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정치, 그는 누구를 뽑았을까?
붓다의 정치, 그는 누구를 뽑았을까?
2017.05.12 16:17 by 고요

대선이 끝났습니다. 온통 한 군데로만 쏠리던 정신이 이제 좀 제자리로 돌아올 것 같아 참 다행스럽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붓다의 정치관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속세와 아주 거리가 먼 것 같은 불교지만, 막상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첫번째 글에서부터 계속 언급하고 있는 붓다의 마지막 여행을 다룬 경전들 중에 많은 경우가 붓다의 정치적 조언 부분부터 시작합니다. 붓다가 세속적이지 않다고 해서, 세상도 붓다를 그냥 놔 준 건 아니었나 봅니다.

그 내용을 보면 2500년 전 북인도 지역의 강대국 마가다(Magadha)의 왕이 이웃의 부족국가 연합 왓지(Vajji)에 선전포고를 하기 전에 붓다의 의견을 묻기 위해 대신을 보내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강대국의 왕이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어떤 대답이 나올지 뻔한 상황에서 종교 지도자에게 굳이 의견을 물어본다는 것이 재미있지 않습니까?

아마도 당시 인도 사회에서 붓다의 영향력이 강했기 때문에 전쟁 선포 후에 붓다가 적국의 손을 들어준다거나 하는 경우, 여론이 악화될 것을 우려해서 미리 정치적 포석을 깔아둔 게 아닐까 싶은데요. 굳이 비교하자면 과거 유럽 국가들이 전쟁 전에 교황청 눈치를 보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명분과 실리 사이의 어디쯤에서 타협할 것인가가 정치인들의 최대 고민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붓다는 일곱 가지 이유로 전쟁에 반대하고 왓지의 손을 들어줍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단순히 전쟁을 막아야만 하는 입장에서 내놓은 별 의미 없는 편들기가 아닌, 붓다가 생각하는 좋은 나라에 대한 국가관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흥미롭습니다. 그 이유들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왓지의 사람들은 자주 모여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 왓지를 지지한 붓다의 일곱 가지 이유

첫째는 왓지의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자주 모인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앞의 이유와 연결되는데, 왓지의 사람들이 의견을 모아서 모임을 가지거나 해산하며, 마찬가지로 의견을 모아 국가의 일을 진행한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만 봤을 때, 부족국가 연합의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자주 모여 의견을 나누고, 의사결정을 한다는 거. 좀 익숙한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종교 문서의 짧은 기록만으로 단언하기는 좀 무리가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중학교에서 배우던 고대 그리스의 ‘민주정’이 떠오르는 것이 사실입니다. 위 내용을 좀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붓다는 민주주의적 공화정 형태의 제도를 국가가 계속 번영하도록 할 수 있는 수단으로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셋째는 왓지의 사람들이 정당하게 결정되지 않은 사항은 인정하지 않고, 정당하게 결정된 사항은 깨뜨리지 않으며, 정당하게 결정된 후 유지되어 온 국가의 법을 준수한다는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고대 인도의 부족국가 연합에서 고유한 절차에 따른 입법 과정을 가지고 있었고, 그 내용이 붓다의 언급을 통해 불교 경전이 되어 아직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쨌든 붓다가 군주정보다는 공화정을 선호하고, 법치주의를 높게 평가한다는 점은 확실해 보입니다. 이상의 세 가지 이유가 사회제도에 대한 것이었다면, 나머지 네 가지 이유는 사회구성원들의 윤리 의식에 대한 내용을 보여줍니다.

