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죽은 뒤 염전노예로 끌려가면 어떡해요!
나 죽은 뒤 염전노예로 끌려가면 어떡해요!
나 죽은 뒤 염전노예로 끌려가면 어떡해요!
2017.05.30 18:33 by 류승연

앞으로 30~40년 뒤. 이 세상을 하직할 순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 때가 오면 어떤 느낌일까? 살아온 인생에 대한 후회가 밀려올까? 아니면 홀가분하고 편안할까? 그 순간이 빨리 오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론 그 순간이 며칠이라도 늦춰지길 바란다. 나 없으면 찬 밥 신세 될 아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딸에 대한 두려움은 코딱지만큼도 들지 않는다. 아마도 지금의 내 나이 정도가 되었을 우리 딸은 남편과 자식들에게 아침마다 “빨리 일어나~ 또 늦었어!”라고 소리를 질러대는 씩씩한 중년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겠지.

하지만 아들은? 나 죽고 나면 어쩌지? 어디 으슥한 장애인 시설에 들어가 수갑을 찬 채로 매를 맞으며 학대를 받다 죽게 될까? 아니면 뉴스에서 보던 염전 노예로 끌려가게 될까?

팔순의 부모 눈엔 환갑의 자식도 그저 물가에 내 놓은 아이 같은 법이다. 하물며 진짜로 정신연령이 어린 발달 장애인 자식은 어떨꼬. 아마 나는 죽어도 죽는 게 아닐 게다.

(사진: Fresnel/shutterstock.com)

마지막 숨 한 모금을 내뱉는 그 순간까지 “내 새끼 어쩔꼬…. 이제 어쩔꼬…” 하다가 꼴까닥 할 것만 같다. 생각하기도 싫지만 외면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내가 죽고 난 뒤 내 아들이 살아나갈 사회에 대해 생각을 한다. 아직 먼 미래의 일이라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왜냐고?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이미 오랜 시간에 거쳐 완전한 시스템이 구축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각자의 능력과 개성에 따라 사회 곳곳에 스며들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장애인, 특히 발달장애인이 살아나갈 사회의 시스템은 이제 막 첫 발을 내딛는 단계를 지나고 있다. 현재진행형으로 동시진행이 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눈과 입,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 따라 천국의 시스템을 갖추게 될 수도 있고 지옥의 시스템이 구축될 수도 있다.

지금이 중요하다. 우리의 관심이 필요한 건 바로 지금이다. 지금부터의 관심이 다가올 미래의 모습을 바꾼다.

아, 그런데 잠깐! 왜 우리냐고요? 그건 발달 장애아 부모인 당신들의 몫이 아닌가요? 똑똑하고 잘난 내 새끼는 장애도 없고 평생 장애인 근처에 갈 일도 없네요.

그래. 나도 그랬다. 장애인 문제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것인 줄만 알고 살았다. 내가 당사자가 될 줄은 꿈에서조차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아주 단순한 진리 하나. “장애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습니다.”

다행히 내 자식은 장애 없이 태어났지만 내 자식이 낳을 자식은, 그러니까 내 손주는 자폐나 ADHD를 갖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이유도 모른다. 이유도 모르는 발달 장애인이 늘어가고 있다는 게 더 무서운 현실이니까. 돈 잘 벌고 말 잘 듣는 착한 남편도 어느 순간 뇌졸중으로 쓰러져 네 살짜리 어린아이가 되어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장애란 건 그런 거다.

장애인 복지와 제도에 대한 관심을 지금부터 갖는 게 중요한 이유다. 내가 장애인이 될 수도 있고 내 가족이 장애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일은 갑작스럽게 느닷없이 찾아오기 때문에. 아직 장애인 복지에 관한 시스템이 완전히 구축되기 전인 지금부터 관심을 갖고 ‘잘’ 구축되도록 감시하고 독려할 필요가 있다.

(사진: CHOATphotographer/shutterstock.com)

사설이 길었다. 왜 이리 긴 얘기를 했냐면 최근 눈이 아주 번뜩 뜨이는 책을 한 권 읽었기 때문이다. ‘정신은 좀 없습니다만 품위까지 잃은 건 아니랍니다’라는 제목의 정신없어 보이지만 무지하게 재미있는 책이다.

이 책은 ‘살면서 늙는 곳’을 모토로 한 일본의 치매 요양시설 ‘다쿠로쇼 요리아이’의 설립과정을 담고 있다. 치매도 발달장애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죽을 때까지 보호의 손길이 필요하고, 보호자의 대부분은 가족이다. 가족이 보호를 할 수 없는 경우엔 요양시설로 들어간다. 장애인들이 장애인 보호시설로 들어가듯이.

