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잘 다녀왔지 말입니다!
소풍, 잘 다녀왔지 말입니다!
소풍, 잘 다녀왔지 말입니다!
2017.04.25 16:10 by 류승연

봄 소풍을 다녀왔다. 학교에서 맞는 3번째 소풍이다. 마지막 소풍이기도 한 만큼 이번엔 아빠와 엄마까지 모두 따라붙었다. 즐거운 추억만 남겨주기 위해 만발의 준비를 했다.

인터넷 카페를 보니 초등학교에 입학한 장애 아이의 소풍을 어찌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엄마들이 보인다. 장애 아이들이 소풍을 갈 때는 특수교사나 실무사 등이 아이를 맡아 함께 다닌다. 하지만 아이들의 특성 상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엄마들은 첫 소풍을 보내고 나면 가슴이 두근 반 세근 반이다.

01

우리 아들은 어땠냐고? 아~주 대단했다. 담임과 실무사가 두 손 두 발 들만큼 애를 먹었다. 버스에서 내린 담임선생님의 첫 마디는 “이래서는 계속 함께 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물이 문제였다. 우리 아들은 물을 좋아한다. 물 싫어하는 어린이가 어디 있겠냐만은 우리 아들은 유별났다. 장애 아이들은 때론 한 가지에 놀라울 정도의 집착을 보이곤 하는데 우리 아들에겐 그 대상이 물이었다.

모든 종류의 물놀이를 좋아했고, 화장실 욕조에 물이 받아져 있으면 옷을 입은 채로도 들어가 앉아 있곤 했다. 마시는 물도 좋아해서 컵을 숨겨두지 않으면 하루 종일 정수기에서 물을 따라 마신다. 수시로 씽크대와 세면대에 물을 틀어 장난을 치다가 엄마가 출동을 하면 까르르 웃으며 도망 나오기 일쑤다.

그런 아들이 초등학교의 첫 소풍으로 아쿠아리움에 갔다. 사방이 물 천지다. 문제는 모든 물이 유리벽에 가로막혀 있다는 것이다. 대재앙이 따로 없었다. 아들은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물속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게 되자 자리에 주저앉아 떼를 쓰기 시작했다.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저것은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수조이고 사람은 들어갈 수 없다는 걸 금방 이해했을 테지만 아들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눈앞에 내가 좋아하는 물이 있는데 어른들이 물놀이를 못하게 한다. 물속에도 안 들여보내 준다. 그리고 내 손을 붙잡는다. 자꾸 앞으로만 걸어가자고 한다. 나는 물에서 놀고 싶은데 이유도 모른 채 나를 끌고 가려고 하는 어른들에게 반항할 수밖에 없다.

말을 못하니 울음으로 반항한다. 누워서 소리를 지른다. 팔 다리를 마구 휘젓는다. 그럴수록 더욱 조여 오는 어른들의 완력. 더욱 큰 울음으로 반항해 본다. 담임선생님도, 실무사도, 1학년 선생님들도, 아들도 모두가 힘들다. 지친다. 첫 소풍의 기억이었다.

첫 소풍 때 제대로 뿔이 난 아들의 대단한 저력을 확인한 특수교사는 2학기가 되자 엄마가 가을소풍에 함께 갈 것을 제안했다. 엄마는 알기 때문이다. 보통의 아이들과는 다른 인지와 감각을 지닌 내 아이가 어떤 지점에서 난리가 나고, 어떻게 해야 진정이 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해야 싫어하는 걸 피해 가는지 등의 노하우를 잘 알고 있다.

아들 하나에 엄마와 실무사까지 따라간 두 번째 소풍은 대성공이었다. 울기는커녕 소풍 내내 까르르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다.

2학년이 되어 세 번째이자 마지막이 될 소풍을 준비하며 나와 남편은 각오를 달리 했다. 일반 아이들과 함께 가는 마지막 소풍이 될 터였다. 무조건 즐겁게 해주고 오자.

02

기억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에 한 조각이라도 기억에 남는다면 최고의 하루였던 것으로 추억하게 해주자. 이번엔 아빠까지 따라 붙었다. 아들이 걷다 지치면 아빠가 업고라도 가겠다는 각오였다.

동물원을 먼저 갔다가 놀이기구를 타러 갔다. 아들은 아직까지 동물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길에서 숱하게 지나치는 강아지나 비둘기도 아들 눈에는 전봇대나 마찬가지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아들의 상호작용은 어른들만으로 제한돼 있다. 또래의 친구들과도 상호작용이 잘 안 되는데 동물들과 교감을 하려면 아직 한참을 더 커야 한다. 아들의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있다.

