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 다니는 원숭이
걸어 다니는 원숭이
2017.06.29 17:00 by 시골교사

‘걸어 다니는 원숭이!’

작은 아이의 초등학교 때 별명이다.

아토피와 천식으로 고생하는 큰 아이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건강한 작은 아이는 쉬는 시간마다 운동장으로 달려나갔다.

철봉에 매달려 한참을 놀다 지치면 남학생들끼리 하는 축구 경기를 구경하고, 경기 도중 자기 쪽으로 튕겨 진 골을 힘껏 차보기도 했다. 걸어 다닐 때의 모습은 또 어떠랴! 가만가만 조신하게 걷지 않고 중간중간 덤블링을 해대는 통에 아이들의 눈을 휘둥구레지게 만들곤 했다. 그런 작은 아이를 보고 선생님과 친구들이 신기한 듯 이런 별명을 지어 부르기 시작했다. ‘걸어 다니는 원숭이, 권OO!’

주말이면 작은 아이는 아빠를 졸라 학교 운동장에 갔다. 거기서 아빠랑 100m 경주를, 언니랑 오래달리기 등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작은 아이는 운동장을 벗 삼아 지칠 줄 모르고 달리고 또 달렸다.

(사진: shutterstock.com/Patrick Foto)

처음에는 아이가 한국말을 못해서 저러나 싶었다. 하지만 아이의 체육 사랑은 독일에서 이미 시작된 것이었다. 독일 학교의 쉬는 시간은 20분이다. 두 시간 블럭 타임제를 끝내고 쉬는 시간을 주기 때문이다. 아이는 종치기가 무섭게 달려나가 놀이터에서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하였다. 철봉에 매달려 몸통을 돌리고 다리를 감아 거꾸로 매달려 하늘 한번, 친구들 한 번 보고, 그러다 종이 나면 또 쏜살같이 교실로 뛰어들어가는 그런 아이였다.

아이의 이런 끼는 1학년 때 축구클럽에 가입하면서 더더욱 커졌다. 클럽에서 나이가 가장 어림에도 굴하지 않고 언니들한테서 공 한번 빼앗아 보려고 운동장을 내달렸다. 이런 에너지는 한국에 와서도 좀처럼 식지 않았다. 축구를 계속 배우게 해달라고 한참을 졸라대더니, 이도 저도 안되면 체조라도 시켜 달란다. 인근에 여자아이들만을 대상으로 한 축구클럽은 있지도 않은 데다, 체조는 어디서 배우는지 더욱 깜깜한 정보통인 엄마에게 말이다.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 대회가 개최될 무렵이다. 벌써부터 아이의 마음은 대구에 가 있었다. 선수들이 도착할 무렵에는 공항에 데려다 달라고 야단이더니, 이제는 대구에 가겠다고 우긴다. 우사인 볼트를 꼭 자기 눈으로 봐야 한다면서 말이다. 그런 아이의 열정은 교내 체육대회 때마다 빛을 발하였고, 00시 마라톤 대회에 학교 대표로 참여하면서 점차 자기의 진로를 결정한 듯 싶었다. 육상선수로 말이다. 체육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 게다가 육상과는 더더욱 거리가 먼 내게 아이의 이런 행동은 낯설기만 했다.

아이가 이렇게 육상에 꽂혀 지내는 것이 솔직히 두려웠다. 액셀을 밟든, 브레이크를 걸든, 뭔가 부모로서 해주어야 할 것 같은데 아는 게 없으니 답답했다. 물론 내 마음은 말리는 편에 이미 서 있었다. 아이의 꿈을 키워줄 마음이 솔직히 없었다. 체육은 위계 서열이 다른 분야보다 더 심한 데다 기합과 구타도 존재하고, 간혹 성추행도 빚어지는 터라 여자가 할 만한 게 더더욱 아니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어서 아이의 선택을 존중할 수 없었다.

더구나 어릴 때부터 선수 생활을 하면 또 어떠한가? 중학교에서는 오후 수업부터, 고등학교에서는 전 수업시간을 연습에만 올인 해야 하지 않나?

(사진: shutterstock.com/matimix)

독일에서는 학생들이 선수활동을 해도 그들의 학습권이 철저히 보장된다. 선수, 내지는 국가대표를 학교에서 직접 발굴하지 않고, 지역 내 스포츠클럽에서 발굴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독일 학교 내에는 선수를 양성하는 운동부가 따로 없다. 학교는 단지 체육을 통해 학생들에게 운동에 대한 흥미를 갖게 하고 건강을 증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할 뿐이지 그 이상을 넘지 않기 때문이다.

운동에 소질 있는 학생들은 어릴 적부터 시에서 운영하는 스포츠클럽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거기서 성과가 좋으면 팀의 선수 내지는 국가대표 선수로 선발된다. 훈련 역시도 학교 정규 수업을 끝내고 개인적으로 클럽에 가서 한다. 독일 내에서 치르는 대회도 주말에 개최되기 때문에 학생 선수들의 수업결손이 발생하지 않는다.

반면 한국은 어떠한가? 선수 선발권을 갖고 있는 스포츠클럽이 발달되어 있지 않고, 그것이 학교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 소지가 커진다. 더구나 스카우트 제의나 대학진학 기준이 오로지 경기실적만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학교 선수들이 가져야 할 학업에 대한 열의는 그만큼 식게 된다. 이런 이유로 학생 선수들은 운동을 시작함과 동시에 공부를 접고 기량과 실적을 쌓는 데에만 올인 한다.

이것 외에 학교선수들은 또 다른 위험성에 노출된다. 중간에 운동을 그만두게 될 경우에 발생하는 문제점이다. 운동이 적성이 아님을 뒤늦게 깨닫거나, 연습 도중 부상을 입어 더 이상 운동을 할 수 없게 되는 경우에 그들을 다시 재적응시킬 시스템이 따로 없다는 점이다. 그 문제 해결은 개인의 몫으로 남게 된다. 결국 중도에 운동을 포기한 학생들은 뒤처진 학습량을 회복하기 어려운 데다, 그로 인해 생기는 학교생활의 부적응 등을 떠안아야 한다.

운동을 시작한 이후 발생할 이런저런 위험부담을 생각해보면 섣불리 딸아이에게 운동을 시키고 싶지 않아 아이에게 원초적이고 감각적인 부분을 자극하며 이렇게 만류할 뿐이었다.

“체육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저거 봐. 육상선수들의 근육! 어깨가 저렇게 넓어져. 얼굴은 어때? 매일 바깥에서 연습하니까 저렇게 새까매지는 거야. 장딴지 보이지? 저 종아리 근육 좀 봐!”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생겼다. 사춘기인 아이가 체육교과가 아닌 다른 교과 선생님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로인해 아이의 육상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차차 식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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