‘다쿠로쇼 요리아이’는 폐쇄된 치매 요양시설에 반기를 들었다. “치매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정든 집과 이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요양시설에 들어가지 않고 지역사회 안에서 일상 생활하듯 살 수 있는 곳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눈이 번쩍 뜨였다. ‘치매’를 ‘장애’로 바꾸기만 하면 된다. 이런 곳이 있다면 나도 30~40년 뒤에 안심하고 눈을 감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있을까? 이런 곳이? 성인 장애인들의 주거 정책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시계를 30년 뒤로 돌려보자. 우리 아들이 서른 아홉 살이 됐다고 가정을 해 보자. 나는 일주일 전에 꼴까닥 하고 죽었다. 남편은 나보다 1년 먼저 세상을 떴다.

가정을 갖고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고 있는 딸에게 동생에 대한 책임을 지우긴 싫다. “너는 너만의 삶을 살거라”. 아마도 내 유언일 게다.

아들의 선택지는 3개다. 엄마와 함께 살던 집에서 혼자 살거나, 장애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사는 그룹홈에 들어가거나, 장애인 보호시설에 입소하거나. 중증 발달장애인일 아들이 혼자 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성인 발달장애인은 활동보조인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도 적은 데다 직장에 나가있는 시간도 많지 않다. 그나마도 직장을 구할 수 있는 운 좋은 장애인이 될 수 있다면 다행이다.

그룹홈에 들어가자니 낮 시간동안이 문제다. 낮에는 직장에 나가는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주간에 갈 곳 없는 장애인들은 그룹홈에 들어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 그렇다면 장애인 보호시설에 입소를 해야 하는데…. 물론 사랑과 봉사 정신이 넘치는 좋은 보호시설이 더 많지만 간혹 보호자들도 모르는 곳에서 잔혹한 일들이 벌어지는 나쁜 곳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과 봉사가 넘치는 좋은 보호시설이라 해도 폐쇄적인 시설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집 같은 포근함은 기대하기가 어렵다. 시설이기 때문에 군대와도 같은 규칙적인 단체생활이 불가피하다.

사실 장애인 보호시설은 그 방법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된 측면이 크다. 장애인 수는 늘어 가는데 이들을 껴안을 공간은 많지 않으니 점점 시설화가 되어간 것이다. 시설에서는 함께 사는 가족관계가 아닌 관리자와 대상자의 관계가 성립된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이런 추세도 바뀌고 있다고 한다. ‘다쿠로쇼 요리아이’처럼 시설이되 시설 같지 않은 탈시설화를 목표로, 장애인들만 모여 사는 장애인 월드에서가 아닌 지역사회 안에서 함께 사는 구성원을 목표로 장애인 수용형태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일명 캠프힐 운동이라고도 불리는 이러한 추세는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아들이 다니는 특수학교의 재단에서도 ‘자립지원주택’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형태의 장애인 주거시설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데 대강의 설명을 들으니 소규모의 ‘다쿠로쇼 요리아이’ 형태인 것도 같고 캠프힐 운동의 연장선상인 것도 같다.

(사진:양평 슈타이너학교 카페)

문제는 이러한 형태의 새로운 장애인 주거모델이 민간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명의 목사, 하나의 재단, 또는 자조모임의 부모들. 이렇게 개개인에 의해 새로운 형태의 장애인 주거모델이 시도되고 연구되고 있다.

그 동안에 나라는 뭐하냐고? 애석하게도 보건복지부에서는 전국에 있는 480여개 장애인 거주시설에 국비를 지원하는 일만 하고 있다. 올해 예산은 4500억 원이란다. 4500억 원의 국비를 480여개의 시설에 지원했으니 가끔 나가서 관리 감독을 하기도 한다.

새로운 형태의 장애인 주거모델을 연구하지도 않고, 장애인들이 지역사회 안에서 어우러져 살 정책 같은 걸 개발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 현재까진 그렇다. 앞으로는 어찌될지 지켜볼 일이다.

어쨌든 ‘다쿠로쇼 요리아이’에 대한 책을 읽으며 막연하게나마 내 아들이 살아나갈 미래에 대한 구상을 해 볼 수 있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목표는 하나다. 마지막 숨을 내뱉는 그 순간에 “이제 어쩔꼬~”가 아니라 “사랑한다~”말하고 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미래가 오도록 만들어야 한다. 일단 하고자 마음먹는 것부터 시작이니까.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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