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장 부리다가 자재 배송을 늦게 받아보게 된 에디터. 주말동안 할 일은 기존 벽지와 장판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작은 방 벽지를 꼼꼼히 살펴보니, 손대기 전부터 이미 반 쯤 떨어져있는 상태. 틈새로 시멘트가 깨끗하게 드러나 있기까지 하니, 그리 어려운 작업이 될 것 같진 않았는데…
에디터의 깨알 TIP
준비물은 많지 않았다. 커터칼, 헤라, 목장갑(한쪽 면에 빨간 칠 되어있는 것이 좋다. 아닌 걸 사용했더니 금세 구멍이 났다), 마스크, 그리고 의자. 사실 밟고 올라설 것이 필요할 거란 생각은 작업 하루 전에 번쩍 들었다. ‘내가 가진 의자라곤 10㎏짜리 바퀴달린 의자뿐인데… 어쩌지?’라는 고민도 잠시, 그저 ‘어떻게든 되겠지’ 마인드를 가지고 집으로 향했다.
역시! 왠지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 땐, 신기하게도 일이 술술 잘 풀린다. 대문 바로 앞에서 주인 없는 의자들을 발견한 거다.
친절한 메모도 붙어있었고, 개수도 절묘하게 작업을 도와줄 친구 몫까지 딱 두 개! ‘나 <트루먼 쇼> 나오고 있는 거 아니야?’라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쾌재를 불렀다. 이후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르면서…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에디터는 <트루먼 쇼>가 아니라 <운수 좋은 날>의 주인공이었단 걸 깨닫는다. 어쩐지 오늘은 운수가 좋더라니….
망설임 없이 작은 방의 가장 너덜거리는 부분부터 벽지를 뜯기 시작한 에디터. ‘이거 장난 아니겠다’란 생각이 들기까지는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내 느린 손은 사태파악만큼 빠르지 않았다. 뭉텅이로 쉽게 떨어질 것 같던 벽지는 풋내기의 패기를 비웃기라도 하듯 조각조각 찢어졌다.
게다가 한 두 겹뿐일 거라 생각했던 벽지는 무려 대여섯 겹으로, 마치 엄*손 파이를 쪼개먹을 때처럼 한 겹씩 떨어졌다. 수많은 이들이 남기고 간 세월, 추억, 그리고 도배풀이 겹겹이 진득하게 녹아있는 벽이었다.
에디터의 깨알 TIP
벽 4개 중 3개를 처리하자 아직 벽에 붙어있는 것들도, 바닥에 흩어져 있는 것들도 모두 악마처럼 보였다. 팔을 붕붕 휘두르며 벽지를 찢어발기는 에디터를 보며 친구는 ‘금세 달인이 되었다’며 박수를 쳐주었다.
사실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온 집안 벽지를 다 떼어내고 새로 바르는 게 목표였지만, 원래 상태가 안 좋았던 작은 방만 처리하기로 스스로와 타협했다. 이 집에 벽지 대여섯 겹을 쌓아올린 사람들도 괜히 기존 것 위에 덧바른 게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작은 방을 뺀 나머지 부분은 모두 벽지가 한 겹 뿐이었다). 좋아, 자연스러웠어!
블로그를 보면 다들 콘크리트 면만 깨끗하게 남기고 마무리 하던데… 위 사진이 에디터의 한계이자 최선이었다. 분무기로 물을 뿌려 불린 다음 헤라로 긁어내면 잘 긁힌다고 들었지만, 벽과 닿는 각도가 안 맞아서인지 효과가 미미했고 쇠칼로 콘크리트를 긁는 느낌도 견딜 수 없었다. 게다가 조그마한 헤라에 비해 남은 벽들이 너무 막막해보였다. 셀프인테리어를 하면 3평짜리 방이 어마무시하게 큰 공간처럼 느껴지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다.
앉아서 쉬는 동안 ‘새 벽지 바를 벽이 매끈하지 않으면 시공 후 울퉁불퉁해질 수 있다’는 글을 열 개정도 읽었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기존벽지를 제거해야 할 경우, 최소한으로만 작업 한다’는 글을 한 개 읽었다.
그 하나의 글 덕분에 상쾌한 기분으로 더 이상 남은 벽지 긁어내는 일은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눈치 챘겠지만, 에디터가 뽐내는 장기 중 하나는 자기합리화다.
계획이 조금(?) 바뀌긴 했지만 기존 벽지 제거는 이렇게 마무리됐다. 사실, 벽지 뜯어내는 일이 힘들고 지루한 작업이란 건 많은 글에서 익히 읽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에디터가 이번 화에서 가장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바로 ‘벽지 뜯기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