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배다리에서 송도국제도시까지
인천 배다리에서 송도국제도시까지
인천 배다리에서 송도국제도시까지
2017.05.15 11:36 by 스타트業캠퍼스

숨 가쁘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잠시 멈춰 과거와 미래의 이야기와 풍경을 품고 있는 공간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시간이 멈춘 곳과 시간이 앞서나가는 곳. 이 두 개의 시간이 공존하는 곳이 있으니, 바로 인천입니다. 1960~70년대의 풍경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배다리마을과 찬란한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송도국제도시. 이 둘의 물리적 거리는 10㎞밖에 되지 않지만, 시간적 거리는 50년 이상 차이가 납니다.

배다리마을에 머물러 있으면 절로 옛 기억에 사로잡혀 발걸음도 느려집니다. 문 닫은 가게들은 이미 낡을 대로 낡아 영원히 열리지 않은 빗장처럼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틈에는 잿더미 속 작은 불씨처럼 꺼지지 않고 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송도국제도시는 동북아 비즈니스 허브로 발돋움하기 위해 2003년부터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도시입니다. 인천 바다를 매립해 간척지로 개발한 국제업무도시 안에는 하루하루 바쁜 일상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차가울 것만 같은 은빛 도시에 평화로움이 깔려있으니 반전의 매력을 가진 곳이기도 합니다.

지하철 1호선 동인천역과 도원역 사이에 위치한 인천 동구 금창동 일대를 배다리마을이라 부릅니다. 너도나도 “빨리빨리!”를 외치고 있는 주변의 경제자유구역과 세계적인 규모의 인천국제공항, 그 사이에 1960~70년대 시간이 멈춰있는 곳이지요.

배다리마을의 역사는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금은 배가 들어서지 않지만 배다리는 배가 닿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1883년 인천항 개항 이후 배가 오고 갔던 활발한 바닷가 마을이었습니다. 제물포 지역에 일본인들이 들어오면서 쫓겨난 조선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1910년대에 우리나라 최초의 성냥공장 조선인촌주식회사가 있었으며, 1960년대 헌책방 거리에는 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배다리마을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갈대처럼 휘어지지 않고 버티고 있습니다.

쓸쓸하고도 찬란한 배다리 헌책방 거리

62년을 지켜온 한미서점의 노란색 간판이 거리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동인천역에서 나와 배다리 삼거리까지 걸어가는 길은 시간이 멈춰있는 도시처럼 서늘한 기운을 품고 있었습니다. 첫 목적지인 배다리 헌책방 거리에 도착했습니다. 해방 이후 일본인들이 버리고 간 책과 전쟁으로 유출된 책들이 중고로 쏟아져 나오면서 만들어진 거리입니다. 비까지 내리니 가뜩이나 회색빛으로 보이는 동네가 더욱더 움츠러드는 듯합니다. 빛바랜 헌책방 거리를 걷다 노란색 간판의 ‘한미서점’이 유독 눈에 띕니다. ‘우리는 아직 건재하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듯, 가게는 생기가 넘칩니다.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장소로 인기를 끌어서인지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1955년에 탄생한 한미서점은 젊은 주인을 만나 예쁘게 단장했고, 소소한 동네 클래스도 활발하게 열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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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아벨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있는 손님 (아래) 그 시절 추억을 소환하는 문제집

한미서점 옆, 아벨서점엔 무수한 책들이 첩첩이 쌓여있습니다. 헌책만 있을 줄 알았던 서점 안엔 반듯하고 깨끗한 책도 보였습니다. 뜯지도 않은 만화 <슬램덩크> 일본판 전권은 당장에라도 손에 넣고 싶습니다. 아벨서점에서만 20여 년을 일하고 있다는 직원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처음 일할 때만 해도 새 책은 물론 헌책도 정말 귀했어요. 가난한 학생들이 알음알음 찾아오면서 헌책방이 붐볐고, 이 일대를 어슬렁거렸죠. 소위 말하는 ‘논다’는 친구들이 모이는 곳이었어요. 그때만 해도 40개의 서점이 줄지어 있었는데 지금은 4개만 남아있어요.”

개발의 흐름을 타면서 주민들은 주안과 부평, 연수, 송도 등으로 옮겨갔습니다. 지나가시던 할아버지도 한마디 거듭니다. “여기가 안 지켜지면 사람들 마음 둘 곳이 없어. 사라지면 안 되는 곳이여. 요즘 젊은이들은 물건에 애착이 없어도 너무 없어, 안타깝지.”

낡은 동네에 남아있는 작은 생기

빨간 벽돌이 인상 깊은 100여 년 된 창영초등학교

헌책방 거리를 지나면 인천 최초의 국립보통학교인 창영초등학교를 만납니다. 100년이 넘은 건물이 단아하고도 우뚝하게 서 있습니다. 이제 막 꽃을 틔운 목련과 벚꽃이 붉은 벽돌의 건물을 화사하게 물들입니다. 아치형 창문과 삐거덕거리는 미닫이문이 과거의 흔적을 말해줍니다. 창영초등학교는 인천의 3·1 운동 시발점이기도 했습니다. 현재 학생들은 새로 지어진 건물에서 수업받고 있고, 본교는 곧 박물관으로 바뀔 예정입니다. 학교 정문 옆에는 메이저리거 류현진이 졸업한 초등학교라는 현수막이 크게 걸려있습니다. 그 옆 간이 초소에 백발을 한 할아버지께서 텅 빈 학교를 지키고 계셨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개발지역으로 이사 가면서 이 근처엔 나 같은 늙은이밖에 없어요. 아, 다문화 가정 아이들도 많아졌지요. 예전엔 부촌이라 누구나 창영초등학교를 다니고 싶어 했는데… 그게 변했지요. 그게 아쉬운 게지.”

