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지 않아요. 우리와 같은 걸요.
다르지 않아요. 우리와 같은 걸요.
다르지 않아요. 우리와 같은 걸요.
2017.06.27 17:13 by 류승연

“장애인은 ‘틀린’사람이 아니라 우리와 ‘다른’ 사람일 뿐이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곳곳에서 행해지는 장애 이해 교육의 핵심 문장이다. 그런데 나는 요즘 이 말에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아이가 커갈수록, 더 많은 발달장애 아이들을 만날수록, 그들이 우리와 ‘다른’ 사람이 아닌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너와 내가 서로 다르듯이 장애인과 나도 서로 다를 뿐입니다”라는 내용의 교육. 어쩌면 다르다고 규정짓는 자체로 이미 장애인에게 편견의 상자를 씌워버리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그것도 장애 이해 교육이라는 공적인 무대를 빌려서. 그것도 대놓고.

이런 생각은 지난주 아들의 특수학교에서 열린 체육대회를 다녀오고 나서 더욱 확고해졌다. 거봐. 다르긴 뭐가 달라. 똑같잖아. 나랑, 내 딸이랑, 내 딸의 친구들이랑….

체육대회 당일.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참석을 했다. 큰 공 굴리기, 주걱으로 공 쳐서 굴리기, 풍선 불기, 계주 등의 게임이 이어지고 이 날의 하이라이트가 진행됐다. 부모들이 파란색의 긴 천을 양쪽에서 잡고 참가한 아이들 전원이 공중에 살짝 떠 있는 천 위를 걷는 시간이다. 초등학생들이 파란 카펫 위를 둥실둥실 걷는다. 한 명 한 명씩 출발선에 설 때마다 엄마들의 응원이 이어진다.

“누구야! 파이팅!” “와, 갑자기 런웨이로 바뀌네. 누구 아들이야. 왜 이렇게 잘 생겼어~”

출발선에 선 아이들은 살짝 들뜬 흥분감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다. 큰 키가 무색할 만큼 아기 같은 눈빛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다. 저 눈빛이 정녕 초등학생의 눈빛이던가! 우리 딸의 눈에서도 이미 몇 년 전에 사라진 그런 순진무구한 아기의 눈빛들이다.

하는 행동도 천사들 같다. 다 큰 초등학생이 파란 카펫 위를 잘 걷다가 자기 엄마를 발견하는 순간 기뻐하며 그 앞에 주저앉는다. 그러면 그 엄마는 까르르 웃으며 천을 잡던 손을 놓고 아이의 손을 잡고 완주를 끝낸다.

나도 마찬가지. 몇 발짝 잘 걷던 아들이 나를 발견하더니 내 앞에 와서 털썩 주저앉는다. 나 역시 까르르 웃으며 일어나 아들의 손을 잡고 완주를 끝냈다. 모든 게임이 마무리되고 이어지는 폐회선언. 내가 참여한 것은 아들 학교의 초등부 체육대회였는데 느낌상으로는 3년 전 열린 딸의 유치원 체육대회에 참여한 것만 같았다. 그 때와 많은 것이 비슷했던 것이다. 엄마들의 분위기와 아이들의 반응까지.

(사진:류승연)

그러면서 깨닫게 되었다. 발달장애를 가진 이 아이들은 단지 신체보다 어린 마음의 나이를 갖고 있을 뿐이다. 그것만 인정하고 나면 나머지는 하나도 문제될 게 없었다. ‘다름’이 아닌 ‘특성’이라는 것만 인정하면 되는 것이었다.

아이를 낳아 키우다보면 아이들 저마다의 특성을 발견하곤 한다. 첫째가 다르고 둘째가 다르다. 공주님 대접을 하며 키웠더니 진짜로 공주병에 걸려버린 아이도 있고, 유난히 경쟁심이 투철한 사내아이도 있다. 아빠를 닮아 입맛이 까다로운 아이도 있고, 엄마를 닮아 성품이 온화한 아이도 있다. 원래 나쁜 건 죄다 시댁 쪽을 닮고 좋은 건 전부 엄마 쪽을 닮았다고 생각하는 법이다. 흠흠.

어쨌든 그렇게 아이들이 가진 장애조차도 일반 아이들의 개인성을 인정하듯 하나의 특성으로 인정을 해버리면 그 때부턴 아이들이 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딸의 친구들 중엔 유독 옷 입는 것에 민감한 아이가 한 명 있다. 단추가 있는 옷은 죽어도 입지 않는다. 그 아이의 엄마는 강제적으로 단추 있는 옷을 입히는 대신 아이가 좋아하는 라운드 티를 사다 입혔고 주변의 모두는 “그러면 되지”라며 그 아이의 특성을 존중했다.

