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2017.04.04 18:47 by 류승연

아들 학교의 학부모총회를 다녀온 이후 마음이 천근만근이다. 총회 시작 전 담임선생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반 엄마들 앞에서 아들에 대해 이해를 구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생각만큼 당당히 해내지 못한 탓이다. 생각날 때마다 이불 킥. 휴우우우우~.

나는 위축되거나 소심한 성격이 아니다. 대학 시절에는 연극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20대 때는 나이트 스테이지 위에서 춤을 추던 여자다. 양수 터지기 전날까진 정치부 기자로 활동하며 국회의원들과 맞짱 뜨는 게 일이었다 보니 세상에 무서운 사람도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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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내가 ‘동환이 엄마’로 있을 때만큼은 한없이 작아진다. 엄마들이 무서워 덜덜 떨린다. 너무 작아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내 존재는 초라해진다. 그래. 죄인 된 심정. 그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안녕하세요. 동환이 엄마입니다”. 그 한 마디를 내뱉자마자 온몸에 긴장이 엄습한다. 무대체질인 나인데 반 엄마들 눈을 마주하자마자 가슴이 내려앉는다. 다음 말을 이어가야 하는데 저 심연의 밑바닥에서부터 눈물이 왈칵 치민다. 대략 십 분 정도 이어진 교단 앞에서의 시간 동안 몇 번이나 울컥해서 말문이 막혔다.

뻔뻔할 필요도 없지만 당당하고 담담히 우리 아들에 대해 설명을 하리라던 계획은 물거품 됐다. 혹자는 말한다. 장애 아이를 낳은 우리는 일반 엄마들 사이에서 ‘고개 숙인 엄마’로 살아야만 한다고. 어쩔 수 없다고. 또 다른 혹자는 말한다. 당당히 요구하고 싸워나가라고. 내 아이를 지키려면 차라리 진상 엄마가 되는 게 낫다고.

씩씩하게 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슬프고 지친 나는 도움이 필요하다. 멘토가 절실하다. 누군가…. 내 손을 잡아 끌어줄 누군가가 어디 없나요?

그 때 한 명이 떠오른다. 발달장애인 카페에서 엄마들 몇 명이 상담을 하러 간다고 약속을 정하던 일이 생각난다. 차승훈 엄마 박미영씨. 자폐 1급의 중증 장애인 승훈군을 멋쟁이 바리스타로 키워낸 당찬 엄마다. 지난 3월에는 승훈군의 이야기를 다룬 ‘마음의 속도’라는 책도 냈다. 그녀 역시 일반 학교에 승훈군을 보냈었다. 온갖 일을 다 겪었을 터였다.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 마침 그녀는 서울의 한 특수지원센터에서 장애인 엄마들을 대상으로 상담도 진행하고 있었다. 25년 동안 장애인 아들을 키워낸 엄마에게 9살 된 장애인 아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가 조언을 구하고 싶었다. 그러면 뭔가 이 답답한 마음이 가시지 않을까?

만날 약속을 정하고 당일이 되어 카페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문을 열고 들어와 나를 찾는 그녀. 첫인상. 화사한 꽃 같다. 예쁜 생김새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잘 꾸민 화장과 헤어스타일, 옷차림까지.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지치고 힘든 장애 아이 엄마의 모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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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을 나누기에 앞서 여담으로 외모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여자들이 만나면 흔히 그러듯이. 승훈 엄마가 가슴이 뜨끔한 이야기를 꺼낸다. 주변에 있는 일반 엄마들이 승훈 엄마를 만나다 다른 장애 아이 엄마를 만나면 그 우울한 모습에 숨이 콱 막힌다고 한단다.

그래. 모두다는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우리는 그랬다. 보통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도 육아가 힘들다고 앓는 소리를 하는데 장애 아이를 키우는 수많은 우리들은 언제나 피곤한 육신과 더 피곤한 정신을 부둥켜안고 사느라 스스로의 외모를 가꾸는 데 소홀했다.

나도 마찬가지. 화장이라곤 입술에 틴트 하나 바르고 끝. 그 흔한 로션 하나 안 바르고 다니는 꼴이라니. 승훈 엄마는 그러지 말라고 했다. 비장애인 아이의 엄마들이 먼저 다가오게 만들어야 한다고. 솔직히 아쉬운 건 우리지, 그네들이 뭐가 아쉽겠냐고. 맞는 말이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나갈 사회는 장애인들만 모여 사는 ‘장애인 월드’가 아니기에, 일반인 사회에 섞여 살려면 그들의 도움이 절실하기에, 우리가 먼저 다가가야만 한다고.

그러면서 자존심은 내려놓고 자존감을 키우라고 조언한다. 내 아이가 1%라도 발전할 수 있다면 엄마의 자존심 따위는 아무 상관도 없다고. 대신 스스로의 자존감을 키우면 얼마든지 인생을 당당히 살 수 있다고.

