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붓다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2017.04.25 17:17 by 고요

너무 당연한 소리지만, 붓다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다시 말해 붓다의 유언은 붓다의 제자들에게 아주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붓다의 마지막 순간은 다양한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그 유언은 2500년 전부터 지금까지 쭈욱 붓다의 가르침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대단히 중요했습니다. 그 말인 즉, 지난 2500년동안 요약 정리가 잘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내용이 변형되고 수많은 왜곡이 시도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붓다의 유언인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등불로 삼으라(自燈明法燈明)”라는 말이 아마도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붓다의 유언이 가장 잘 함축된 문장입니다. 말이 간결해서 쉽게 기억되고 그 의미도 대단히 좋을 것 같은 느낌을 팍팍 주는 문장입니다. 반대로, 말이 너무 함축적이라 해석하는 사람 나름대로 의미부여를 하기가 쉽고, 또 그 의미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좋아하는 대로만 해석하기도 쉽습니다.

제 생각에 유언이란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가장 급박한 자기 평가’가 아닌가 합니다. 이건 아마도 붓다의 시대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임종에 가까워서 유언을 남기든, 법적 효력을 확실히 하기 위해 변호사를 앞에 두고 느긋하게 유언을 남기든, 결국은 내가 없어질 세상에 내 의지대로 말을 남기는(遺言) 마지막 기회가 유언 아니겠습니까?

내가 없어질 세상에 내 의지대로 말을 남기는(遺言) 마지막 기회가 유언입니다. 그렇다면 붓다는 왜 '자등명 법등명'이라고 말했을까요.

 

| 붓다가 유언을 남긴 이유

현대 사회에 “누군가가 죽었다, 그런데 유언장을 남겼다”라고 하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뭘까요? 제가 너무 속물이라 그런지, 아니면 일일드라마의 영향력이 너무 강력한 것인지, 저는 유언장 하면 제일 먼저 재산 분배가 떠오릅니다.

4남매 중에 자신을 극진히 모신 막내딸에게 유산의 절반을 남기고, 나머지 절반은 전처와 3형제가 공평하게 나눠가지라는 유언의 내용에 화가 난 검사 출신 큰아들이 배다른 막내 여동생의 출생의 비밀을… 같은 내용조차 뭔가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실제로 민법에서 유언장에 대해 인정하는 법정사항들이 대부분 남겨진 재산에 대한 것이라고 하니, 유언장=유산분배로 해석하는 것도 요즘 세상에 무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재산으로 자신의 삶을 평가하게 되는 현대인들과는 달리, 2500년전 4000km 떨어진 곳에서 살았던 붓다의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가장 급박한 자기 평가’는 “스스로 생각하고, 사실대로 생각하라”는 당부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사실에 입각해서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붓다의 말’이라는 권위에 의지하게 되는 것을 걱정했다는 뜻입니다.

붓다의 마지막 여행을 묘사한 경전들에서 붓다의 유언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보면, 심한 병은 앓고 난 붓다가 자신을 걱정하는 아난다에게 “스님들이 나에게 바라는 것이라도 있습니까?”라고 물어보는 장면 이후부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붓다는 아난다에게 “나는 스님들을 거느린다거나, 스님들이 나의 지도를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무슨 가르침을 내릴 것이 있겠습니까?”라고 말한 후,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의 생각을 따르며 의지해야지, 다른 사람의 말을 따르고 의지하면 안됩니다. 사실에 입각해서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따르며 의지해야지, 사실이 아닌 것을 따르고 의지하면 안됩니다”는 내용의 그 유명한 “자등명 법등명”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 실천 방법에 대해서도 설명했지만, 이 부분은 다음 기회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이 밖에도 붓다가 정말로 숨을 거두기 직전에 남긴 “형성된 것들은 모두 소멸하기 마련이니, 방일하지 말고 깨달음을 얻으라”는 마지막 순간의 유언을 비롯해서 붓다의 유언은 더 많습니다. 하지만 “자등명 법등명”이야말로 과거부터 지금까지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이 인정하는 진정한 붓다의 유언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니 교과서에까지 실리게 된 것이겠지요.

정리하자면, 저는 붓다의 유언을 “남의 말만 믿지 말고 스스로 생각해라! 남의 말이 아니라 사실에 입각해서 생각해라!”로 요약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붓다가 이런 유언을 남기게 된 배경에는 자신이 죽은 후에 붓다의 권위 내지는 유명한 스님의 명성이나 다른 어떤 위신을 이용해서 사람들에게 “이게 진리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올 것을 예상하고 걱정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실제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주변에서도 종교를 막론하고 이런 사례는 수없이 많은 것 같습니다.

