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사연: 산책
두번째 사연: 산책
2017.04.07 17:30 by 오휘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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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공원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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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늘 글 잘 읽고 있어요. 말주변도, 글솜씨도 없지만 늘 선물 받는 기분으로 글을 읽는 거 같아서 저도 작은 선물을 하고 싶네요.

저는요, 항상 노래를 들으면서 산책하고 있어요. 신기하게도 영화의 그것처럼, 정말 노래와 함께 걷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모든 장면이 뮤직비디오처럼 보이거든요.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그렇게 느낄 거예요. 작고 사소했던 것들이 커다랗게 다가와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

산책을 하게 되는 동기도 여러 가지인 거 같아요. 하루는 벚꽃이 너무 예뻐서였고 어떤 날은 운동을 핑계로 빙글빙글 걷기도 했어요. 너무 더운 여름날엔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갔다가 얼굴이랑 팔다리를 스치는 바람을 계속 느끼고 싶어서, 나무막대의 단물이 다 빠질 때까지 걷기도 했어요. 이번 달에는 너무 예쁘고 저한테 꼭 맞는 원피스를 찾아버리는 바람에 사무실까지 계속 걸어 다니고 있어요!

산책을 하면서는 주로 햇살을 봐요. 가로수나 꽃, 고양이 자동차는 휙 지나쳐버리고 시야에서 금방 사라져버리잖아요. 그런데 햇살은 걷고 또 걸어도 계속 볼 수 있으니까요. 음, 그 햇살이 머무는 자리를 본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까요? 반짝거리고 그림자가 지고 투명하게 비치는 많은 것들을 보는 게 제일 좋아서 산책을 할 때가 많아요. 해 질 녘보다 한두 시간 이르게 산책을 하게 된다면 제가 사랑하는 햇살이 머무는 자리를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꼭 같은걸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 시간 눈길 가는 대로 쫓아 머무는 그곳이 반짝거릴 때가 최고인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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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보내는 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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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주신 편지 잘 읽었습니다. 보내주신 사연 역시 읽는 내내 앞에 풍경이 펼쳐질 만큼 영화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부럽기도 아주 부러웠어요. ‘과연 나는 주변의 꽃이나 햇살을 음미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운 산책을 한 적이 있었던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나의 산책은 산책이라고 부르기에도 멋쩍은, ‘걷는 행위’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당신이 산책할 때 그러는 것처럼 이어폰을 꽂고 걷긴 하지만, 그것은 단지 주변의 소음들로부터 온전히 독립되기 위한 수단일 뿐이고요. 저는 공원보다는 주로 도심을 걷는 일이 잦습니다. 촌스러운 폰트에, 적당히 색이 빠진 오래된 간판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음식점 앞을 지날 때면 그 안에서 만들어지고 있을 음식들의 맛을 상상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고층 빌딩들로부터 반사되어 꽂히는 햇빛들을 좋아합니다. 수없이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각양각색 옷차림, 수억의 사연이 깃들어 있을 표정들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나아가 그것들로부터 여러 캐릭터를 만들고 그 캐릭터들로 여러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쩌면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직업병일 수도 있겠지만요.

그렇지만 저는 그런 ‘산책 비슷한 걸음’을 통해 매번 얻는 것이 많습니다. 글과 관련된 소재라거나, 오래도록 풀리지 않았던 고민거리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 같은 것을요. 가끔은 지친 마음을 도시의 여러 표정들이 쓰다듬어주기도 합니다. 그렇게 걷다 집으로 돌아오면 다시 무언가를 해나갈 수 있는 원동력 같은 걸 얻게 되는 거예요. 산책이라는 것의 사전적 정의가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서 천천히 걷는 일’인 것을 감안하면, 그리고 일을 계속해나가는 데에 있어서 도심을 걷는 행위가 원동력을 준다면, 어쩌면 제가 걷는 행위 역시 ‘산책’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가끔은 아무리 해야 할 일이 쌓여 있어도, 바깥의 날씨가 좋지 않아도 무작정 나가고 싶은 마음부터 불쑥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내 몸과 마음이 바깥으로 나갈 수 있도록, 스스로를 풀어주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 충동적인 마음이 치민다는 건, 자신도 모르게 몸이나 마음 어느 한구석이 바깥의 공기, 바깥의 것들을 보는 것을 간절하게 원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바깥의 것들을 마음껏 즐기고 들어오면, 쌓여있던 일을 후딱 해치워버릴 힘이 솟아난다거나, 하다못해 약간의 행복한 마음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내일은 낮부터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중요한 계약 관련한 만남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도 내일만큼은 조금 더 일찍 밖으로 나가, 이른 시간의 산책을 해볼까 합니다. 햇살을 관찰하며 걸어볼까 합니다. 당신이 편지로 알려주신 것처럼요. 나무막대의 단물이 다 빠질 때까지 아이스크림을 물고 걷는 것도 좋겠습니다, 새까만 정장을 입고 산책을 할지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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