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하늘공원을 산책했다. 억새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억새밭 사이를 걷다 보니 솜털 같은 억새 씨앗이 온몸에 우수수 매달렸다. “우리, 눈 맞은 거 같다.” “그러게. 날씨는 이렇게 따뜻한데 말야.” 진눈깨비를 맞은 듯 희끗한 서로를 쳐다보며 우리는 웃었다.
바야흐로 가을이었다. 우리가 결혼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고, 느긋하게 서로 손을 맞잡고 가을공원을 산책하는 지금이 아주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다시 억새밭 사이로. 방향을 가늠할 수 없는 길을 더듬어 걷다 보니, 눈앞에 알록달록 꽃밭이 펼쳐졌다. 코스모스였다.
“오빠, 이거 알아?” 자주색 코스모스 꽃잎 한 장을 똑 따다가 침을 발라 코끝에 붙였다. 우표 같은 꽃잎이 얌전히 붙어 있었다. 나는 후후 바람을 불었다. 코스모스 꽃잎은 부르르 떨렸지만, 떨어질 듯 떨어지지 않았다.
“꽃잎 떨어뜨리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야.”
“지금 네 얼굴, 엄청 웃긴 거 알지?”
남편은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웃자, 꽃잎이 팔랑 떨어졌다.
“이렇게 코스모스 꽃잎 여덟 장을 먼저 떨어뜨리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이런 놀이도 있었어? 난 처음 봐.”
“어떤 할아버지가 가르쳐 줬어. 아주 옛날에.”
다시 코끝에 붙인 코스모스 꽃잎을 후후 불면서 그때를 떠올렸다. 자주색 우표가 붙어 있는 오래된 편지처럼, 나는 그날의 버스정류장으로 떠나가고 있었다.
꿈처럼 아련한 기억이었다. 어렸을 때, 버스정류장에서 혼자 울고 있었다. 어째서 인적 드문 버스정류장에 혼자 서 있었는지, 왜 그곳에서 울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날의 풍경은 여러 번 꾸었던 꿈처럼 꽤 선명해서 그게 정말 있었던 일이구나 실감할 뿐이다.
내 키보다 커다란 그림자가 기다랗게 기울던 어느 가을 저녁이었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었고, 길바닥에는 가벼운 흙먼지가 일었다. 낡은 표지판만 달랑 서 있었던 버스정류장. 그 주변에는 내 키보다 훌쩍 큰 코스모스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꽃들은 느릿한 몸짓으로 바람에 기대어 흔들렸다.
멀리서 분홍빛 하늘이 내려앉고 있었다. 연분홍 코스모스의 색깔과 닮아서 그때의 가을 하늘을 기억할 수 있다.
나는 그곳에서 훌쩍이며 울고 있었다. 마치 나를 빼고 모든 게 완벽한 이 풍경이, 너무 슬퍼 죽겠다는 듯이 서럽게 울고 있었다. 그때 어떤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왔다. “얘, 왜 혼자 울고 있니? 엄마는? 아빠는?”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었다. 너무 많이 울어서 말 대신 딸꾹질이 새어 나왔다. 할아버지의 얼굴은 눈물에 어룽져 잘 보이지도 않았다. 어렴풋이 기억하기로 동화 속 마법사처럼 머리카락이 새하얗고 주름이 많았다. 할아버지는 코스모스 한 송이를 꺾어다 내게 쥐어 주었다.
“재밌는 거 알려줄까?”
할아버지는 코스모스 꽃잎을 한 장 떼어다 날름 침을 바르더니 코끝에 붙였다.
“애기야, 너도 한 번 해봐.”
나도 할아버지를 따라서 꽃잎을 한 장 떼어다 침을 발랐다. 그리고 코끝에 붙였다.
“그리고 이렇게 후후 부는 거야. 꽃잎을 먼저 떨어뜨리는 사람이 이기는 거다.”
할아버지는 코스모스 꽃잎을 후후 불었다. 꽃잎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나도 후후 바람을 불었다. 코끝이 간지러웠다. 어느새 배시시 웃고 있었다. 우리는 코스모스의 꽃잎이 모두 떨어질 때까지 여덟 번이나 이 놀이를 했다. 그 후의 일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 장면만, 그저 마법처럼 신기하고도 행복한 이 장면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어른이 된 후에, 김창완 아저씨가 부르는 ‘너의 의미’를 들으며 나는 이 장면을 떠올렸다. ‘슬픔은 간이역에 코스모스로 피고 스쳐 불어온 넌 향긋한 바람.’
슬픔이 버스정류장에 코스모스로 피었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그때 코스모스 꽃잎 한 장으로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줬던 이름 모를 할아버지, 사실 그 할아버지는 김창완 아저씨가 아니었을까. 호호 할아버지가 된 김창완 아저씨가 미래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잠시 그곳에 들른 건 아니었을까, 하고 상상해 본 적도 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따뜻했던 순간. 아마도 그건, 태어나 처음으로 타인에게 받아 본 위로였다. 그런 시시한 놀이가 위로가 되어봤자 얼마나 되었겠냐고. 하지만 그날의 장면은 이십 년을 훌쩍 넘어서, 미래의 나에게도 위로의 순간으로 남아 있다. 마음이 아픈 날이면 ‘너의 의미’를 들으며 그날을 떠올리는 나에게 말이다.
위로는 반드시 말이 아니라, 어떤 풍경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나에게 위로는 산들산들 흔들리는 코스모스이고, 호호 할아버지의 주름진 웃음이고, 코스모스 색깔의 가을 하늘이고, 김창완 아저씨의 노래이다.
지금도 코스모스를 만나면, 꽃잎을 떼어다 코끝에 붙여본다. 그리고 꽃잎을 후후 불어본다. 코끝이 간지럽고 따뜻하다. 배시시 웃음이 번진다.
“남편, 남편도 한 번 해봐.”
“됐어. 무슨 아저씨가 꽃을 달고 그래.”
“뭐가 어때서? 재밌다니까. 자, 우리 남편은 곱디고운 꽃분홍색으로다가.”
분홍색 코스모스 한 송이를 손에 들고 다가가니 남편은 질색을 하고 달아난다. 남편이 달아난 걸음걸음, 코스모스가 낭창낭창 흔들리고 억새꽃이 사뿐사뿐 눈송이처럼 휘날렸다. 저 멀리 코스모스 빛 하늘이 내려앉고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흔들리는 가을 햇살에 뭉클하게 번져나가는 우리들의 지금 순간이 너무나 좋아서. 너무나 따뜻해서. 나는 울듯이 행복했다.
혼자 울던 어린애는 언제까지고 혼자일 거라 생각했는데. 따뜻한 가을과 사랑하는 사람과 위로의 풍경이 이렇게나 가까이에 펼쳐질 줄은 몰랐다. 옛날에 이름 모를 할아버지가 알려 주셨다. 행복은 코끝에 달려 있다고.
이 콘텐츠는 첫눈출판사에서 출간한 책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의 내용을 재가공한 것입니다. 고수리 작가와 책에 대해 더욱 궁금하신 독자분들은 첫눈출판사 브런치로 방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