반 친구들이 코끼리와 기린을 보며 감탄하고 있을 때 아들은 그 옆 공터에서 뛰어다녔다. 아이들이 오랑우탄을 보며 깔깔댈 동안 아들은 나무로 만든 의자 위를 걸으며 즐거워했다. 그렇게 함께인 듯 함께 아닌 모습으로 아들은 친구들과의 소풍을 즐겼다.

03

점심을 먹고 놀이기구를 타기 시작하자 아들은 더 신이 났다. 놀이기구가 앞으로 뒤로 달리며 배꼽을 간질이는 느낌도 재밌고, 공중에 떠 빙빙 돌 때 느껴지는 바람도 상쾌하다. 놀이동산에서 재미나고 신나는 감각통합 훈련을 받는 셈이다.

아이 하나에 보호자가 셋. 아빠와 엄마와 실무사. 아들도 편했고 보호자도 편했다. 화장실도 돌아가며 갈 수 있었고, 손이 남는 어른들은 반 아이들도 챙길 수 있었다. 돌아가며 아들을 데리고 다녔기에 체력적인 부담도 덜했고, 반 친구들의 사진도 왕창 찍어 엄마들에게 전해줄 수도 있었다.

사실 학교에서는 보호자로 엄마까지만 허용을 했다. 실무사가 따라가기에 보호자는 엄마 한 명으로 제한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빠가 개인적으로 돈을 내고 동물원에 입장하는 것까지 막을 구실은 없었다. 그래서 남편은 혼자서 차를 몰아 소풍장소에 도착, 입장권을 따로 끊고 들어와 합류를 했다.

음. 이럴 때 보면 학교란 조직은 참 융통성이 없기도 하다. 어차피 버스에 자리도 남아돌았는데 그냥 한 번쯤 눈 감아 줘도 됐을 것을.(^^;;)

소풍을 가서 반나절을 함께 다니다보니 실무사는 물론 담임선생님과도 이런저런 대화를 할 시간이 생긴다. 알고 보니 두 분 모두 (우리)아들 때문에 우울감을 겪었다고 한다. 아들의 전학이 결정되고 난 후 너무 가슴이 아파서, 우울한 마음에 한참동안 가슴이 답답했다고.

부모 입장에서는 일반 사회로의 진입에 실패한 것이었지만, 학교 입장에선 아들을 자신들이 껴안는 데 실패한 것이었다. 이는 어느 한 쪽만이 아닌 양쪽 모두에게 상처가 되었다.

부모 입장에선 통합교육의 ‘필요성’이 우선이었지만 학교 입장에선 통합교육의 ‘실효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양 측의 입장 차이는 있었지만 분명한 건 한 가지였다. 아들의 행복이었다. 아들이 행복해지기 위해 전학을 결정했고, 그 결정이 양측 모든 어른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아들은 아마 행복해질 것이다. 그러리라 믿는다.

 

04

버스 안에서 반 친구들 몇몇에게 물었다.

“친구는 그동안 동환이랑 같은 반이어서 어땠어?”

엄마인 나를 의식해서일까? 아니면 아이들의 심성이 착하기 때문일까? 나쁜 점은 하나도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동환이가 웃어서 좋았어요”라고 말한다.

가끔 아들은 일반인들과는 다른, 우리는 생각도 하지 못할 한 가지에 꽂혀서 웃음을 터트릴 때가 있다. 그 머릿속에서 생각의 회로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본인 외에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어쨌든 교실에서도 그런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갑자기 터진 아들의 웃음에 다른 아이들도 따라서 웃음보가 터졌겠지.

또 한 친구는 말한다. “동환이는 귀여워서 좋았어요”. 자기들이 보기에도 아기 같고 동생 같은 친구였던 것이다. 김동환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될 친구는. 분명 교실 뒤에서 떼를 쓰기도 했고, 자리에 앉아 울기도 했을 텐데 아들을 좋게 인식해주고 있는 아이들이 고맙다. 물론 개구쟁이 한 녀석은 “동환이요? 아무 생각도 없어요”라고 시크하게 말한다. 그래. 그것조차도 고맙다. 나쁘게 기억해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놀이동산에서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도 만났다. 아이들은 아들을 발견할 때마다 옆에 와서 “동환아~”그러며 아들의 볼을 쓰다듬고, 손을 한 번씩 만져주고 갔다. 보통의 초등학교 2학년 친구들끼리 만나면 그러지 않는다. 마음이 어린 아들이기에 귀여운 동생 대하듯, 사랑스런 강아지를 대하듯 애정을 보여주고 갔던 것이다.

내 가슴엔 즐거운 추억으로 남은 봄 소풍이었다. 아들도 기억할 수 있다면… 즐거웠길 바란다. 행복했던 추억이길 바란다.

/사진:류승연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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