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사연: 트라우마
첫번째 사연: 트라우마
2017.03.30 19:15 by 오휘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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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애미에서 온 편지 

저는 마이애미에서 태어난 한국인입니다. 부모님은 제가 어릴 때부터 바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와 같은 환경에 있는 친구들과 함께 영국과 호주에서 유학생활을 했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났음에도 말이죠. 엄청 말을 안 들었을 거 같죠? 맞습니다. 그랬어요. 그때 당시에는 아주 깊은 사춘기를 겪었고, 같이 있는 친구들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지냈던 것 같아요. 물론 부모님과도 친분이 있는 그런 친구들이었습니다. 저는 한국의 학교에 다녀보고 싶어서 2010년도에 한국의 대학교로 진학했습니다. 그때 ‘A’라는 제 친구 중 한 명은 영국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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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라는 친구는 4년 전 저와 제 친구들을 만나러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왔습니다. 그리고 인천공항에서 저희를 만나러 오다가 큰 사고가 나서, 그날로 하늘나라에 거주하게 됐어요. 아주 급하게 이사를 가버렸어요. 하늘로 말이어요.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꼭 만나고 싶다고, 조르고 조르던 저를 만나러 오던 제 친구……. 제가 조르지만 않았다면 친구는 지금도 제 곁에 있었겠죠?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합니다. 시신조차 산산조각이 나버려서 찾을 수 없게 된 제 친구를. 뉴스와 신문에 크게 보도될 만큼 아주 큰 사고였기 때문에, 슬퍼할 겨를도 없이 제 친구를 보내야 했던 그날을.

그 날 이후로 주변 친구들은 죄책감에 거식증과 식이 장애를 얻었고, 저 역시 폐쇄성 공황장애를 앓게 돼 길을 걷다가도 자주 숨을 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자주 블랙아웃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3시간이 넘게 소요되는 비행은 죽어도 못 타게 되었어요. 이게 제 트라우마가 되어버렸네요. 누군가 제 곁을 떠나갔다는 것. 가족과도 같던 사람을 한순간의 사고로 잃고 나니 제 존재 자체를 잃는 것 같더라고요. 그 후 친구의 어머님께서는 친구를 잃은 슬픔을 견디지 못하시고 같이 하늘로 이주해버리셨어요. 떠나셨다는 말을 할 수는 없네요, 감히…….

아마 그때부터 두 번째 트라우마가 시작된 것 같아요. 잠자리에 들지 못하겠더라고요. 어떤 똑같은 꿈이 반복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꿈이 끔찍해서 쉽게 잠자리에 들 수가 없어요. 꿈속에는 두 다리(bridge)가 있고, 다리 위에는 사람들이 서 있어요. 제 친구와 가족,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반대편 다리에 서 있고, 저는 이쪽 다리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서 있습니다. 다리 건너편의 사람들은 끔찍하게도, 아주 환하게 웃으며 그 다리 위에서 떨어져요. 저는 가만히 서 있는데 말이죠. 저쪽으로 뛰어가고 싶어도 두 다리 사이의 간격은 참 깊고 까매서, 제가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그저 그들이 다리 밑으로 떨어지는 걸 보고만 있어야 합니다. 그게 너무 끔찍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같은 꿈을 꾸기 싫어 이틀 밤을 새우고 아주 잠깐 눈을 붙인다거나, 수면제를 처방받아 먹고 잠이 들곤 합니다. 친구의 어머니를 보내고 나서부터는 더 자주 꾸게 되는 꿈이, 저는 왜인지 원망스럽지 않았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나 봐요. 상담을 받으러 다니고 있는 병원에서는 죄책감 때문에 제가 갖게 된 판타지라고 말했습니다. 저 자신이 트라우마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제가 생각하는 트라우마는 끔찍하지만, 어쩌면 동시에 친구를 추모하고 추억하는 하나의 방법인 것이라 여기면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어요. 친구의 어머니께서는 기일만 되면 친구들 한 명 한 명에게 전화를 하시면서, ‘너희들 잘못이 아니니 부디 A의 몫까지 열심히 살다 행복하게 A를 만나러 가거라.’하고 전화를 하셨었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지도 벌써 4년째가 되었습니다.

유골함이 한국에 안치되어있지 않아서 추모하는 방법은 제각각이지만, 저는 열심히 그 트라우마 속에서 친구를 추억하려고 해요. 친구의 몫까지 열심히 살다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작가님 책도 열심히 읽고 마음의 안정을 받았었고요. 책을 읽으면서 펑펑 울었던 구절이 있었는데, ‘언젠가는 꼭 만나게 될 벌써부터 그리운 당신에게.’ 이 부분이요. 저도 언젠간 제 친구를 만나러 가겠지만, 그 전까지는 잘 지내다 가려고요.

어딘가에 제 이야기를 하고 나면, 다들 안쓰러운 표정으로 ‘너무 너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는 말만 해줄 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제 트라우마를 조금 더 간직하고 싶다고 해야 하나요. 좀 변태 같고 우습긴 한데, 그게 저만의 친구를 추억하는 방법인 거 같아요. 혹여 그 트라우마가 제 몸과 정신의 건강에는 이롭지 않겠지만, 저는 마음 아주 깊숙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깊숙이 친구를 생각하고 있는 거라고 믿고 싶어요.

