소개시켜달라는 연락이다. 이곳 점주들도 대학 다니는 친구들이 와서 작업 부탁하고 그러면 큰돈은 못 되더라도 엄청 신나한다. 과거에만 사는 게 아니라 새로운 고객이 생기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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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계획은

: 작년에 진행했던 것들을 더욱 구체적으로 해 나가고, 지역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미술 감상교육을 할 예정이다. 공무원들이 예술을 감상할 수 있으면 관련 행정도 더욱 개선될 것이라 본다. 그리고 이곳의 장인들을 기념할 수 있는 화단과 조형물도 설치할 계획이다. 가칭 장인의 화원?(웃음)

 

#3. 골목 끝 어느 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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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가 되어가자 오후 내내 힘차게 돌아가던 기계들이 작동을 멈추기 시작한다. 이곳 장인들의 삶은 어떨까. 볼트사 셔터를 내리고 있는 이효광(52)씨에게 용기내 말을 걸었다.

이효광(이하 효): (잠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 웃는다) 우리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그럼 술이 들어가야지. 옆집 사장도 데려올 테니 기다려 봐.

이효광씨가 옆집 유리 공업사를 운영하고 있는 이태순(48)씨를 데려왔다. 근처 작은 술집에 셋이 한 테이블에 앉았다.

이효광(좌)‧이태순(우)씨의 모습

처음엔 이곳 분위기가 많이 어색했다.

: 밖에서 보면 여기 사람들이 많이 거칠어 보이긴 하다. 워낙 투박한 구석이 있다 보니까. 바빠 보이는 것도 막상 보면 한가하다.

조금 전에는 이곳 작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 (이곳에 들어오는 젊은 예술가들에 대해)우리는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는 게 익숙하지 않다 보니 처음엔 귀찮아했다. 하지만 한두 달 지나니 사람들도 조금씩 관심을 가지게 되고, 포스터가 붙어있으면 무엇인가 보고 찾아가고 그러더라.

그러한 변화를 긍정적으로 보나?

: 사람들의 호응은 예전에 비해 확실히 좋아졌다. 하지만 지역에 있어서 그것만으론 변화에 한계가 있다고 본다.

어떤 한계?

이태순(이하 태): 일단 지역이 워낙 오래됐다. 건물도 마찬가지다 보니 안전에 문제가 많다. 얼마 전에도 화재가 났다.

: 겨울이면 한두 집 불나는 건 일도 아니다. 새벽 잠깐 사이에 골목 전체가 폐허가 돼도 이상하지 않다. 예술도 좋지만 그런 부분이 개선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한 문제의 대책은 없나.

: 일단 이곳 사람들이 기본적인 안전 규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안전불감증 때문인지 쉽게 다친다. 같은 물건 몇 천 개, 몇 만 개를 계속 찍어내다 보면 조금만 정신을 놔도 손가락이 나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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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은 언제부터 이곳에서 일했나?

: 1979년, 아버지가 지금 가게를 처음 차렸다. 고등학교 때였는데 방학마다 일을 도왔다. 대학 졸업하고 광고회사를 다니다 잠시 쉬던 중 ‘한 달만 도와드리자’ 했던 것이 어느덧 25년이 되었다. 그사이 큰아들이 대학교 3학년이다.

: 고등학교 때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것이 코가 꿰여서 지금까지 왔다. 아내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일만을 계속 해온 걸로 아는데, 중간에 대학도 지원하고, 군대도 다녀오고 그랬다. 이 동네 사람들은 그렇게 시작한 분들이 대부분이다.

비교적 젊은 사람들도 비슷한가?

: 지금도 그렇다. 대학 졸업하고도 아버지가 하고 있으니까, 그런 식으로 온다. 이곳에 일하는 20대 후반부터 30대 후반 친구들도 다 그렇다. 사람 구하기도 힘들고, 다른 사람 시키자니 불편하고. 그러니까 아들과 협상을 하는 거다. ‘같이 해볼래? 먹고는 산다’ 이런 식으로.

: 불과 10년 전만 해도 잘 나갔다.(웃음) 금고에 돈을 넣을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하루에 은행을 다섯 번씩 가야만 했다.

: 그땐 흔히 ‘뻘짓’이라 말하는 술‧여자‧도박만 안하면 작은 건물도 가질 수 있었다. 지금도 기본적으로 먹고 사는 덴 지장 없다. 집도 한 채씩 갖고 있고, 자식들 시집장가도 보낼 수 있다.

이 골목의 산증인이겠다.

: 98년 IMF가 이곳에선 중흥기였다. 대기업에서 나온 사람들은 창업을 준비했고, 거래는 현금으로만 이루어졌으니까.

: 무슨! 최고의 호황은 70년대 후반이었다. 그땐 전 세계적인 호황이었다. 1981년에 지하철 2호선 개통과 궤를 함께했다. 그때는 이곳에 들어오는 차량과 지하철 공사 현장이 막혀서 난리도 아니었다. 물건을 실으려는 차들은 끊임없이 들어오는데 길은 막히고, 한 블록 통과하는데 한 시간 넘게 걸렸다.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시장이 완전 죽었다.

곳곳에 내려진 셔터가 눈에 띄더라.

: 2003년부터 추진한 청계천 복원사업 이후 심하게 가라앉았다. 지금 들어온 예술가들도 그때 나간 장인들의 빈자리에 들어온 거다.

: 그래도 여기선 일확천금은 아니더라도 일한만큼 돈은 ‘따박따박’ 들어온다. 이십대 후반의 직원들은 하나같이 ‘내가 이곳에서 일할 줄 몰랐다’고 한다. 밖에서 보면 작업복 입고 지저분하고 먹고살기 힘들어 보이니까.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그렇지 않은 거다. 대기업에서 가장 힘들다는 30대 후반이 이 골목에선 황금기다. 자기 가게도 차릴 수 있고, 가족도 먹여 살릴 수 있고. 힘들 때도 있지만 걱정은 안하고 산다니까.

‘탱크가 만들어지는 곳’이란 말은 어떻게 나오게 되었나?

: 언론에서 만든 말이다. 이런 뻥쟁이들, 탱크를 만든다니.

: 개인용 컴퓨터가 1982년, 세운상가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의료용 CT촬영하는 기계도 그렇고. 그러다 보니 그런 말들이 생겨난 것 같다.

저 멀리 보이는 건물이 세운상가. 이곳에서 컴퓨터가 처음 만들어졌다.

가장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가?

: 책보는 것도 좋아하고 음악듣기도 좋아한다. 요즘 노래는 잘 모르고 클래식과 팝을 즐겨듣는다.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하드락 그룹 ‘Deep Purple’. 가장 좋아하는 곡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 요가부터 시작해서 모든 운동. 요가는 헬스의 기본 바탕이고, 헬스의 기본 바탕은 요가다. 내 몸 굴려 일하는 거니 몸 관리를 착실하게 하려고 한다.

갑작스런 인터뷰 요청에 응해줘서 감사하다.

효‧태: 감사할게 뭐 있어. 우리도 반갑지. 지나가던 다른 사람들이 인턴 직원 새로 뽑았냐고 물어보더라. 이곳에 언제든지 찾아와도 좋다.

 

/사진: 심혜원

필자소개
최현빈

파란 하늘과 양지바른 골목을 좋아하는 더퍼스트 ‘에디터 ROBIN’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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