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 냄새를 쫓아, 제기동 약령시장을 가다
한약 냄새를 쫓아, 제기동 약령시장을 가다
2017.05.18 18:02 by 최현빈

등장인물

최현빈(26): 글의 화자

이승환(33): 약재상, ‘명문약초’ 운영

임경섭(58): 한의사. ‘효성한의원’ 운영

 

#1. 서울약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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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하철 1호선 제기동역. 이곳엔 언제나 한약 냄새가 가득하다. 골목 안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통일된 디자인의 갈색 간판들이 보인다. 약재상, 한약상, 한의원… 온통 한약 천지다. 이러니 한약 냄새가 날 수밖에.

굳이 골목에 들어가지 않아도 한약 냄새를 맘껏 맡을 수 있다.

서울시 동대문구 제기동에 위치한 서울약령시장. 1호선 제기동역을 기준으로 동쪽으로는 경동시장, 북쪽으로는 홍파초등학교를 맞대고 있다. 이곳엔 800여개의 한약과 관련된 점포들이 들어와 있다. 이곳에서 거래되는 한약재는 우리나라 전체 유통량의 약 70%. 한약의 메카다.

골목 입구는 농산물을 파는 상인들과 지하철을 이용하는 승객들로 북적거린다. 재빨리 골목 안쪽으로 들어갔다. 초입에 비해 골목 안의 풍경은 한산했다. ‘우리나라 대표 약령시’란 표현이 쓸쓸해 보였다. 상인들은 이곳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2. 약재상, ‘명문약초’

제기동 약령시장길 6번 구역. 한방식품을 취급하는 약재상 ‘명문약초’. 가게 안팎으론 한방식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이승환(33)씨가 쌍화차를 내주며 맞아준다. 이씨는 5년 전 아버지의 가게를 물려받은 약재상 2세. 제기동 일대에선 최연소 약방 지기다. 그와의 일문일답.

‘명문약초’ 이승환 대표

-차가 맛있다. 약령시라 그런가, 느낌이 다르다.
“젊은 고객들은 한약을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많더라. 부모님이 해 줘야 겨우 먹지. 그래서인지 차 관련 제품도 많이 생겨났다.”

-언제부터 이곳에서 일했나
“2012년. 스물일곱 살에 아버지의 가게를 물려받았다. 20대는 지금이나 그때나 없었다. 한창 혈기 왕성할 때였는데, 그땐 가끔 일탈을 꿈꿨다. 쉬는 날이 전혀 없었으니까.”

-하루쯤은 쉴 수도 있지 않나
“가끔 쉬고 싶은 날이 있으면 아버지에게 간곡히 부탁드린다.(웃음)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매일 일하는 모습을 봐 와서 매일 일하는 게 자연스럽다.”

-가업을 물려받는 것에 대해 거부감은 없었나
“거부감은 별로 없었다. 아버지와 친형을 비롯한 친척들이 다 관련 계열에 종사한다. 집안일 돕는 차원에서 놀러오다가 자연스럽게 물려받았다.”

-어릴 때부터 이곳을 찾았으면 변천사를 다 알겠다.
“천천히 변하는 모습을 봤다. 초등학교 때부터 놀러왔으니까. 5년 주기로 골목의 풍경이 변하는 것 같다. 서울약령시는 번호로 구역이 나뉜다. 가장 북쪽, 홍파초등학교가 있는 골목은 10번대 번호를 가진 골목이었다. 그런데 서서히 그쪽에서부터 가게들이 사라지기 시작하더라. 그렇게 밀려온 게 6번, 이 가게가 있는 구역까지다. 여기가 마지노선이라고 보면 된다.”

-그럼 위쪽에는 더 이상 한약과 관련된 점포들이 없나
“손님을 맞는 곳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도매 형태로 다른 의원에 약을 취급하는 약업사 정도만 남았다. 예전엔 모든 골목에 한방 종사자들이 가득했다. 사람이 가장 많았을 땐 점포 수가 2000개가 넘었으니까. 언젠가부터 사람이 점차 줄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800여 곳만 남았다.”

