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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 그룹 리더 vs 걸 그룹 리더
2017. 04. 28 by 박희아

얼마 전에 한 음원 플랫폼 매거진에 보이 그룹 리더와 걸 그룹 리더들을 모아 소개했습니다. 그다지 무겁지 않은 수준으로 이야기를 푼 두 편짜리 기획이었는데요. 가볍게 아이돌 그룹 리더들을 소개하자는 생각으로 시작했고, 한 편에 다 쓰기에는 좀 아쉬운 감이 있어서 편의상 보이 그룹과 걸 그룹으로 나눠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리더 목록을 쭉 정리하면서 꽤 당혹스러움을 느꼈습니다. 보이 그룹 같은 경우에는 또렷이 기억에 남는 리더들이 많았는데, 걸 그룹의 경우에는 리더가 누구인지부터 다소 아리송한 팀들이 많았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보이 그룹에 비해 걸 그룹 리더들의 활약이나 특징을 모으기 어렵다는 점도 의외의 난관이었습니다. 답답해진 저는 다른 관계자분들에게 어려움을 토로했는데, 저와 비슷한 어려움을 느낀 분들이 꽤 있더군요. 새삼스레 그 이유를 찾고 싶었습니다.

아이돌 그룹 리더는 '멤버 - 소속사' 간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출처: 빅히트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

# 나이보다 실력 위주, 바뀌는 리더의 기준

아이돌 그룹에서 리더란 어떤 존재일까요? 보통 아이돌 그룹 리더는 매니저와 가장 가까이에서 소통하면서 팀 멤버들을 모으는 역할을 합니다. 연습시간을 비롯해 다른 스케줄을 함께 챙기는 건 물론이고, 몸 상태가 좋지 않거나 실력이 부진한 멤버가 있으면 실무 담당자들과의 연결 고리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소속사와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상황이라면 앞장서서 멤버들의 생각을 전달하거나, 반대로 회사의 입장을 듣고 멤버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면서 중간자적 입지를 갖습니다. 하지만 팀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대표로 혼이 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까닭에 리더를 맡은 멤버 중에서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이들도 꽤 됩니다.

개성 강한 10대 중후반~20대 멤버들 사이에서 중심 잡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회사와의 연결고리라는 점 때문에 책임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어디서든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잘해야 한다’는 부담을 심하게 느끼더군요. 대신, 자신의 실력이나 리더십이 뛰어나다는 점이 대중에 알려지면 더욱 멋지고 책임감 있는 캐릭터로 어필할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장단점이 뚜렷한 직책입니다.

그렇다면 리더는 누가 맡는 건지 궁금해집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팀을 이끄는 리더는 보통 나이가 가장 많은 멤버가 맡았습니다. 과거에는 ‘리더=맏형’이라는 공식이 당연하게 여겨졌기 때문에 “이 팀의 리더가 누구죠?”라는 질문은 “나이가 가장 많은 멤버가 누구죠?”라는 물음과 같은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동갑이 많은 경우, 생일이 조금이라도 빠른 멤버가 일반적으로 리더 직함을 달았습니다. 성별과 상관없이 대다수가 그런 계산 하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당시의 아이돌 그룹을 기억하는 사람들 중에는 여전히 “리더는 그냥 나이 많은 사람이 맡는 것 같지 않나요?”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또 이렇게 리더를 정하는 경향이 아직 남아있기도 하고요.

97년에 데뷔한 젝스키스의 리더는 가장 나이가 많은 '맏형' 은지원입니다.(출처: 젝스키스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하지만 2000년대 중후반부터는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나이보다는 팀 전체를 프로듀스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인물들에게 리더 자리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현재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팀 리더들 중에는 ‘편의상’ 선택되었다기보다는 회사 측이 뚜렷한 의도 하에 이들을 리더 자리에 앉혔다는 생각이 드는 이가 많습니다. 약 10여 년간 이어져 온 최고령자 리더 시스템이 서서히 바뀌어 지금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아이돌 그룹의 마케팅 포인트가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 음악, 춤 등 ‘실력’으로 주목받는 男 리더들

과거에 비해 ‘실력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멤버가 리더를 맡는 경우가 증가했지만, 그 가운데 세븐틴이나 NCT처럼 두 가지가 혼재하는 독특한 사례도 있습니다. 먼저 음악 실력으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사례입니다. (실제 이들의 실력이 뛰어난지 아닌지에 대한 개개인의 평가는 논외로.) 

