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메르, 유력한 최초의 파라오 후보 #1
나르메르, 유력한 최초의 파라오 후보 #1
2017.04.11 16:26 by 곽민수

나르메르(Narmer)는 지난 회에서 이야기했던 전갈왕의 계승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인물로, 최초의 파라오 후보들 가운데 한 명입니다. 그의 정확한 정체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지만, 일단 정설은 지난 회에서 언급한 메네스와 동일인물이자 이집트를 최초로 통일한 파라오로 보는 것입니다.

신원불명의 두상이지만 ‘이집트 고고학의 아버지’ 플린더스 페트리는 이 두상을 ‘나르메르의 두상’이라고 불렀습니다. 현재는 페트리의 이름을 딴 런던대학교 페트리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 중입니다.

정체는 불분명하지만, 그의 역사적 실체는 고고학적으로 완전히 증명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그의 이름이 쓰여진 유물은 이집트 전역에서 수십 개가 넘게 발견되었으며, 심지어는 오늘날의 이스라엘과 시리아 지역에서도 다수 확인됩니다. 선왕조 시대부터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지역 간에 문화적 교류가 활발했던 것을 고려한다면 이는 아주 놀랄만한 일은 아닙니다.

나르메르의 역사적 실재를 증명해주는 유물들 가운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르메르 팔레트’라고 불리는 편암 석판입니다. 높이는 대략 64센티미터, 너비는 42센티미터 정도가 되는 꽤 커다란 사이즈이지요. 제임스 퀴벨에 의해 1898년에 히에라콘폴리스에서 발견된 이 석판 진품은 현재는 이집트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에서 소장 중이지만, 잘 만들어진 레플리카는 카이로 이외의 장소에서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 팔레트에는 이집트 통일의 역사적 정황을 유추해볼 수 있는 상징들이 묘사되어 있을뿐더러, 이후 수천 년간 이어질 ‘고대 이집트스러운’ 모티브들이 아주 초기 모습으로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여기에 쓰여진 나르메르의 이름은 신성문자(Hieroglyphs)의 초창기 형태이며, 팔레트에 묘사된 파라오는 이후 시대에도 계속 사용되는 적색-백색 왕관을 쓰고 있고, 가짜 턱수염을 턱에 달고 있습니다.

원래 이런 종류의 ‘팔레트’라고 불리는 석판들은 선왕조 시대부터 화장에 사용되는 암석 안료를 갈기 위한 판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나르메르 팔레트의 경우에는 일단 그 규모가 실제로 사용되기에는 너무 크고, 석판 위에 장식된 부조들도 지나치게 정교하기 때문에 어떤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용도나 신전 등에 봉헌하기 위한 제물로 만들어졌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물론 제사 같은 의례가 행해질 때에는 실제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유물에서 사용흔이 확인되었다는 연구는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나르메르 팔레트.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 소장.

팔레트는 양면에 모두 정교한 양각 부조가 새겨져 있는데, 먼저 팔레트의 앞면부터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앞면-뒷면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여기에서는 편의상 상이집트 파라오가 묘사되어 있는 부분을 앞면이라 부르겠습니다. 이 앞면의 주제는 ‘적을 퇴치하는 상이집트의 파라오’입니다. 팔레트의 가장 상단에는 한 쌍의 암소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 암소들은 고대 이집트 초창기 시절 널리 숭배되던 바트(Bat)라는 여신입니다. 뒷면에도 한 쌍의 암소가 동일한 모습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총 4개가 새겨진 이 암소는 디테일한 부분에서 후대의 모티브들과 조금 차이는 있지만, 훗날 이집트 전역에서 가장 널리 신앙이 대상이 되는 하토르(Hathor) 여신의 모습과 분명히 아주 닮아 있습니다. 예컨대 암소의 귀를 보시면, 1500년도 더 이후의 하토르 여신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말이 쉬워서 1500년이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2017년으로부터 1500년 전이라고 하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도 더 전입니다. 그만큼 고대 이집트 문명은 문화적으로 변화가 적은, 매우 보수적인 문명이었습니다. 이 한 쌍의 암소 사이에는 사각형 틀 안에 메기와 끌 모양의 글자가 새겨져 있고, 그 바로 밑에는 ‘왕국 정면 모습’이 덧붙여져 있습니다. 바로 이 메기와 끌이 나르메르 (Nar-Mer)의 이름입니다. 이름과 왕궁 정면 모습이 함께 그려지는 이 모티브는 이 시기 직후 ‘세레크 (Serekh)’라고 불리는 왕명을 쓰는 형식으로 체계화됩니다.

나르메르 팔레트의 앞면
신왕국 시대 하트셉수트의 데이르 엘-바흐리 신전 기둥에 장식된 하토르 여신
1왕조 시대 파라오 제트(Djet)의 세레크. 기원전 2980년 경.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 나르메르 팔레트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회에서도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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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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