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를 죽이라는 불교
붓다를 죽이라는 불교
2017.05.18 17:13 by 고요

한국 불교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선(禪) 불교에서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스승을 만나면 스승을 죽이라(逢佛殺佛 逢祖殺祖)”는 무시무시한 말이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 누구를 죽이라는 흉악한 소리가 아니라, 진짜 달을 봤으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머릿속에서 지우라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 선불교는 불교 원리주의 운동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요즘 한국 사람들이 느끼는 불교는 ‘불상에 절하면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원시 종교’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스님들끼리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인다’는 말의 의미를 공유하고 달을 찾기 위해 열심히 수련하는지 몰라도, 아무래도 그런 정신이 일반인들에게까지 잘 전달되지는 않는 것이 분명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유명한 절에 방문하게 되면 제일 먼저 마주치는 모습은 띠에 맞춰 주렁주렁 달아 놓은 12지신 염주와 배가 빵빵한 미니어처 미륵상, 나무를 깎아 만든 잡다한 중국산 잡동사니를 판매 중인 매점입니다. 그다음에는 365일 기와불사를 접수 중이고 초파일 시즌에는 사이즈별로 액수가 껑충껑충 달라지는 연등에 이름을 달아주는 접수대를 마주치는 것이 보통입니다. 법당 안에 들어서면 불상 앞 센터 자리에는 어김없이 복전함 내지 보시함이 떡하니 버티고 있습니다.

부처를 죽일 기세로 수련 중인 스님들은 “출입금지” 푯말 안쪽에 계시므로, 개인적으로 연락처를 알고 있거나, 우연히 인연이 닿지 않는 이상은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뭔가 상업공간과 종교공간이 구분되어 있는 듯한 기분도 들지만, 긴 세월에 걸쳐 정착된 시스템인 만큼 어떤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저는 일단 납득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납득했다고 해서, 주로 유명사찰의 모습에서 불교를 접하게 되는 모든 사람들이 불교가 ‘기와에 이름을 쓰고 소원이 달린 연등을 주렁주렁 달고, 수능 만점을 기원하며 끊임없이 불상에 절을 하는 종교’가 아니라, 뭔가 ‘체계적이고 방대한 교학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종교’일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붓다가 가르친 내용이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찾아보지 않는 이상, 불교가 도대체 뭐하자는 종교인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서양 주류문화권에서 수십 년간 방대한 대중문화 콘텐츠를 축적해온 종교들처럼 영화나 소설, 음악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상품화된 교리 전달 매개가 불교에는 없습니다. 오히려 타 종교의 매체들을 통해 불교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을 접하는 횟수가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교의 불친절함에 대한 쓸데없는 불평은 여기까지 하고, 그래서 불교의 ‘체계적이고 방대한 교학’이 대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중학교 교과서에도 불교에 대해 설명할 때마다 나오는 ‘사성제’입니다.

불교는 수능 만점을 기원하며 끊임없이 불상에 절을 하는 종교가 아니라 체계적인 교학 시스템을 갖춘 종교입니다.

 

| 불교의 시작, 사성제

사성제(四聖諦, Catvāryāryasatyāni)는 일반적으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로 번역됩니다. 그 네 가지가 무엇이냐면, 역시나 교과서에서 자주 접한 바 있는 ‘고집멸도(苦集滅道)’입니다. 고성제, 집성제, 멸성제, 도성제가 각각 ‘괴로움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을 없앨 수 있다는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을 없애는 방법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로 해석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이 ‘성스러운 진리’라는 해석은 반만 맞고, 반은 틀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성스럽다’는 말, 뭔가 어색하고 부담스럽지 않습니까? 스스로 생각하기를 그토록 강조했던 붓다가 ‘성스러운’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부터가 어딘지 어색합니다. 아마도 ‘성스럽다’는 말이 “함부로 가까이할 수 없을 만큼 고결하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붓다의 삶에 ‘함부로 가까이할 수 없는’ 권위적인 면은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붓다가 자신의 깨달음에서 핵심만 요약한 용어에 그런 느낌을 주는 말을 사용했다고 하니 어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차라리 ‘성스러운’ 부분은 붓다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나중에 더한 말이거나, 해석을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타당한 것 같습니다.

실제로 불교 교리에 대한 매우 중요한 해설서들이 모두 이 ‘성스러운’ 부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나름의 올바른 해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불교 교리에서 특히 중요한 해설서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인도 북쪽, 캐시미어 염소들이 뛰어노는 카슈미르 고산 지대에서 심오한 철학 연구에 집중하던 학파인 ‘설일체유부(Sarvāstivāda)’가 남긴 불교용어 백과사전 『대비바사론(Mahāvibhāṣaśāstra)』입니다.

두 번째는 카슈미르 고원의 서쪽, 그리스 문화와 인도 문화가 융합되어 세계적으로 잘 나가던 세련된 문화특구 간다라 지방 학파인 ‘경량부(Sautrāntika)’의 불교 해설서 『아비달마구사론(Abhidharmakośabhāṣya)』입니다.

세 번째는 스리랑카를 비롯한 남아시아 지역에서 2천년이 넘는 기간동안 꾸준히 전통을 잇고 있는 학파인 ‘상좌부(Theravāda)’의 불교 교과서 『청정도론(Visuddhimagga)』입니다.

이 책들은 모두 한국어로도 출판되어 있는데, 그 권수나 두께가 어마무시합니다. 어쨌든 이 해설서들 모두, 당연히, 불교의 핵심 개념인 ‘사성제’에 대해 복잡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그냥 단순하게 요약하면 “깨달은 사람들이 알게 되는 네 가지 진리”가 사성제라는 것은 공통적인 해석입니다. 여기에 “깨닫지 못한 사람은 이 네 가지 진리를 반대로 느낄 수도 있음”이라거나, “그냥 종합적으로 네 가지 진리가 성스러운 건 사실”이라는 식의 설명이 조금씩 다르게 더해져서 각 논서들의 내용에 약간의 차이는 있습니다만, 어쨌거나 ‘성스러운’이라는 말을 ‘깨달은 사람들의’라는 형태로 해석한다는 점은 모두 같습니다.

왼쪽부터『대비바사론』,『아비달마구사론』,『청정도론』(출처: 네이버 책)

참, 이 해설서들은 몇백 년 전이 아니라 길게는 2,000년에서 짧게는 1,500년 전에 쓰여졌습니다. 그러고 보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성제라는 불교 핵심 교리에 대한 해석은 이미 오래전에 책으로 나왔고, 1,400년 전 사람인 신라의 원효 스님이 그 책의 중국어판으로 공부를 했다는데, 현대의 교과서에는 사성제에 대한 세련된 해석과 설명이 아니라, 단순한 단어 해석이 실려 있습니다. 아마도 불교가 오래전에 전래되어 우리 문화 깊숙이 자리 잡은 만큼, 불교 용어를 우리 언어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 또한 자연스럽게 여기게 되어 발생한 현상 아닌가 싶습니다.

어쨌거나, 사성제는 붓다가 자신의 깨달음에 대해 타인에게 처음으로 설명한 내용입니다. 말하자면 불교의 시작이 바로 사성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단순하게 부처님께 절하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식의 불교를 믿는 것이 아니라, 붓다가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했는지 알기 위해서 사성제가 무엇을 설명한 것인지 살펴보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붓다를 만나면 붓다를 죽이라는 불교.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그 가르침을 준 붓다에게 영향을 받지 말라는 것은 분명 이상한 소리처럼 들리지만, 가장 불교적인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붓다가 직접 가르친 내용이 바로 ‘자신을 무조건 따르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생각을 밝게 하고 그에 따르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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