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세어라 영도대교!
굳세어라 영도대교!
2017.04.28 03:54 by 이한나

‘부산’이라는 이름 앞엔 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항구도시, 해양도시, 우리나라 제2의 도시… 하지만 이번엔 조금 색다른 수식어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이름하여 ‘피란수도’ 부산. 6.25 전쟁 당시 수많은 피란민이 부산에 모여들었고, 급기야 임시수도가 되기에 이른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국제시장>에서 다룬 이야기기도 하다. 시간은 흘렀지만 부산에서는 여전히 이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영화 <국제시장> 스틸컷.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싶구나 고향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가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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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영도대교, 아니 ‘영도다리’에는 가족의 슬픔이 넘실댔다. 많은 피란민은 “영도다리 밑에서 다시 만나자”라는 약속을 주고받았고, 실제로 이산가족들의 만남이 빈번히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왜 다른 곳이 아닌 영도다리였을까? 그것은 영도다리가 막 지어졌을 당시에도 너무 유명했기 때문이다.

 

| 부산의 명물 영도다리

부산 광복동과 영도를 연결해주는 다리인 영도대교는 1934년, 일제강점기에 처음 만들어졌다. 영도대교는 ‘아시아 최초’의 도개·연륙교였다. 물론 목적은 일본의 보급 및 수송로 구축을 위한 것이었지만, 사람들은 다리가 올려졌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는 신기한 광경을 보기 위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하루에 여섯 번씩 볼 수 있던 이 광경 덕분에 영도대교는 부산의 명물이자 만남의 광장이 되었던 것이다.

1989년에 태어나 5년을 영도에서 살았던 필자는 이 사실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1966년을 끝으로 다리가 열리지 않았던 탓이다. 나중에 지어진 부산대교에 비해 낡고 오래된 다리라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심지어 2003년에는 안전진단 검사에서 위험등급을 받아 철거 위기까지 겪었다. 다행히 2006년, 영도대교는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6호로 지정되었고, 몇 년간의 공사를 통해 새 단장을 마쳤다.

그리고, 2013년부터 그 유명했던 ‘도개행사’가 다시 시작되었다.

 

| 영도대교 도개 행사, 그 현장을 가다

도개행사는 매일 오후 2시에 시작된다. 지하철 1호선 남포역 6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영도대교 앞이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필요보다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성격이 강하다는 것. 다리가 열리는 중에는 당연히 사람도, 차량도 건너갈 수 없게 된다. 도심 한복판에서 일어나는 10분간의 통제와 그로 인한 멈춤. 그 자체로도 꽤 생경한 풍경이다. 처음엔 교통정체 때문에 볼멘소리도 많았지만 이제는 다들 알아서 방법을 찾는 분위기.

2시를 앞둔 시각, 많은 사람들이 이미 다리 밑에서 기다리고 있다. 1950년대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애타는 마음이 넘실대던 이 장소는 이제 깔끔하게 정돈되어 그때의 아픔을 기념하는 상징으로 남았다. 스피커를 통해 끝없이 흘러나오는 ‘굳세어라 금순아’ 등의 옛 음악들이 그 정서를 한껏 고취시킨다. 그래서일까. 형형색색의 등산복을 입은 중년 이상의 단체 관광객들을 유난히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가족·외국인 관광객들도 간간이 보였다.

늘 바다를 보고 사는 사람에게도 낯선 풍경이다.

차량 통제를 알리는 방송이 울리고, 서서히 다리가 허공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한다. 분리가 이루어지는 순간 사람들의 탄성과 카메라 셔터 소리가 커졌다. 교량 상판이 75도 각도로 들어 올려지는데에는 3분이 걸리지 않는다. 하늘 쪽으로 고개를 치켜뜬 저것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차들이 쌩쌩, 사람들이 뚜벅뚜벅 움직이고 있던 바닥이었다는 게 새삼스러울 지경.

다 분리된 다리는 한참을 그 자세로 있는다. 이상하게 계속 멍하니 바라보고 있게 된다. 모두가 가만히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물론 이 신기한 풍경을 배경으로 찍는 셀카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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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와 함께 위쪽으로 들린 가로등.
다리와 함께 위쪽으로 들린 가로등.

몇 분간의 분리를 끝내고 마침내 다시 내려와야 할 시간. 올라갈 때와 마찬가지로 아주 천천히 내려간다. 도개가 완전히 마무리된 후에야 방금 이것이 신기한 광경이었음을 알게 된다. 지금도 그런데 하물며 옛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큰 구경거리였을까. 10분간의 일탈 후, 영도대교는 방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다리 본연의 역할을 수행한다.

어느덧 일상.

 

| 역사와 현재, 그 사이 어딘가

도개행사가 끝난 후 다리 위를 걸어 보면 그 감흥은 배가 된다. 영도대교는 인도가 잘 갖춰져 있고 길이와 높이도 적당해 보행자가 많은 다리다. 거센 바닷바람에 머리카락이 춤을 추는 것만 감수할 수 있다면, 한 번쯤은 걸어봐도 좋다. 바다와 그 위에 부서지는 햇살, 그리고 항구의 풍경을 한눈에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참 ‘부산스러운’ 길이다.

영도대교에서 바라본 바다.

과거는 잊기 쉽다. 하지만 하루 한 번, 이렇게나마 우리 역사의 한순간이 재현된다. 동시에 그 역사는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다. 역사의 한 장면을 차지하고 있는 다리, 그 아래를 바다는 묵묵히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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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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