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는 게 능사?
나가는 게 능사?
2017.06.22 14:36 by 시골교사

괜히 돌아왔어!

‘처음부터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는 게 아니었어!’

나는 제로섬 게임의 원칙을 믿고 사는 편이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 편익을 위해서는 비용을 치러야 한다, 선택한 편익이 비용보다 커야 한다는 등등의 합리적 선택 기준을 준수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복잡하게 따지지는 않는다. 그런 과정을 어렵고 귀찮게 여긴다. 다만, 이득을 봐도 눈치 없이 좋아라 날뛰지 않고, 손해를 봐도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낙담하지는 않는다.

유학 결정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이 독일로 유학을 가겠다고 통보했을 때, 가면 고생이 빤한데도 따라나서겠다고 결정한 것은 독일교육에 대한 환상과 그것이 아이들에게 소중한 추억과 자기발전의 발판이 되리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돌아와 치르는 대가는 얻은 편익보다 훨씬 크고 복잡하기만 했다.

가장 후회될 때는 아이들이 겪고 있는 한국 학교 교육에 대한 적응과정을 볼 때다. 아이들이 한국에 돌아와 겪는 어려움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큰 것은 역시 언어와 어휘력이다. 언어와 어휘력이 또래보다 현저히 떨어진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지켜보는 부모는 부모대로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큰아이는 언어습득의 결정적 시기라는 다섯 살부터 열두 살까지, 작은 아이는 돌이 지나면서부터 이중 언어에 노출됐다. 물론 한국에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해서 집에서는 무조건 한국어만 사용하게 했다. 하지만 이 문제가 강요만으로 될 일은 아니었다. 독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큰아이는 독일어를 더 편하게 느끼기 시작했고 집에서 한국어에 독일어 단어를 섞어 쓰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집에서 독일어 반, 한국어 반으로 대화를 하였다. 결국 균형 잡힌 이중 언어 습득에 실패하고 말았다.

외국어 교육의 감수성은 늦어도 12세까지 거의 완성된다고 한다. 즉 12세까지 이중 언어를 배우지 못하면 나중에 아무리 열심히 배워도 모국어처럼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없다는 말이다. 여기서 자유자재의 의미는 생활 외국어 수준 이상을 의미한다. 물론 이 일은 개인차도 심하고, 변수도 많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단지 우리 아이들의 경우를 보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첫 언어의 습득이 중단되거나 불충분함 속에서 또 다른 이중언어 환경에 노출될 경우 두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독일어 환경에서는 한국어가 완전 열세였고, 돌아온 지금은 열세인 모국어를 독일어 수준만큼 끌어올리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아이들이 독일 친구들과 메일을 주고받고, 가끔 만나는 독일 사람과 대화하는 것에는 두려움도 없고 표현상의 문제가 없다. 하지만 양쪽 언어에 대한 어휘력과 유창성은 같은 또래의 독일 친구와 한국 친구에 비해 충분치 못하고, 무엇보다 요점을 파악하고 추론하는 능력은 단일 언어를 사용하는 아이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사진: shutterstock.com/Golden Brown)

한국에 돌아와서 혼란스러운 부분을 하나 더하자면 ‘우리’로 표현되는 공동체 의식의 약화다. 가끔 주변 분과 얘기를 하다 보면 경험을 통한 비교 대상인 독일 얘기를 자주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한국은~’ 이라는 용어를 자주 쓴다. 특히 교육현실을 놓고 얘기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독일 아이들은 한국 아이들에 비하면 천국에서 사는 거예요. 선행이요? 그런 게 있는지도 몰라요. 유치원에는 학습이 없어요. 그냥 하루 종일 놀아요. 친구들과 선생님과 어울려서. 하루에 꼭 한 번씩 햇볕을 쬐게 하고 바깥 공기를 마시며 놀아요.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11시 30분, 고학년의 경우 12시 30분이면 집으로 가요. 중학생의 경우는 1시 30분, 고등학생도 4시 30분이면 집으로 돌아간답니다. 야간자율학습, 이런 단어, 아이들은 몰라요. 사교육도 없어요. 아이들이 인간답게 클 수 있는 나라, 어릴 때부터 경쟁에 내몰리지 않는 나라,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적은 나라, 한 발짝씩 천천히 자기 적성을 찾도록 도와주는 나라, 그게 바로 독일이고, 독일 교육이에요." 등등.

