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사연: 가장 좋아하는 곳
네 번째 사연: 가장 좋아하는 곳
2017.04.19 16:46 by 오휘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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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달산 주변에서 날아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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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저에게 추억이 있는, 좋아하는 장소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팔달산이라고 말할 것 같아요.

저는 어릴 적에 팔달산 밑에 있는 주택가에 살았어요. 학교에서 봄 소풍을 갈 때, 그림 그리기를 하거나 가족들과 꽃놀이를 할 때면 늘 팔달산을 올랐던 기억이 나요. 그만큼 그곳은 저에게 익숙하고 언제든 지나다닐 수 있는 장소였어요.

사춘기 땐 그곳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도서관을 김밥 한 줄 들고 다녔던 기억도 나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곳은 나의 성장기를 전부 감싸고 있는 장소인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고등학교에 다니며 팔달산 정상을 더욱 깊게 사랑하게 된 것 같아요. 방과 후면 종종 진미통닭(팔달문 통닭 거리에 있는 유명한 맛집이에요)에서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을 사 들고 남문 뒷길을 통해 팔달산에 올라갔었어요. 그 위에서 야경을 보며 먹는 치킨은 정말 꿀맛이거든요. 치킨을 다 먹고는 나름 운동을 한다며 팔달산 정상으로 향했는데(산책이라 쓰고 등반이라고 읽는!), 수원에 이런 곳도 있었냐며, 아름다운 야경에 감탄했었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그 공간의 정상은 더 멋졌어요. 제대로 마주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죠. 아래로 보이는 넓게 펼쳐진 화성행궁과 그곳을 둘러싼 성곽의 조명,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주택가의 빛들이 내 마음에 콱 박혀버린 거예요. 그 이후 저는 그곳을 친구 또는 연인과 산책 겸 힐링을 하기 위한 최고의 장소로 꼽게 되었어요. 미래에 대한 고민도 나누고, 웃기도 많이 웃고, 사랑도 하고, 이별도 했었던! 그래서 저는 그곳을 안 좋았던 추억들도 전부 좋게 만들어주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걷기 좋은 날이면 도청을 지나 서장대까지 오르곤 했어요. 정상까지 올라가는 지름길이 내가 가장 예뻤던 날들을 담아 놓은 듯한 느낌을 주거든요. 하지만 최근 이별을 겪은 후엔 그 길을 오른 적이 없네요. 매번 갈 때마다 함께 걸었던 사람들이 늘 생각나기 마련이었지만, 다시 좋은 추억을 되새기러 가봐야겠어요.

올라가는 길의 벚꽃들이 참 예쁜데, 이번 봄엔 바쁘다는 핑계로 보지 못해서 참 아쉬운 마음이네요. 비가 오고 꽃이 지고 나면 푸릇함만 남아있겠죠? 하지만 그 또한 좋을 거예요. 사계절의 나름의 향기가 있고, 해가 뜨고 지는 순간이 아름다운, 벚꽃이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는 내 마음속 추억의 장소! 유일하게 머리가 쉴 수 있는 쉼터라고 생각해요. 마치 어릴 적 약수터에 가는 것 비슷한 기분 말이에요. 언제든 나를 반겨주고 안아주는,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더 사랑하고 추억이 담길 그런 장소이지 않겠냐고 말하고 싶어요. 앞으로 다시 그 순간을 누군가와 함께하게 된다면 더 좋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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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에서 보내는 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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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달산, 그리고 그 주변에 대한 자세하고도 친절한 이야기 잘 읽어보았습니다. 저는 수원 바로 옆의 안산시에 살고 있지만, 팔달산이라는 곳만큼은 조금은 생소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이야기를 듣는 내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그곳이 눈 앞에 펼쳐지듯 생생하게 그려졌습니다. 멋진 편지였습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별다른 목적이 없이 무작정 그곳으로 가보고 싶은 마음마저 생길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도 그런 추억의 장소가 몇 군데 있습니다. 산처럼 크고 넓은 공간은 아니었지만, 제 나름의 추억의 장소로 남은 곳들입니다. 그리고 저도 지금부터 그곳들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까지는 서울시 성북구에서 살았습니다.

