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털'한 백만장자 이야기
'털털'한 백만장자 이야기
2017.04.20 17:10 by 정원우

오랜만에 만난 친구 녀석들은 역시 서로를 놀리기 바쁘다. 칭찬을 기대하지도 않았으니, 실망할 것도 없다. 그런데 그 날 들은 한 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너는 털이 많게 생겼다.” 나에게 한 말이다. 그건 어떻게 생긴 거냐고 물어보니 그냥 털이 많게 생겼단다. 할 말을 잃었다.

나는 생긴 것과 다르게(?) 털이 없는 편이다. 면도를 2~3일에 한 번만 해도 될 정도다. 멋있게 수염을 기른 남자를 볼 때면 종종 부럽지만 나는 불가능하다. 나만 부러워하는 건 아닌가 보다. 최근 눈썹을 다듬고, 화장품을 바르며 자신을 꾸미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남성이 늘고 있다.

(출처: shutterstock.com/g-stockstudio)

이들을 마치 동물들이 자신의 몸을 핥아 치장하는 것에 빗대어 ‘그루밍(Grooming)족’이라고 일컫는다. 그리고 화장품, 면도 등의 폭 넓은 관리를 의미하는 그루밍 중, 제모(毛)에 특히 집중하는 ‘트리밍(Trimming)’이라는 새로운 트렌드가 생겨났다.

수염이 언제부터 ‘멋’을 표현하는 매개체가 됐을까? 옛날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수염이 덥수룩하다. 그들은 면도를 하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 면도는 자그마치 2만여 년 전 동굴벽화에도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오래된 행위다. 조개껍데기나 상어 이빨 등으로 면도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집트의 무덤에서는 청동으로 된 면도날도 발견됐다. 당시 청동은 귀한 물건이라, 면도는 높은 신분의 상징이기도 했다.

중요한 자리가 있는 날이면, 면도에 더 신경을 쓴다.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 수염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과거에도 신 앞에 설 때면, 깔끔히 면도를 했다고 한다. 고대 국가의 신도들은 수염을 깎는 행위로 인간의 열등함과 겸손함을 보여 신에 대한 복종을 표현했다.

과거엔 신에게 제사를 올리고, 전쟁에서 수염을 잡히는 일이 없도록 수염을 자르는 것처럼 특수한 상황들에만 면도가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면도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이전까지의 면도날은 예리하지 못했고,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철의 제련 기술이 발달하면서 대중들에게도 면도 문화가 퍼져나갔다.

(출처: shutterstock.com/Ezume Images)

초기에는 시행착오도 있었다. 철의 예리함이 턱에 있는 잔디밭을 말끔히 정리해줬지만, 그 정도가 지나쳤다. 면도를 하다가 베이기 일쑤였던 것이다.

필요가 간절할 때, 발명이 이뤄지는 법. 1895년 미국의 작은 모텔에서의 일이다. 이른 아침, 모텔 직원이 방문을 세차게 두들긴다. 잠이 깬 그는 시계를 보고 흠칫 놀란다. 중요한 고객과의 약속 시간이 다 됐다. 준비하기에는 촉박한 시간. 급하게 씻고, 밤새 자란 수염을 면도하기 시작한다. 마음이 앞선 탓에 날카로운 칼날에 살점을 베이고 만다.. 그깟 면도에 얼굴에 칼 자욱이 생기다니… 그가 안전 면도기를 발명하고자 마음먹은 순간이다.

그의 이름은 킹 캠프 질레트 (King Camp Giilettl).

맞다. 우리가 아는 그 질레트다. 1855년 미국 지방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님을 따라 대도시 시카고로 이사했다. 질레트의 아버지는 시간이 날 때면 창고에서 발명에 몰두했고, 그의 어머니도 새로운 음식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다. 인내하고 노력한 덕분에 아버지의 수입은 점차 올랐고, 어머니는 <백악관 요리법 (Whitehouse Cookbook)>이라는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이 책은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꽤 팔리는 스테디셀러다.

(출처: shutterstock.com/Bborriss.67)

꾸준히 노력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닮아서일까. 질레트도 끈기 하나라면 빠지지 않았다. 안전 면도기를 개발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6년. 인내의 시간을 견뎌냈지만, 성적은 형편없었다. 1901년 12월 2일 특허를 획득한 후, 1902년 대량 생산을 시작했지만, 고작 면도기 51개, 면도날 168개밖에 팔지 못했다.

해결책이 필요했다. 질레트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면도날을 나눠줬다. 이에 편리함을 느낀 사람들은 자연스레 자주 면도날을 교체했고, 1년만에 9만개의 면도기, 1,240만 개의 면도날이 팔렸다.

65억 인구 중 12억명이 질레트 면도기를 사용한다는 말이 있다. (물론 조금은 과장됐겠지만) 그만큼 면도기의 대명사가 됐다는 증거다. 오늘 아침에 면도를 해서 아직은 턱이 보드럽다. 사실 턱을 부비적거릴 애인이 없으니 덥수룩해도 상관없긴 하다. 하지만 만약 사랑으로 가득한 봄날을 보내고 있다면 까칠한 것보다는 부드러운 살결을 맞대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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