제게 트라우마는 이중적인 의미인 거 같습니다.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벗어나고 싶지 않은 그런 ……. 언젠가 제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나서 작가님에게 또 메일을 보내도 될까요? 제가 죄책감이 들지 않고 제 친구를 추모할 수 있게 됐을 때 그때 또 연락을 드려도 될까요?

아주 어린 나이에 제 곁을 떠나버린 제 친구 A. 아주 예쁘게 잠들었을 그 친구는 그렇게 제게 트라우마를 새겼습니다. 원망하지 않아요. 오히려 저를 원망해요. 그래도 저는 또 살아가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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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보내는 답장

가장 먼저, 사연의 저 깊숙한 곳까지 알지 못하는 채로 답장을 드리는 무례함에 대해 사과를 올립니다. 그렇지만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최대한 진중하고 명료한 마음으로 사연을 읽었습니다.

마음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누군가 ‘슬픔은 남은 자들의 몫’이라고 말했던가요. 저는 사연을 보내주신 분(제보자님이라고 하겠습니다)의 몫은 그 중에서도 유독 큰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젠가 왜소한 몸집에 비해 너무나도 크고 무거워 보이는 짐을 지고 다니시던 분을 봤었던 게 떠오를 정도로요. 마음고생이 참 많으셨겠습니다.

세상은, 아니 우주는 수많은 우연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어떤 우연적이고도 거대한 폭발로 지구가 탄생했고, 우연적으로 생명이 탄생했고, 우연과 우연, 그리고 또 다른 우연을 뚫어가며 우리는 만나고, 울고, 웃고, 또는 놀라거나 납득해가며 살아갑니다. 우연이라는 녀석은 반가운 사건들을 만들 때도 있지만, 때론 커다란 슬픔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제보자님에게 그런 눈물들을 준 것처럼요. 그리고 그러한 우연적 사건을 맞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괴로워합니다. 자책합니다. 어쩌면 나로부터 이런 일이 일어난 게 아닐까. 내가 그런 괜한 말과 행동만 하지 않았더라면!

그렇지만 제보자님, 사람은 ‘의도’로 움직이는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친구에게 보고 싶다고 하셨던 말씀에는 한 톨의 악의도 없었을 것이며, 친구 역시 제보자님이 보고 싶어 달려가고 있었을 뿐입니다. ‘네 탓이 아니야’라는, 뻔한 위로의 말을 드리는 것은 정말이지 원치 않지만, 그래도 어떡해요. 사실인데.

조금 더 나아가 하늘에 계신 친구분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는 건 어떻습니까. 친구분께선 자신 때문에 제보자님께서 끊임없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이건 정말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절대 제보자님을 원망하고 있지 않을 거예요.

제가 썼던 글 중, ‘언젠가는 꼭 만나게 될 벌써부터 그리운 당신에게.’라는 구절에 깊이 공감했다고 하셨나요. 아무렴, 언젠가는 두 분이 꼭 만나게 되겠지요. 지금으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흐르면 제보자님의 머리가 하얗게 셀 날도 올 것이고, 더 지나 하늘로 올라가시는 날도 올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둘은 만나겠지요. 그토록 그리워했던 친구분을요. 친구분도 문 앞 어디쯤 서서 기다리고 계시겠습니다.

그때 그분의 표정을 상상해 보세요. 저는 그분께서 눈물겹도록 눈부시게 웃고 있지 않을까 상상해봅니다. 참 보고 싶었다는 표정으로요. 그렇지만 동시에 본인 때문에 꽤 오랜 시간 괴롭게 지내다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환한 미소가 조금은 옅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겁니다. 친구분께서도 그것만큼은 바라지 않을 겁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추억하는 데에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되도록 양지의 방법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워하는 사람에게도, 그리고 그리움의 주인에게도요. 저는 천국을 밤보단 낮에 가까운 곳이라고 생각해요. 밤보다는 낮에 그분을 떠올리세요. 그분과 함께했던 수많은 낮을 추억하세요. 그게 제보자님의 밤에도 도움이 될 거예요.

제보자님께서는 트라우마를 이중적 의미로 여기신다고 하셨습니다.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벗어나고 싶지 않은. 그 때문에 굳이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라고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동시에 모든 것은 어두운 곳에만 있다 보면 어둡게 물들게 마련이라고 생각합니다(근묵자흑이라고 하지요). 낮과 친해지세요. 낮 시간을 점점 더 오래 음미하는 연습을 하세요. 가끔은 친구분과의 추억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그러니까 그 여러 트라우마를 따뜻하고 밝은 곳에 널어 말려주세요. 원망과 미안함을 조금씩 건조해주세요. 뽀송뽀송함과 향긋함이 점점 더 잘 느껴질 수 있도록. 언제 친구분을 다시 만나도 선뜻 보여줄 수 있도록, 그래서 함께 그것을 보며 기분 좋게 웃을 수 있도록 산뜻한 마음을 준비해가는 거예요.

지금 이 순간에도 우연적인 사고들은 사람들을 울고 웃게끔 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웃고 있는 사람도, 울고 있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그들도 살아가겠지요. 세상은 우연투성이로 굴러가고 있지만, 그것들을 다 관통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괜찮아진다’는 거대한 진리가 있으니까요.

서서히 괜찮아집니다. 괜찮아질 것입니다. 괴로움도, 원망도, 서서히 말라갈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낮과 친해지세요. 하루라도 빨리 친구분의 웃는 표정과 가까워질 수 있도록. 응원하겠습니다.

ps. 언제든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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