유치원을 졸업할 때까지는 종암동 어귀에서 지냈었지만, 사실상 저의 기억들이 지금까지도 온전하게 남아있는 시절은 정릉동에 살았던 나날입니다. 초등학생이었던 저는 정릉의 골목 이곳저곳을 신발이 닳도록 누볐습니다. 매일의 모험 탓에 제 발길이 닿지 않은 골목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골목 곳곳엔 나름의 신비로움이 있었고, 두려움도 있었고, 향기도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어린 날의 장래희망이 한동안은 모험가였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릉의 골목들은 제 어린 날 두근거림의 전부였습니다.

중학생 무렵, 부모님 사업상의 이유로 우리 가족은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 안산시에 새로 자리 잡게 됐습니다. 멋진 도시였습니다. 빽빽한 빌딩들로 하늘을 보는 것이 참 어려웠던 서울과는 다른 매력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숲과 공원과 건물들이 적당히 어우러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곳에서도 저만의 멋진 장소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용신 2교’라는 다리였습니다. 말씀해주신 팔달산과 같이 웅장한 장소는 아니었습니다, 가끔씩 차 몇 대만이 오가는 2차선 고가다리 위였으니까요. 사람이 좀처럼 다니지 않아 쓰레기가 굴러다니기도 하고, 가끔은 통로마다 거미줄이 쳐져 있기도 한 곳이었습니다. 아래로는 산책로가 있었고,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면 동네 주민들이 산책하는 모습을 구경할 수도 있는 낮은 다리였습니다.

저는 그 다리 위의 콘크리트 턱에 걸터앉아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간 다리 위는 어두컴컴했지만, 나는 그곳의 작은 조명에 의지해 야경을 즐기곤 했습니다. 주말이면 음료수와 도시락을 싸 들고 그곳을 찾았습니다. 고교 시절 첫사랑의 상대와도 그곳을 찾아 하염없이 서로를 바라보기도 했었습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캔 맥주를 사서 자주 그곳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엔 영원한 건 없다는 말이 있듯, 제가 사랑했던 장소들도 조금씩은 변했습니다.

심적으로 너무도 힘들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글을 한 글자도 쓸 수 없었고, 툭하면 화가 치밀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그때 문득 어릴 적의 정릉이 떠오른 겁니다. 무작정 정릉으로 향했고, 십 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 찾아간 그곳은 제가 아는 정릉이 아니었습니다. 매일같이 누비던 골목도, 튀김 냄새가 폴폴 풍기던 분식집도 온데간데없었습니다. 짙은 상실감을 느꼈습니다.

또한, 그때는 안산의 ‘용신 2교’조차도 좀처럼 찾아가지 않을 때였습니다. 상실감에 몸부림치며 안산으로 돌아오던 길, 저는 용신 2교라도 보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을 서둘렀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먼 곳에서부터 용신 2교의 주변으로 수많은 흙더미가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아, 저 다리마저 허물어지려는 모양이구나.’라는 생각에 서 있는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져 있었고, 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계속해서 걸어나갔습니다.

꾸역꾸역 걸어가 닿은 용신 2교는 다행히 흙더미의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흙더미들은 용신 2교를 허물기 위한 공사용 흙이 아닌, 다리 밑 산책로를 보수하기 위해 깔아둔 것들이었습니다. 저는 그제야 큰 한숨을 내쉴 수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그곳을 이틀에 한 번꼴로 드나들며 가까스로 생활 패턴을 복구시킬 수 있었습니다. 소중했던 곳이 더욱 소중해진 시기였습니다. 스물여덟이 된 오늘날에도 저는 종종 그곳을 찾습니다. 써야 할 원고가 너무도 많아 머릿속이 난장판이 됐을 때, 혹은 관계나 삶에 있어 고민이 있을 때마다 용신 2교는 나름의 방식으로 저를 도와줬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저만의 소중한 장소를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다고 생각해보는 겁니다. 그곳에서 옛날처럼 먹고 마시며, 그리고 대화하며, 저라는 사람의 흔적과 현재를 나누고 싶습니다. 분명 근사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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