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었다. 이번 주 안에 합격자 발표가 난다는 말에 금요일까지 기다렸고, 금요일 오후 5시에도 아무 연락이 없자 회사에 전화한 날이.
“안녕하세요. 저번 주에 면접을 봤던 김석준이라고 합니다. 이번 주까지 합격자 발표가 날 거라고 했는데, 아직 연락을 못 받았으면 혹시 안 된 건가요…?”
“네. 그렇죠.”
그날이었다. 왠지 이번에는 합격할 것 같아서 금요일 오후에 홍대 투썸플레이스 구석에서 노트북을 켠 채 이 짓 저 짓을 하다가 불합격 사실을 알고 추운 날씨임에도 집까지 걸어가고 싶었던 날이. 전화를 끊고 노트북을 접고 가방을 멨다. 그리고 카페를 나섰다.
그날따라 중력은 조금 더 세게 느껴졌다. 기분 탓이었을까. 지구가 평소보다 더 빨리 도는 느낌도 받았다. 노트북 말고는 들어있는 게 없는 백팩은 평소보다 더 무겁게 느껴진 취준생은 면접에서 떨어지면 이런 느낌을 받는다. 말 그대로 어딘가로 ‘떨어지는’ 느낌이다. 중력이 더 무겁게 느껴지는 날. 한동안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밥은 잘 먹고 사냐는 인사가 결국엔 걱정으로 이어졌고, 나는 미안함과 속상함을 동시에 느끼며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도 괴로워해야 했기 때문이다.
취업전쟁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총알과 대포가 날아다니고 눈앞에서 피가 튀어야 전쟁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나는 취업전쟁의 최전선에서 매일같이 패배했다. 언제 승리할지 모르는 오래된 전쟁에서 지칠 대로 지친 병사는 포기할 힘도 없어서 가만히 서 있어야 했다. 패자와 승자, 그 중간을 택할 수 없어서 가만히 서 있었다. 그저 살고 싶을 뿐이었다. ‘잘’ 살고 싶은 욕심은 없었다. 부사는 내게 사치스러웠다.
‘풍족하게’ 살거나 ‘남부럽게’ 살고 싶은 생각은 없고, 그저 살고 싶을 뿐이다. 동사만 있어도 만족할 삶인데, 그것마저 쉽지 않았다. 구조를 탓하고 개인을 탓하는 사람들 속에 섞여야 할 텐데. 그것마저 욕심이다. 전쟁이 길어지면, 명분은 사라지고 희망은 멀어지고 증오만 남는다. 취업전쟁에서 적은 두 명이었다. 바로 자신 그리고 시간이다.
해당 콘텐츠는 김석준 에디터가 출간한 책 <안녕의 안녕>에서 발췌했습니다. 작가와 책에 대해 궁금하신 독자분들은 링크(예스24)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