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번째 사연: 권태로움에 관하여
열네 번째 사연: 권태로움에 관하여
2017. 07. 14 by 오휘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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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일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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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일 년 중 절반이 흘렀어요. 날씨는 요즘 들어 유독 급격히 변했고,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저보다도 더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 같아요. 작가님은 반년 동안 잘 지내셨나요? 저는 조금 힘들게 지내온 것 같아요. 그동안 많은 일을 했고, 많은 생각 속에 빠져있었고, 많은 감정을 소비하고 지냈어요. 그러다 문득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생각하는 지경이 돼버렸어요. 인생에서의 권태기 같은 시기를 보내고 있달까요. 그래서 오늘은 제가 겪고 있는 권태로움에 대해 얘기해보려 해요.

평소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어요. 어느 정신없는 출근길, 지하철에 몸을 싣고 의자에 기대앉아 반대편 창가를 바라보는데, 문득 '시간이 딱 멈춰버렸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핸드폰을 꺼내볼 기력조차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이었어요. 그때부터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면 핸드폰은 잘 안 보게 돼요. 바깥 풍경들에 더 집중하기 위해서요, 어쩌면 삶의 권태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었던 것 같아요.

새로이 시작한 일과 평소에 좋아하던 취미들, 나를 행복하게끔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다 의미 없는 것들이 변하는 것만 같은 나날이었어요. 과거의 나를 돌아보고 지나간 시간에 집착하는, 막상 현실에서는 도망치려 애쓰는 나. 그래서 한없이 우울해지고 어딘가 갇혀 있는 자신이 안쓰러웠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뒤따르는 고충들이 있더라고요.

딱히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거나,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았던 성향이 최근엔 너무 부정적으로 치우쳐져서, 누군가 나에게 부정적인 견해나 생각을 내보일 때면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했어요. 평소엔 참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들도 비딱하게만 보였어요. 부정적인 덩어리들이 모여 결국엔 그 어느 것에도 집중 못 하는 시기에 다다르게 된 거예요. 무엇이 행복인지도, 중요한지도 모를 만큼요. 집중 가능한 범위에서 나를 억압하는 무언가를 포기해야만, 그래야만 더 삶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권태엔 이유가 없다고 하잖아요. 저는 어느 순간 이 권태로움을 떨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보다도 더 밝은 친구들을 만나 목이 아플 때까지 수다를 떨고, 좋아하는 페스티벌에 가서 정신없이 춤도 춰보고, 미친 듯이 일했어요. 그런 나날을 보내던 중, 저번 주말엔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어져 온종일 잠을 잤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차려 먹고, 좋아하는 에피톤 프로젝트 노래를 잔잔히 틀고, 작가님의 책 <그래도 사랑뿐>을 읽었어요. 정말이지 모든 감각이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 나를 온전히 맡길 수 있는 순간이었어요.

사색에서 오는 여유로움을 느낄 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알려주는 글이 떠올랐는데,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어요. 아마도 과거 속 행복에만 멈춰 있는 나는, 미래의 불투명함이 두려웠고 현재에 만족하지 못한 삶이 억누르는 느낌을 참지 못해 놓아 버리고 싶었던 것 같아요.

살아가는 게 그렇잖아요. 늘 똑같고 반복되는 일상을 어떻게 지내느냐에 따라서 내 생활이 달라지는 것. 끝없는 선택의 연속이라는 것. 순간의 선택으로 얻어지는 것들이 있다면 잃는 것도 있을 거예요. 이번 반년 동안 많이 되돌아본 것 같아요. 그 기간 동안 나를 믿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감정들이 극도로 줄어들어서 주변을 더 둘러보지 못했어요. 천천히 조금씩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 곁에서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많은 감정을 느껴보고, 현재의 삶에 다시 집중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이렇게 글쓰기로 마음을 달래보고(감정을 글에 담아내는 순간 행복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여행도 다니면서요! 단순하게만 살아간다면 늘 평화로울 텐데, 요즘의 저는 괜히 조금 복잡하게 살아왔던 것 같네요. 이 또한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함이라고 생각해요.