이제는 조손가정과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남아 학교에 작은 생기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배다리마을 곳곳에는 철거된 건물들과 함께 다양한 벽화들이 있습니다. 철길 어울림 갤러리 초록 철망에는 손바닥만한 타일에 그려진 그림들이 붙어 있습니다. 2007년부터 모여든 문화예술인들이 배다리 역사문화마을로 바꿔놓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몇 년 전 잠시 불었던 활기는 사그라졌지만 이들의 노력으로 마을엔 작은 온기가 남아있습니다.

여행자를 반기고 있는 듯한 양철 로봇, 문화 공간 스페이스 빔

근처를 걷다 배다리 마을의 명소인 문화 공간, 스페이스 빔의 깡통로봇을 발견합니다. 스페이스 빔을 들어가니 그윽한 술 향기가 나는 듯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쌀 막걸리를 만들던 소성주의 공장이었던 곳입니다. 바로 옆에는 나눔 가게가 자리하는데 자유롭게 물건을 가져가고, 두고 떠날 수 있습니다. 메모지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따듯한 공간입니다. 오래된 시간 속을 거닐다 보니 괜스레 미안해집니다. 자주 찾지 않아서, 자주 들여다보지 않아서 생기는 마음입니다. 많은 상가들이 활기를 잃고 헌책방 거리도 찾는 이가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다행인 건, 곳곳에서 발견한 따스한 정이 마을을 지킬 힘이 되어준다는 것입니다.

미래의 도시 속, 여유를 느끼다 <송도국제도시>

고층빌딩과 녹지가 잘 어우러져 있는 송도국제도시

배다리에서 송도국제도시로 차를 타고 가는 시간은 고작 30분입니다. 송도국제교를 넘어가는 순간 50여 년의 시간을 훌쩍 넘은 듯 도로변 주위로 초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빽빽해집니다. 다리 하나 사이로 분위기는 극과 극, 지금은 미래의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송도의 원래 지명은 옥련(玉蓮)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부터 송도로 불리기 시작했는데 동학농민운동 이후 인천항을 수시로 드나들었던 일본 군함 '마쓰시마(松島의 훈독)호'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일본의 영향이 이곳의 지명까지 바꾼 것입니다. 2003년부터 인천광역시 연수구와 남동구 앞바다를 매립해 도시를 개발했고, 매립하지 않은 바다 사이는 다리로 연결해 인공섬이 되었습니다.

송도국제도시로 들어와 도심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G-타워로 향했습니다. 송도의 랜드마크인 G-타워는 센트럴 파크에 위치한 공공 청사 건물입니다. 녹색기후기금 사무국을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들이 입주해있는데 이날 콘퍼런스 홀에서는 공적개발원조(ODA) 포럼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33층에는 인천경제자유구역 홍보관이 있어 송도의 개발 배경과 역사를 훑어볼 수 있습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송도의 모습은 서울에서도 볼 수 없었던 화려한 빌딩들이 촘촘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좌) 센트럴 파크의 수로 (우) 센트럴 파크에서의 조깅하는 주민들

G-타워를 나와 근처 센트럴 파크 산책에 나섰습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바닷물을 끌어와 만든 센트럴 파크는 미래의 공원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1급수를 유지해 숭어와 우럭, 꽃게 등 바다 생물이 살고 있는 깨끗한 물이 365일 흐르는 곳입니다. 사슴농장에서는 말린 고구마와 당근을 주는 어린이, 토끼섬에서는 수상보트를 타는 커플 등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전, 고층 빌딩에서 느껴졌던 도시의 삭막함보다 숲이 주는 여유와 안정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반려견과 함께 산책 나온 30대 젊은 여성은 평일인데도 느긋해 보였습니다.

“이사 온 지 2년이 되어 가는데 일상 속 여행의 기분이에요. 반짝이는 빌딩숲 가운데 초록 이 무성한 숲이 있으니 마음에 여유가 생겨요. 빡빡한 서울에서는 느낄 수 없죠.”

트라이볼과 고층빌딩의 환상적인 야경

센트럴 파크 옆에는 세계 최초 역쉘 구조의 건축물인 트라이볼이 자리합니다. 마치 우주선 이 착륙한 듯, 송도국제도시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건축물입니다. 차가워 보이지만 건물의 중심인 원형 무대 공연장은 따뜻한 나뭇결의 자작나무 패널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또 다채로운 색으로 빛나는 야경은 우주에 은하수가 떠 있는 듯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은빛 도시에도 따사로움이 내리쬐는 이곳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미래의 도시가 있는 듯합니다. 하루 만에 훌쩍 다녀온 인천으로의 시간여행은 각박한 도심 속, 시공을 뛰어넘는 특별한 여정이었습니다.

/글: 김강환·박경원·정용수 사진: 박기태·사나 영상: 박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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