독일 교육만 생각하면 심장이 고동치고 한국교육과 비교하면 아드레날린 분비가 촉진되어 입에서 침을 튀겨 가며 일장 연설을 하게 된다. 독일이 모국도 아닌 것을, 나랑 뭔 상관이 있다고 이렇게 흥분하며 얘기하는지 모를 일이다. 그 이면에는 부정할 수 없는 한국 교육에 대한 안타까움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얘기를 듣는 분들 중에는 간혹 불편한 기색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한다.

"한국이 아니라, 우리 나라예요! 우리 나라!"

언제부터인가 내게 ʻ우리ʼ라는 의식이 약해졌다. 2005년 당시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관련 논문조작 사건이 독일 방송을 탔을 때 그러했다. 이 사건은 독일 방송에서 크게 이슈화되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이 사건에 대해 아는 독일 친구들이 물어볼까 지레 겁을 먹었고, 그 사건을 스스럼없이 물어오는 중국 친구들 앞에서도 부끄러울 정도였다. 그 사건으로 독일 사람들이 한국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남의 나라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산다는 게 쉽지 않음을 실감하였다. 해외에 나가 있는 동포들이 해당 나라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려면 국내 상황이 발전적인 방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된 좋은 기회였다.

잠깐의 외출이 머리를 복잡하게 하고,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지 떠나기 전에는 미처 몰랐다. 차라리 나가지 않았으면 주어진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았을 텐데…….

(사진: shutterstock.com/Indypendenz)

나가는 게 능사?

‘한국 교육에서 아이들이 타고난 잠재력이 제대로 끄집어 내지고 계발될 수 있을까?’, ‘사고력과 창의성은?’, ‘영어 경쟁력은?’, ‘미친 듯한 경쟁이 싫다면?’

대한민국 부모로서 떨칠 수 없는 고민거리들이다. 이런 불안 속에서 솔직히 여유만 된다면 아이들을 해외로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부모라면 한 번쯤 해봄직도 하다. 하지만 조기유학이란 것은 만만한 단어가 절대 아니다. 독일의 경우 보호자 없는 미성년자 입국이 쉽지 않은 데다, 있다고 쳐도 그 경제적 부담이 서민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

거기다 어떻게 경제적인 부담만 따지랴! 아이만 보낼 경우 당장은 아니지만 점차로 서로 안고 가야 할 소원함의 문제는 어떡하랴! 예민한 나이에 떠난 아이들이 그곳의 문화에 쉽게 동화되고 나중에는 그곳에서 배운 정서와 문화로 부모를 대할 텐데, 그때는? 서로 간에 소통과 이해에 문제가 생기고, 그것은 원치 않은 상처를 서로에게 남길 것이 빤한데 말이다.

부모는 떠나 보낼 때의 모습으로 아이를 기억한다. 그 모습만이 부모 뇌리에 남아 있는 마지막 모습이기 때문이다. 또 한국 문화에서 올곧 자란 아이와 같은 정서를 기대한다. 하지만 이미 아이는 그곳 문화에서 그곳의 정서를 익히고, 변해간다. 결국 기대와 현실이 다르기 때문에 그 속에서 거리감과 서운함이 생기게 마련이다. 때로는 부모 입장에서 이런 생각을 하게도 한다.

‘이러려고 유학 보냈나!’ , ‘내가 들인 공이 얼만데…’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도 그렇지만 아이들의 정서적 안정은 어쩌랴? 부모와의 긴밀한 정서적 유착과 유대감이 부모 품 안에서 형성되고, 그것이 평생을 살아가는 중요한 에너지가 될 텐데, 어릴 때 부모 품을 떠난 아이에게 그런 부분을 기대할 수 있을까? 부모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 부대끼며 쌓아야 할 가족관계와, 그것이 빚어내는 알콩달콩한 행복은 부모 품을 떠나는 순간 서로 포기해야 할 기회비용이 되는 셈이다.

독일 사회의 성격은 폐쇄적이다.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의료 수준 등이 지역마다 균형적으로 잘 발전되어 있다. 갑작스러운 도시계획 내지는 개발이 없다. 이런 이유로 인한 인구이동이나, 한 지역에의 쏠림 현상이 없다. 유치원 때 친구가 대학 때까지 친구로 이어지는 경우가 잦다. 변화와 변동이 쉽게 일지 않는 도시적 분위기 속에서 외부인이 들어온다? 그것도 외국인이?

그런 폐쇄적 분위기와 이미 초밀하게 얽혀진 사회적 관계망 속에 외국인이 들어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 독일은 다른 EU 국가에 비해 인종차별이 덜한 편이지만 유색인과 개발도상국 국민에 대한 비하는 그들 심리 기저에 어느 정도 남아 있다. 어린 나이에 그런 환경을 뚫고 그 속에서 버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어릴 때 나가는 게 능사?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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