오늘은 여름밤의 바람을 느끼면서 달빛의 기운을 받아야겠어요. 늘 똑같았던 일상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말이어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다시 예쁜 나로 돌아가 일상을 즐기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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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째 쓰고 있는 컴퓨터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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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일 년 중 절반이 흘렀다니, 달력을 봐도, 보내주신 편지의 첫 부분을 아무리 읽어도 실감이 잘 나지 않습니다. 며칠 전, 아주 놀라운 사실 하나를 전해 들었습니다. 바로 월요일을 24번만 더 지내고 나면 올해가 다 지나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말도 안 된다며 직접 달력을 펼쳐 들었습니다. 올해의 남은 월요일들을 세어보았습니다. 정말이었습니다! 월요일을 24번만 더 지내고 나면 올해가 끝난다니, 문득 남은 반년이 무척 짧다고 생각됐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이란 이토록 간사하다는 생각도요. 어떨 때는 시간이 참 안 간다, 도대체 얼마나 더 버텨야 2017년이 끝나나 싶다가도, 그럴 때는 일 년이 참 짧다고 여기게 되니까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뒤따르는 고충들이 있더라.’ 저는 이 부분에서 몹시 공감했습니다. 어릴 땐 그저 쓰는 거라면 뭐든 좋았고, 글을 통해 돈을 벌고 살아갈 수만 있다면 뭐든지 쓰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아갈 수 있겠냐.’라는 말도 있듯,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다 보니, 쓰기 싫은 부류의 글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한 거죠. 광고 문구 작성 의뢰를 받았을 때, 언론사 보도 자료를 편집하는 업무를 할 때는, 한 문단, 아니, 한 문장을 쓰는 데에도 어마어마한 권태로움과 스트레스가 따랐습니다. 쓰는 것이라면 뭐든 하겠다고 매일 밤 기도했던 과거의 내가 미울 정도였습니다.

쓰기 싫은 글쓰기를 할 때, 그리고 쓰고 싶은 글쓰기지만 매일 밤을 새워야만 할 때, 저 역시 쓰는 생활에 대한 싫증을 느낍니다. 책을 한 권 만들 때마다, 아침 해를 보고 침대에 누굴 때마다 다짐합니다.

“이번까지만 하고 얼마간 푹 쉰다! 쉬고 말 거다!”

라고요. 물론 일을 마치고 어딘가로 느긋하게 여행을 떠난다든가, 마음 놓고 며칠 푹 쉬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만, 제법 여유로운 일상을 지내게 될 때도 또 다른 고민거리가 제 앞에 나타나곤 했습니다. 바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참 웃기죠, 이번 일만 마치면, 이번 프로젝트만 끝나면 쉬고 말리라, 일하지 않으리라 호언장담을 하다가도, 실제로 아무 일도 하지 않을 기회가 주어지면 청개구리마냥 바쁜 일상, 글 쓰는 일상을 그리워하니 말이에요.

저에게 권태로움이란, 어떤 파도 같은 것의 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파도의 높은 부분은 저를 힘들게 하고, 제 존재 자체를 뒤집을 정도로 맹렬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잔잔한 부분, 그러니까 여유의 시간은 저를 도로 안정토록 합니다. 하지만 내내 고요하고, 어딘가로 흐르지 않는 물은 썩기 마련이듯, 내내 여유로운 삶을 살다 보면, 지독한 권태의 늪에 빠져들기 마련이라고 생각했어요.

오늘은 새로운 주제로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조금 더 쉬어도 되지만, 이상하게 글을 쓰고 싶더라고요. 아무래도 권태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함인 것 같습니다. 지독한 피로감이 느껴질 때쯤이면, 다시 어제의 여유로움을 그리워할지도 모를 일이죠. 하지만 그것이 지나간 다음엔 또다시 얼마간의 여유의 나날들이 와줄 것으로 확신합니다.

내내 가뭄이었다가, 요 며칠은 시원한 장맛비가 내려주고 있습니다. 낡은 것들이 씻겨나가고 새로운 것들, 새로운 행복의 나날들이 올 것이라 생각하니 이렇게 개운할 수가 없습니다. 부디 권태롭게 느껴지지 않는, 새로운 일상을 지내게 될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일상이 행복하시길.

/사진: wizdata1·gunnar pippel / 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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