엄마의 자존감을 키우는 방법으로는 장애 아이에게 매너를 가르치라고 한다. 내 아이가 남에게 피해를 안 주고 살면 엄마가 굽히고 살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그래. 내가 아들 반 엄마들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승훈군이 대단한 게 이 때문이다. 바리스타로 일하는 승훈군은 혼자서 지하철을 이용해 출퇴근하고, 커피를 내리고, 손님들과 대화를 한다. 비장애인 친구들과 맛난 것도 먹으러 다니고, 마트에 가 장도 본다. 못갈 데도 없고, 못할 일도 없다.

남에게 피해를 주기는커녕 오히려 인기도 많고 주변에서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다. 장애 정도가 덜하기 때문이냐고? 노노. 자폐 1급의 승훈군 역시 우리 아들처럼 9살까지 말 한마디 못했다. 10살 때 처음으로 ‘불’이라는 단어를 말했고, 13살이 되어서야 엄마와 눈 맞춤을 하는 데 성공했다. 각종 부적응 행동, 문제 행동은 말할 것도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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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승훈군의 현재 상태를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단다. 기적이나 마찬가지라고. 비결이 뭔지 궁금해진다. 어떤 치료들을 받았는지도. 의외의 얘기를 꺼내는 그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모든 치료를 중단했단다. 대신 집에서 승훈군을 열심히 부려(?) 먹었단다.

엄마가 칼국수를 만들면 밀가루 반죽하는 걸 돕게 했고, 청소를 하면 거들게 했으며, 집 앞 슈퍼에 가서 엄마 심부름하는 연습을 매일같이 시켰단다. 일주일에 3~4번 언어치료실에 가서 30~40분씩 수업받고 오는 대신 말 한 마디 못하는 아이를 앞에 두고 ‘미친년’마냥 온종일 말을 시켰단다.

무엇보다 아이에게 매너를 가르쳤단다. 수천수만 번의 반복 또 반복. 일반인들의 사회 안에서 섞여 살려면, 사랑받지는 못해도 최소한 미움 받고 살지 않으려면, 장애인이라고 일방적인 배려를 받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다 보니 승훈군은 주변 사람들에게 먼저 안부를 묻고, 고마운 이들에게 작은 선물을 하고, 어려운 친구가 있으면 도와주려 손을 내미는, 남을 배려하는 장애인 청년으로 자랐다. 타인의 감정에 무관심한 자폐증, 그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었다.

승훈 엄마는 말한다. 장애인 자식을 사회 안에 흡수되도록 키워내는 데 가장 중요한 건 매너와 인성과 배려라고. 그건 치료실이 아닌 가정 안에서 부모가 가르쳐야 하는 몫이라고. 중증의 장애를 경증으로 만드는 것도, 경증의 장애를 중증으로 만드는 것도 결국 부모의 몫이라고. 아이가 가진 ‘나쁜 습관’을 장애에서 오는 일반적 증상으로 보고 내버려두면 그 아이는 끝내 일반인들의 사회 안에 받아들여질 수가 없다고.

다만 우리 아이들은 행동 하나를 가르치는 데도 몇 년씩 걸리니 인내력 있게, 일관성 있는 태도로 먼 미래를 보고 가야 한다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아이는 이 사회에서 쓸모가 있는 성인으로 자라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내 아이가 남에게 피해를 안 주게 되면 엄마의 자존감은 알아서 높아질 거라고.

음.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고 새겨들을 말이다. 아들을 키우면서 ‘매너’를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그저 남에게 피해를 덜 주기 위한 방안을 고심만 했지 한발 더 나아가 남을 배려하는 방법을 가르쳐야겠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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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로서의 책임감이 더 무거워졌지만 앞으로 가야 할 방향성은 확실하게 잡힌 것 같다. 영화 ‘킹스맨’으로 유명해진 대사.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 그건 장애인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그리고 매너를 갖추게 되면서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은 장애인 청년의 이야기가 바로 주변에 있었다.

이제 가야 할 길이 선명하다. 비록 당장에 작아진 마음을 추스르는 마법 같은 묘약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어차피 ‘동환이 엄마’로서 부딪혀야 하는 일들은 내 스스로가 헤쳐 나갈 수밖에 없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스스로를 “매너 있는 남자 김동환입니다”이라고 소개할 수 있는 그 날을 꿈꾸며. 오늘부터 시작이다. 집 안에서 부려먹기부터 시작이다. 당장 밥 먹고 나면 그릇 치우기부터 시켜야겠다. 엄마를 도와주는, 엄마에 대한 배려부터 가르쳐야겠다. 기대해 아들~. 좋은 날은 다 갔어. 훗날 다가올 더 좋은 날을 위해 오늘부터 한번 바뀌어 보자꾸나.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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