2006년 데뷔 빅뱅 리더 G-DRAGON(1988년생) - 맏형 T.O.P(1987년생)
2011년 데뷔 블락비 리더 지코(1992년생) - 맏형 태일(1990년 9월생)
2013년 데뷔 방탄소년단 리더 랩몬스터(1994년생) - 맏형 진(1992년생)
2015년 데뷔 세븐틴 총괄 리더 에스쿱스(1995년생)/보컬팀 리더 우지(1996년생)- 맏형 에스쿱스

해당 그룹 리더들은 뛰어난 리더십을 지니고 있다는 점보다 실력이 좋다는 점으로 먼저 주목받았습니다. 더불어 네 팀을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로 힙합이라는 음악 장르를 꼽을 수 있습니다.

힙합은 작사, 작곡을 포함해 셀프 프로듀싱 능력을 매우 중요한 요소로 꼽는 장르입니다. 해외에서 한 차례 힙합이 크게 유행하던 시기가 지나고, 빅뱅은 그 흐름을 한국 아이돌 씬으로 가져와 본격적으로 ‘힙합 아이돌’이라는 단어를 탄생시켰습니다. 빅뱅을 시작으로 비슷한 흐름이 이어졌죠. 블락비와 방탄소년단, 세븐틴까지 자체 프로듀싱이 가능하다는 점을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로 내세웠습니다. 바로 이 ‘셀프 프로듀싱’의 중심에 리더들이 있습니다. 팀을 대표하는 음악적인 색깔을 확립하는 데에 가장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인정받는 이들이죠.

'블락비의 리더' 지코는 Mnet 힙합 서바이벌<쇼미더머니>의 최연소 심사위원으로 참가하기도 했습니다.(출처: 블락비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음악적으로 재능을 지닌 멤버를 리더로 삼는 경향은 힙합이라는 장르와 거리가 먼 팀에서도 나타납니다. 2011년에 데뷔한 B1A4의 리더는 진영입니다. 진영은 1991년 11월생입니다. 팀내 동갑 멤버로는 6월생 신우가 있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신우가 맏형인 셈인데요. 데뷔 때부터 진영이 B1A4 타이틀곡을 쓰고, 앨범 프로듀싱에 적극 관여하는 등 음악적으로 주된 역할을 맡아왔습니다.

한편 특수한 사례로는 2016년에 데뷔한 NCT가 있습니다. NCT는 여러 가지 유닛으로 그때그때 형태를 달리하는 그룹이고, 이러한 그룹 특성상 과거-현재의 형태를 모두 지니고 있습니다. '소방차(Fire Truck)' 활동 당시, NCT 127 리더는 1994년생인 맏형 태일 대신에 1995년생 태용이 맡았습니다. 태용은 팀 퍼포먼스를 이끄는 센터 멤버입니다. 반면에 NCT DREAM의 경우, 미성년자로만 구성된 그룹이라는 점을 고려해 가장 나이가 많은 마크가 리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DREAM에서 리더를 맡고 있는 마크는 NCT 127에서는 가장 어린 축에 속합니다. 매번 유닛 조합을 달리하는 NCT만의 특성이 반영된 모습이죠.

# 여전히 ‘맏언니’ 중심, 걸 그룹 리더

걸 그룹은 다릅니다. 이러한 변화에서 빗겨나 있습니다. 여전히 ‘맏언니’가 리더를 맡는 경우가 대다수죠. 다른 조건으로 리더를 뽑은 사례가 오히려 특이한 축에 속합니다. 트와이스가 그렇습니다. 리더인 지효는 1997년생으로, 1995년생인 나연보다 두 살 어립니다. 그러나 2014년에 데뷔한 레드벨벳(2015년 데뷔-리더 아이린)부터 여자친구(2015년 데뷔-리더 소원), 오마이걸(2015년 데뷔-리더 효정), 구구단(2016년 데뷔-리더 하나), 프리스틴(2017년 데뷔-리더 나영) 등 최근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대다수 그룹 리더는 여전히 가장 나이가 많은 멤버가 맡고 있습니다. 이토록 뚜렷하게 대조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게 놀라울 정도입니다. 이 확연한 차이 속에 숨은 의미는 무엇일까요.

