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벨라루스가 유럽이라고?
프롤로그: 벨라루스가 유럽이라고?
2017.07.12 16:15 by 박경린

“올림픽에서 들어 본 것 같은데?” “유럽에 있는 데잖아.” “러시아 아냐?”

‘벨라루스에 간다’는 얘길 처음 꺼냈을 때, 친구들 사이에선 추측이 난무했다. 하지만 그 추측 중 정확한 건 거의 없었고,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도 없었다.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그게 벌써 1년 전, 지난해 8월의 일이다.

(사진: Belarus/commons.wikimedia.org)

벨라루스를 처음 알게 된 건 ‘KOICA-UNV 대학생봉사단’으로 활동할 기회 덕분이었다. 대한민국의 대외무상 협력사업을 전담하는 기관인 코이카(KOICA)는 매년 한국 대학생들을 네팔, 몽골, 피지, 가나 등 18개국에 봉사단원으로 파견하는데, 내가 선택한 나라가 벨라루스였다. 당시 벨라루스에선 ‘지역경제개발’ 직무 관련해서 봉사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경제학도였던 내겐 안성맞춤이었다.

(사진: MONUSCOPhotos/flickr.com)

지원 후 3개월 동안 서류와 면접 심사를 거치면서 벨라루스라는 이름은 입에 완전히 달라붙었다. 인터넷을 통해서도 많은 공부를 했다. ‘벨라루스’라는 키워드로 찾을 수 있는 블로그와 게시물은 모두 챙겨봤을 정도다. 하지만 그건 순전히 내 경우다.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이 나라를 모르고, 관심도 없다. 아직도 어떤 친구들은 내가 러시아에 있는 줄 안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 아름답고 순수한 나라 벨라루스를 소개하는 ‘민간 외교관’이 되기로 말이다. 지금부터 매주 벨라루스를 통해 얻은 느낌과 경험, 정보들을 공유하려 한다.

아시아와 유럽의 연.결.고.리

벨라루스 지도

벨라루스에 간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게 어디 있는 나라냐?”고 물었다. 그때마다 나는 “러시아 근처에 있는 나라”라고 대충 얼버무렸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벨라루스는 동서남북으로 폴란드, 러시아, 우크라이나, 리투아니아, 라트비아에 둘러싸여 있다. 아시아와 유럽의 ‘연결통로’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해외로 가려면 무조건 비행기를 타야 하지만 벨라루스에선 기차와 버스만 타도 쉽게 국경선을 넘을 수 있다. 야간 기차와 버스 또한 잘 되어있어, 자고 일어나면 다른 나라 국경에 와있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단순히 쇼핑하기 위해 리투아니아나 폴란드에 가는 사람도 많다.

민스크에서 빌뉴스(리투아니아)로 가는 기찻길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Minsk)’에서 기차를 타면 리투아니아까지 3시간, 폴란드, 러시아, 우크라이나까지는 10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하지만 러시아를 제외하곤, 모두 비자가 필요하다. 단, 벨라루스의 도시 중 폴란드와 아주 근접한 곳의 거주민인 경우, 비자 없이도 폴란드 국경을 넘을 수 있다.

벨라루스 행정구역

벨라루스는 총 6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뉜다. 민스크 자치구를 중심으로 시계방향으로 비텝스크(Vitebsk), 모길료프(Mogilev), 고멜(Gomel), 브레스트(Brest), 그로드노(Grodna) 등 6개 주가 있다. 지방마다 인접 국가의 분위기를 많이 띤다. 동쪽 지방일수록 러시아 문화가, 서쪽 지방일수록 유럽 문화가 많이 발달하는 식이다.

늘 관광객의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산다. 언제나 카메라를 켜고 사진 찍을 준비가 되어있다!

벨라루스의 시계는 느릿느릿?