생각보다 한산했던 서울약령시

-절반 이상 줄어든 건가
“경기가 매년 나빠지니까. 손님들이 찾지 않는 거리부터 서서히 그렇게 변한 거다. 골목에서 아는 분을 만나 안부를 물으면 ‘접었다’는 대답을 듣곤 한다.”

-새로운 고객의 유입이 간절하겠다.
“사람들이 이곳을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도록 약령시 협회 차원에서도 다양한 전통 행사를 열고 있다. 최근엔 약령시 건너편에 있는 한의학박물관을 이곳으로 옮겨오는 공사를 하고 있다. 주차장도 확충해 방문객에게 편의를 제공하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람들이 한약에 대해 갖고 있는 잘못된 상식도 있지 않나
“우리들은 ‘낭설’이라고 칭하는 것들이 있다. 둥글레에 대한 게 대표적이다. 옛날 어르신들 사이에선 ‘둥글레차를 오래 마시면 머리가 빠진다’는 말을 믿고 계신 분들이 많다. 사실이 아닌데 말이다.”

다양한 한방재료들. 둥글레는 탈모와 관련이 없다.

-그게 사실이라면 아무도 둥글레를 찾지 않겠다.

“그래서 낭설인거다. 그 외에 ‘한약이 간에 나쁘다’와 같은 말도 있다. 대부분은 잘못된 지식이나 섭취에서 온다. 약재마다 먹는 방법이 있는데… 음식이나 양약도 마찬가지지 않나.”

 

“인터넷 쇼핑몰 형태의 창업 늘어… 기존 전통과 새로운 형식의 시너지 기대합니다.”

-골목에서 새롭게 변화하는 부분은 없나
“마흔 넘어서 가게를 물려받은 분들은 인터넷 쇼핑몰 형태로 많이 창업하더라. 아버지는 가게를 지키고. 젊은 고객들은 시장 골목 들어오기 수줍을 수도 있으니까. 아무래도 젊은 층을 대상으론 인터넷을 통한 유통이 효과적이라 본다.”

-온라인 거래가 늘어나면 골목은 더욱 한산해질 수도 있겠다.
“작게는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지만 크지 않을 거라 본다. 부모님 세대 분들은 반드시 눈으로 보고 산다. 최근엔 원산지 관련한 문제로 매스컴에 보도되는 일도 있었고. 그리고 온라인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이곳을 지난다면 한번쯤 들리지 않을까.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이곳에도 온라인에서 약재 관련 정보를 알아본 후에 직접 보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

-이곳이 어떤 시장이 되었으면 좋겠나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는 곳. 가령 더 비싼 약재를 팔기 위해 손님을 속이거나 이런 경우가 있는데, 그런 건 결국 우리 생명력을 깎아 먹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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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효성한의원

약재상을 나와 이번엔 한의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임경섭(58)씨는 31년째 이곳에서 한의원을 운영 중이다. 오랫동안 골목을 지켜온 임씨에게 제기동 약령시장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지 물었다.

‘효성한의원’ 임경섭 한의사

-이곳에서 오랫동안 환자들을 봐오셨다. 처음 터를 잡은 건 언젠가

“1986년이었다. 지금은 한의대를 졸업하면 학교에 남거나 공익근무를 하는 등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지지만 그땐 자기가 한의원을 차리기 전까지는 월급을 받으며 일해야 했다. 그중 가장 큰 규모의 시장이 제기동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한의대생들은 이곳을 거친 건가
“서울 출신 한의대 졸업생들은 거의 그렇다고 보면 된다. 제기동을 중심으로 종로 몇 군데에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2~3년 정도 일하며 자본을 마련하다가 독립하는 식이었다.”

-이곳에 남은 이유는 무엇인가
“남기보다는 이곳에 독립을 한 거다. 그땐 이곳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시장이었기 때문에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가격 경쟁력이 있었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유입됐으니까. 지금은 동네 한의원과의 가격 차이가 거의 없어졌다. 시장의 유동인구가 감소한 것도 이러한 영향이 한몫 했다. 근방의 다른 한의원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밤 10시에도 환했던 시장, 이젠 6시만 되도 인적 뚝…”

-그때와 지금 가장 큰 차이를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퇴근시간. 예전엔 손님이 몰려오니까 밤 8~9시, 늦으면 10시까지도 한의원에 남아있어야 했다. 다른 한의사들도 마찬가지고. 지금은 6시만 되면 골목에 인적이 뚝 끊긴다. 직원들과 야식 시켜먹고 하던 건 이제 추억이다.”