기와에 이름을 쓰고 소원이 빌고 수능 만점을 기원하며 끊임없이 불상에 절을 하는 모습은 실제 불교의 모습과는 많이 다릅니다.

 

| 체계적인 불교의 교학 시스템

붓다가 생전에 남긴 가르침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형태의 ‘가르침’이 아니었습니다. 붓다의 가르침을 불교용어로는 대기설법(對機說法, ābhiprāyika)이라고 부르는데, 그냥 경우에 따라, 상황에 맞춘 설명 방식이라는 뜻입니다. 유명한 비유 중에 하나인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떠올리면 될 것 같습니다. 아주 멋진 보름달이 뜬 날, 친구에게 “저것 좀 봐!”라고 하면서 달을 가리켰는데 친구가 달은 안 보고 내 손가락만 보면서 ‘어쩌라고?’하는 표정만 짓는다면? 그 순간 느껴지는 감정이 아마 붓다가 평생 느꼈던 감정 아닐까 싶습니다. 어쨌거나, 손가락으로 달을 가만히 가리키고 있어도 10분만 지나면 달은 그 자리를 지나가고 손가락은 허공을 가리키게 됩니다. 그래서 시간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시 손가락을 펼쳐서 달이 있을 곳을 가리켜야 합니다. 그것이 붓다의 방식이었습니다.

달이 어디 있는지 바로 볼 수 있고, 상대방이 달을 볼 수 있도록 방향을 정확하게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은 그냥 그렇게 하면 됩니다. 그래서 붓다는 40여년간 그렇게 했습니다. 하지만 붓다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은 “붓다가 손가락으로 저 쪽을 가리켰다”는 소문입니다. 그래서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은 붓다의 입멸 후에 그 소문과 정보들을 모아 하나의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 붓다가 사용한 용어들의 개념설명(lākṣaṇika)에 해당하는 아비달마 불교와 다양한 부파들이었고, 그 내용을 꾸준히 발전시키거나 퇴화시킨 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불교입니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르키지만, 시간이 지나면 달은 저멀리 가버리죠. 상황이 변하면, 손가락을 다시 펼쳐야 합니다.

붓다는 남을 믿지 말고 스스로 생각하라는 유언을 남겼고, 그가 생전에 가르친 것들 또한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우리가 불교에 대한 자료를 찾으면서 깜짝 놀라게 되는 대단히 체계적인 불교의 교학 시스템은 사실 붓다가 생전에 가르친 것이 아닙니다.

글을 쓰다 보니, 불교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불교 교리가 체계적이라는 사실에 공감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불교하면 제일 먼저 연상되는 것이 기와에 이름을 쓰고 소원이 달린 연등을 주렁주렁 달고, 수능 만점을 기원하며 끊임없이 불상에 절을 하는 모습이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불교는 굉장히 체계적이고 방대한 교학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현대의 어느 학문 영역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은 학문적 교리 체계를 이미 2,000여년 전에 만들어 놓은 종교가 지금 와서는 오히려 뭔가 원시적인 것 같고, 세련되지 못한 형태의 종교로 보이는 이유.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필자소개
고요

The First 추천 콘텐츠 더보기
  •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1년 사이 가장 주목할만한 초기 스타트업을 꼽는 '혁신의숲 어워즈'가 17일 대장정을 시작했다. 어워즈의 1차 후보 스타트업 30개 사를 전격 공개한 것. ‘혁신의숲 어워즈’...

  •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초개인화의 기치를 내건 스타트업들이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관광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틈새에 대한 혁신적인 시도 돋보였다!

  •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기업의 공간, 자산 관리를 디지털 전환시킬 창업팀!

  •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의 등장!

  •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유망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 맞춤형으로 지원한다!

  • 초록은 동색…“함께 할 때 혁신은 더욱 빨라진다.”
    초록은 동색…“함께 할 때 혁신은 더욱 빨라진다.”

    서로 경쟁하지 않을 때 더욱 경쟁력이 높아지는 아이러니!

  • “글로벌 진출을 위한 교두보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주 베트남 한국상공인연합회와 업무협약 체결
    “글로벌 진출을 위한 교두보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주 베트남 한국상공인연합회와 업무협약 체결

    대한민국 기업의 글로벌 진출을 위해 공동 협력체계를 확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