넷째는 왓지의 사람들이 나이 많은 사람을 존중하고, 그들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왓지의 사람들이 여성들을 강압적으로 제약하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여섯째는 왓지의 사람들이 전통 문화와 신앙을 존중하고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일곱째는 왓지의 사람들이 훌륭한 스님들을 보호하고, 초빙하며,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기에 왓지가 계속 번영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넷째부터 일곱째까지의 내용은 해석이 필요 없이 명료한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위에 쓴 내용은 빨리어 경전인 디가니까야(Digha Nikaya)의 마하빠리닙빤나숫따(Mahāparinibbānasuttaṃ)를 참고해서 현대적으로 풀이한 것으로, 한문으로 번역된 경전들과는 내용상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한문 경전의 기록과 빨리어 경전의 기록에 다소 차이가 있는 이유는 바로 번역자의 사회제도 경험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불경’하면 떠올리는 팔만대장경과 같은 한문 경전들은 구마라집, 현장, 법현 스님이 인도의 산스끄리뜨어를 자신들의 언어인 고전 중국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고대 또는 중세시대 중국 문화 속에서 살아온 번역자가 인도의 사회제도에 대한 내용을 번역할 때, 아무래도 자신이 소속된 사회의 제도와 풍습을 벗어난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힘들었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현대에 살아가는 우리만 해도 모계 사회가 아직 유지되고 있는 부족을 발견하면 신기해 하며 다큐멘터리를 촬영할 정도인데, 정보 교류가 쉽지 않았던 중세 이전의 사람들이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사회제도라는 것을 쉽게 납득할 수 있었을까요? 어쨌거나 고대 중국과 고대 인도의 사회제도가 무척 많이 달랐던 것은 확실한 만큼, 저는 인도 사회와 문화적 배경 안에서 꾸준히 사용되었던 빨리어가 고전 중국어보다는 사회전반에 대한 기록에 있어 더 중립성을 유지했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 붓다가 대선 투표를 했다면?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넷째부터 일곱째까지의 나이가 많은 사람의 경험을 존중하고, 여성을 강제로 구속하지 않고, 전통을 존중하고, 지식인 계층을 보호하고 초빙한다는 내용은 사회적 윤리 수준에 대한 내용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야기의 맥락에서는 이 내용 또한 단순히 윤리적인 지침이 아니라 어떤 제도적인 장치가 있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예를 들자면, 노인을 보호하고 사회적 역할을 부여하는 제도와 여성 인권을 어느 정도 보장해주는 제도, 지식인들이 연구 및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국가에서 생계를 보장하는 제도 등이 있겠지요.

물론 이건 다 저의 상상입니다. 붓다 시대의 인도에는 문자 기록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성문화된 법제도와는 아무래도 거리가 먼 사회였다는 것이 고대 인도에 대한 기본적인 이론입니다. 하지만 고대 인도에서는 입에서 입으로, 말을 말로서 정확하게 전달하는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 구전(口傳) 기록 시스템이 오히려 문서 기록보다 더 정확하게, 변형 없이 원래의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는 연구도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하는 기회를 갖도록 하겠습니다.

이어지는 경전의 내용을 보면, 결국 붓다의 말을 들은 마가다 왕의 사신은 왓지와의 전쟁을 포기하고, 왓지 사회에 소속된 사람들 사이에 분란을 일으키는 일부터 시작하겠다는 말을 남기고는 음모를 꾸미러 바쁘게 떠납니다.

자, 그래서 붓다가 만약 2017년 19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 투표권이 있었다면 과연 누구를 뽑았을까요? 일단 한 가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자면, 붓다에게 투표권이 있는 한, 붓다는 반드시 투표를 했을 것입니다. 이건 제가 장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붓다는 누구를 뽑았을까요? 지금까지 읽은 붓다의 말에 정답이 모두 나와 있습니다.

의사소통에 적극적이고, 민주적 절차를 중요시하며, 헌법을 비롯한 국가의 법을 존중하고 법리에 따르는 후보가 첫 번째 조건이고, 공약으로서 노인 복지와 여성권의 확대를 이야기하면서 국가의 전통을 지키고, 지식인들이 내놓는 쓴 소리를 무시하지 않고, 오히려 그와 같은 조언을 권장하는 후보 정도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당연한 소리를 꽤 길게 한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요약한 경전의 내용과 지금까지 후보가 보여준 언행만을 보면, 우리가 '뽑을 만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겁니다. 앞으로도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언제나 붓다도 찍을 만큼 훌륭한 사람이 당선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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