트와이스처럼 맏언니가 아닌 멤버가 리더가 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출처: JYP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

실제로 저는 보이 그룹 리더 편을 쓸 때 굉장히 수월하게 글을 이어나갔습니다. 오히려 제한된 분량에 누구를 포함시켜야 할지가 고민이 될 정도였어요. 굉장히 많은 숫자의 리더들이 음악적인 부분에서, 혹은 연기나 예능 등에 걸쳐 두드러진 엔터테이너적 역량을 표출하고 있었습니다. 고민 끝에 ▲상대적으로 최근 음반, 연기 등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는 경우 ▲자신이 작사‧작곡하거나 프로듀싱을 맡은 곡이 있는 경우 ▲음악 매거진 특성을 고려해 솔로 곡이 있는 경우로 한정했습니다.

하지만 걸 그룹 리더들을 소개하기 위해 자료를 모을 때는 이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경우를 찾기 힘들었습니다. 음원 플랫폼에 게재되는 만큼 최대한 외모 칭찬을 배제하고, 가수로서 지닌 장점을 부각하려 했으나 쉽지 않았습니다. 좋은 보컬리스트로서 이름을 알린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그 외에 음악적인 영역에서 두각을 보인 멤버들은 오히려 리더가 아닌 경우가 더욱 많더군요.

이쯤 되니 그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똑같은 리더인데 무엇이 다른 걸까?’

한국 사회에서 ‘맏언니’란 어떤 존재일까요. 여기서부터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맏형’과도 다릅니다. 대부분 ‘엄마’의 자리를 대신하거나, 성별을 가리지 않고 동생들을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존재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렇다면 걸 그룹에서 리더를 맡고 있는 멤버들에게 기대되는 역할도 이러한 인식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엄마’, 즉 누군가를 보살피는 것만이 최고의 미덕이라고 여겨지는 모성 신화의 그늘. 거기서 채 벗어나지 못한 듯한 모습을 곳곳에서 관찰할 수 있습니다. 팀 바깥에서는 솔로 음원을 내거나 연기에 도전하기도 하지만, 단체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몇 편 보면 이들이 팀내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쉽게 알게 됩니다. 그들은 팀 내에서만큼은 ‘다정하지만 냉정한 모습이 있는 엄마’, ‘자식들 말에 꼼짝 못하는 엄마’, ‘소녀 같은 엄마’ 같은 정형화된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나이가 중요하지 않아. 실력이지.” 아이돌 씬을 불문하고 나이순, 연차순 권력을 중시했던 ‘구시대적 흐름’에서 벗어나는 일은 한국 사회의 병폐를 없앨 방법 중 하나로 언급되곤 합니다. 하지만 정작 아이돌 산업 안에서는 그런 변화가 여전히 보이 그룹에만 가능한 서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력을 우선으로 하는 최신식 리더 시스템 하에서, 보이 그룹 리더들은 더욱 빛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뛰어난 능력으로 팀원들에게 감흥을 주고, 최전선에서 기수가 되어 싸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듬직하고, 멋지죠. 하지만 걸 그룹 시스템은 여전히 그때 그 시절, 과거 어느 때에 머물러 있습니다.

# 아이돌 그룹, ‘가족 서사’의 연장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보이 그룹 서사에서도 여전히 ‘가족 역할론’이 소비되는 경우가 꽤 많다는 건데요. 다수 리더들은 나머지 멤버들, 또는 팬들에 의해 ‘강한 카리스마로 팀원들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아버지상’이거나 반대로 ‘다정하되 엄한 어머니상’으로 묘사됩니다. 혹은 팀 내에서 ‘아버지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리더를 ‘엄마 같은’ 멤버가 뒷받침해 주는 식으로 멤버들끼리의 관계성이 만들어지기도 하죠. ‘아버지와 엄마 같은 면을 모두 갖춘’ 리더 한 명이 팀을 카리스마 있게 이끌어 가는 모습이 자랑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장점은 많을수록 좋죠. 모든 장점을 고루 갖춘 것은 대단히 멋진 일입니다. 하지만 그 ‘멋짐’의 근거가 ‘아버지’와 ‘엄마’의 고정된 역할론에서부터 출발한다면, 칭찬을 조금 망설이게 되네요.

한국 아이돌 그룹이 성별에 따라 어느 포인트를 부각시켜 소비자를 공략하는지 알 수 있는 단적인 사례들이 보입니다. 보이 그룹의 리더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걸 그룹 리더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뚜렷하게 분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럴 바에는 모든 아이돌 그룹 리더가 ‘맏형’, ‘맏언니’인 게 나은 것 같기도 하네요. 걸 그룹 리더들이 좀 억울할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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