-지금은 어떤 분들이 주로 찾아오나
“단골손님들이 주로 찾는다. 20~30년 전부터 꾸준히 찾아온 분들이다. 어느덧 대부분 나이가 지긋하시다. 어렸을 적 약 먹고 몸이 좋아진 것이 인연이 되어 단골이 된 분들이 많다.”

-새롭게 유입되는 손님들도 있나
“이전에 비해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온다. 인천이나 천안, 의정부 같은 곳에서 노인들이 지하철을 타고 많이 찾아온다. 나이가 있는 사람들은 조금만 싸다 싶으면 발품을 팔아서 오니까. 한의원에 비해 약재는 조금이라도 저렴한 편이고 종류도 풍부하다. 최근엔 SNS를 보고 찾아오는 젊은이들도 생겼다.”

-한의원에서 SNS도 운영하나?
“직접 운영하는 건 아니고, 옆에 새롭게 찻집을 론칭했는데, 찻집을 찾아온 사람들이 인스타그램 같은 곳에 올리곤 하더라. 그걸 보고 찾아오는 이들이 있다.”

-한의원에서 찻집을 만들었다고?
“한의학을 기반으로 차 레시피를 개발했다. 한약을 부담스러워하는 젊은이들이나 관광 온 외국인들이 처방 과정을 재밌어하고 맛있게 먹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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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 들어갈 약재를 손질하는 모습.

-처방이라 하면 한의학에서의 그 처방인가
“내가 한의사니까. 한의학적인 처방을 기본으로 차를 권한다. 위장이 좋지 않은 사람에겐 속을 따듯하게 해주는 차라던지 하는 식으로. 네 가지 체질(태양, 태음, 소양, 소음)에 따라서도 우려내는 물을 달리하고 있다.”

-한의사가 처방하는 한방차, 신선하다.
“배우자가 운영을 맡고, 지난 9월에 문을 열었다. 이전엔 제기동에 이런 찻집이 없었다. 옛 다방이나 한두 군데 있었지.

-다른 상인들의 반응은 어떤가?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유동인구는 줄어들고 있는데 잘 되겠냐고. 그런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지인을 데려와 소개해주기도 하더라.”

폐를 깔끔하게 해주는 청폐차. 에디터는 소양인이다.

-이곳에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동네 한의원의 고객은 대부분 주민이다. 하지만 이곳에선 전국의 환자들을 만나게 된다. 여러 지역에서 온 만큼 병의 종류도 다양한데 양방이나 다른 한의원에서 포기한 환자들이 오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 치료가 성공하면, 의사로서는 최고 보람이다. 시장 특유의 순박한 면도 좋다. 자식이 결혼하면 청첩장을 보내주기도 하고. 작년에도 결혼식에 다녀왔다. 유치원 때부터 본 얘가 어느덧 장가를 간다고 하더라. 언젠간 자녀의 약을 지으러 오지 않을까?(웃음)”

-이곳에 대한 정도 많이 들었겠다.
“지역 한의사모임에 나가면 ‘제기동이 죽었다’, ‘다른데 차리는 게 어떻냐’ 하는 권유를 받곤 한다. 하지만 30년 동안 지킨 이곳을 어떻게 떠나나. 죽으나 사나 뼈를 묻어야지.

-갑작스런 인터뷰 요청에 응해줘서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독자를 위한 건강 팁을 준다면?
“요즘 환절기 감기로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손씻기가 제일 중요하다. 가기 전에 청폐차나 한 잔 들고 가라. 폐를 깔끔하게 해준다.”

한의원 앞 임경섭씨 부부의 모습

 

/사진: PJ

필자소개
최현빈

파란 하늘과 양지바른 골목을 좋아하는 더퍼스트 ‘에디터 ROBIN’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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