내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곳은 수도 민스크다. 수도라고 해서 서울의 번화가를 상상해선 곤란하다.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곳이 서울로 따지면 ‘시청’ 같은 기관인데도 그 근처 길거리는 텅텅 비어있다. 길을 걷다 사람들과 부딪혀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을 정도다. 면적은 대한민국의 두 배지만, 인구수가 950만 명에 불과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서울의 인구가 1000만 명을 넘는다는 걸 감안하면 사람이 얼마나 귀한지 가늠할 수 있다.

서울에서 쭉 나고 자란 나는 처음엔 이런 고요한 분위기에 익숙지 않았다. 오히려 심심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젠 이 나라 특유의 평화롭고 여유로운 분위기에 푹 빠져들었다.

한적한 도심의 길거리

벨라루스 국민은 벨라루스어와 러시아어를 공용으로 사용한다. 어릴 때부터 교육기관에서 두 언어를 모두 배운다. 가게 메뉴판과 지하철 역정보들은 벨라루스어로 쓰여 있지만 일상적인 소통은 모두 러시아어로 이루어진다. 실생활에 쓰이는 언어가 그렇다 보니, 나 역시 생존 러시아어를 배울 수밖에 없었다.(공무원이나 일반 상점 주민들은 의외로 영어를 거의 못한다.)

러시아어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겐 정말 탁월한 교육환경인 것 같다.

독소전쟁(獨蘇戰爭, 나치 독일과 소비에트연방의 전쟁) 승리를 기념하는 전쟁기념박물관

벨라루스는 구소련의 해체로 1991년 독립한 이후, 1994년부터 알렉산드르 루카셴코(Alyaksandr Lukashenko)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다. 1996년에 처음 임기를 연장했으며, 2001년 재선, 2006년 3선에 성공하며 현재까지 장기 집권하고 있다. 한국 나이로 23살인 내가 여태까지 살아온 기간보다도 더 오랜 세월이다. 대통령 임기가 끝날 때마다 투표하긴 하지만 벨라루스 사람들 모두 “대선을 치르는 건 사실상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대통령이 이동하면 그 일대 교통은 모두 통제될 정도로 대통령의 힘은 막강하다.

한 벨라루스 친구는 수도 외곽에 살고 있는데 고속도로가 단 하나뿐이라고 한다. 그래서 대통령은 물론 대통령의 아들이라도 지나갈라치면, 큰 불편을 겪는다고 했다. 하나뿐인 고속도로를 통제하기 때문에 대통령의 아들이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만약 그 일정이 출근 시간과 겹치기도 하는 날에는 회사는 무조건 지각이란다.

벨라루스 대통령 알렉산드르 루카셴코(Alyaksandr Lukashenko)

벨라루스는 대통령뿐만 아니라 정부의 힘도 막강하다. 휴대폰 이동통신사와 신문사를 비롯하여 정부가 독점하고 있는 분야가 많다. 그 때문에 사기업의 발달은 더디다. 또한, 외국 기업에 부과되는 세금이 현지 기업보다 월등히 높은 탓에 외국 기업투자 및 창업도 드물다. 그래도 벨라루스 정부는 지속적으로 대외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일하고 있는 UNDP(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 유엔개발계획)에서도 벨라루스의 WTO 가입과 세무사 심층 교육을 비롯한 많은 투자 및 사업 환경 개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다양한 나라들과의 파트너십도 구축하려 한다. 그중에서도 현재 가장 공을 들이는 파트너가 아마 중국이지 않을까 싶다.

러시아 정교가 80%를 이루고 있기에 로마 정교회 교회들이 시내 곳곳에 있다.

여행 다니면서 만난 사람들은 벨라루스에 대해 “아직 소련의 시대에 머물러 있는 곳”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들의 말처럼 성장 속도가 느리긴 하지만 그래도 천천히, 조금씩 변화가 오고 있는 것을 느끼는 부분도 많다. 다음 화부터 그런 흥미로운 변화의 실태를 차근차근 살펴볼 계획이다.

 

LAST

 

/사진: 박경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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