장애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강박이 심한 자폐증 아이가 한 명 있다. 모든 것이 항상 정해진 규칙대로 이뤄져야 하는데 어느 날 새로운 장소에 가게 되자 마음이 불안해졌다. 아이는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우우우” 소리까지 내며 낯선 환경 속에서 유일하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신의 몸을 이용해 스스로를 통제하려고 했다.

이 상황에선 어찌해야 할까? 남들 보기 민망하니까 아이를 통제하며 강제적으로 몸을 못 흔들게 해야 할까? 왜 그래야 할까? 단추 있는 옷이 싫은 아이의 특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줬듯이 불안한 감각을 통제하기 위해 상동행동을 하는 아이의 특성을 그대로 인정해 주면 안 되는 것일까?

장애를 바라보는 편견은 특성을 인정하지 않고 다르다는 전제를 두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네 살 난 아들이 계란과자 안 사줬다고 가게에서 떼를 쓰면 ‘미운 네 살’의 특성이라며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정신연령이 네 살인 발달장애 초등학생이 요술봉을 안 사줬다고 떼를 쓰기 시작하면 혐오의 눈빛으로 곁눈질하며 자리를 피한다. ‘미운 네 살의 특성’을 인정하듯 ‘발달장애의 특성’을 인정하기만 하면 같은 상황이라도 다르게 보일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드는 대목이다. 

(일러스트: Dmitry Guzhanin/shutterstock.com)

흔히 장애인은 우리와 다른 존재라고 규정을 지어버리기 때문에 그들의 참모습마저 간과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 체육대회 날 만난 아들과 같은 반의 다운증후군 여자아이. 아들보다 20cm 정도 작은 그 아이는 체구만 보면 5살이라 해도 믿을 정도다. 하지만 그 작은 몸에서 어찌나 밝은 성격과 열정이 솟아나오는지 똑순이가 따로 없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사람들에게 인사도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애정 표현도 잘한다. 장난기가 가득한 눈은 또 다른 장난을 치고 싶어 초롱초롱 빛이 난다. 그런데 난 그 아이의 반짝반짝한 눈을 보면서 문득 안쓰러움이 들었다.

저 아이가 사회에 나갔을 때 저 밝고 명랑한 참모습을 알아봐 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저 아이의 성격을 보기에 앞서 얼굴에 나타난 특징적인 외모로 저 아이를 먼저 규정해 버리겠지. 그 생각을 할 때마다 마음이 저릿하다.

일 때문에 나간 영국에서 아이가 세 살 때 자폐증 진단을 받은 한 아빠를 알게 되었다. 그는 말한다. 이민을 생각하고 자신에게 문의를 해 오는 장애 아이 부모들의 공통점은 ‘아이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 때문이었단다. 차라리 무관심하면 다행일 텐데 옆 눈길로 쳐다보는 흘김은 그대로 비수가 되어 부모들 가슴에 박혔다고. 이민까지 생각할 정도로.

그에 따르면 복지제도가 잘 되어 있다고 알려진 선진국에서는 이미 장애를 다름이 아닌 특성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자폐증 청년이 옆 테이블의 빵을 집어 먹어도, 다운증후군 아이들이 휴양지에서 수영을 해도, 누구도 옆 눈길로 흘겨보거나 놀리지 않습니다”라는 그의 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흔히 장애인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와는 다른 존재라고. 특히 발달장애인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알려진 것들의 대부분이 왜곡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낯선 소리를 내는 불쾌한 존재, 이상한 행동을 하는 괴이한 존재, 정신이 이상한 위험한 존재…. 나열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들 역시 우리와 똑같은 희노애락을 느끼며 사는 사람이다. 너무 다른 것에만 초점이 맞춰진 나머지 그들과 우리가 같다는 것에 대한 생각은 하지도 못하게 되어 버렸다.

‘발달장애’라는 육체 안에 갇힌 그들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유투브의 영상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캐나다에 사는 자폐아 소녀 칼리는 말을 못하는 대신 컴퓨터를 이용해 소통을 한다. 그녀의 ‘진짜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몇 분의 시간을 투자해 영상을 보고나면 그 때는 알게 될 것이다. 장애인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보면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The First 추천 콘텐츠 더보기
  •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이제 헤어 케어도 브랜딩이다!

  •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1년 사이 가장 주목할만한 초기 스타트업을 꼽는 '혁신의숲 어워즈'가 17일 대장정을 시작했다. 어워즈의 1차 후보 스타트업 30개 사를 전격 공개한 것. ‘혁신의숲 어워즈’...

  •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초개인화의 기치를 내건 스타트업들이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관광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틈새에 대한 혁신적인 시도 돋보였다!

  •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기업의 공간, 자산 관리를 디지털 전환시킬 창업팀!

  •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의 등장!

  •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유망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 맞춤형으로 지원한다!

  • 초록은 동색…“함께 할 때 혁신은 더욱 빨라진다.”
    초록은 동색…“함께 할 때 혁신은 더욱 빨라진다.”

    서로 경쟁하지 않을 때 더욱 경쟁력이 높아지는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