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초야, 산책가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산초가 현관으로 달린다. 마치 우사인 볼트가 결승점에 도달하는 것 마냥 쏜살같이. 내가 아직 신발을 신지 않았는데도 문 앞에서 발을 동동거린다. 산초에게 산책은 바깥세상과 마주하는 교류의 창이다.
원래 산초는 산책을 즐기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게 뭔지 몰랐다. 내가 중·고등학생 때는 산초도 너무 어렸고, 나와 가족 모두 정신없이 바빠 따로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산초는 텅 빈 집에서 늘 혼자 있어야 했다. 산책이라곤 가끔 집 앞 슈퍼마켓 갈 때 데리고 나가는 것이 전부. 산초의 뇌 속 회로에는 산책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까. 산초에겐 ‘사회성’이 생기지 못했다. 어쩌다 길거리에서 다른 개들을 만나면 “낑낑”거리며 외면하기에 바빴다. 상대 개가 호기심을 갖고 다가오면 내 몸쪽으로 파고들었다. 두려운 존재로 인식한 것이다. 삼 년 전 아는 지인의 집에 며칠 맡긴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소위 ‘아웃사이더’처럼 굴었다고 한다.
반려견에게 산책이란? 견공에게 산책은 아주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산책은 과잉 섭취한 에너지를 소모하게 하고, 혈액순환을 자극해 각 신체기관에 산소를 공급하는 등 반려동물의 신체 상태를 적절하게 유지해준다”고 설명한다. 꾸준한 산책은 질병과 부상 위험을 줄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장점은 사회성 함양이다. 동물들은 보호자와 함께 달리고 호흡하면서 유대감을 쌓을 수 있다. 보호자 외의 다른 사람이나 동물들을 많이 보면 낯선 사람에 대한 공격성도 크게 줄어든다. (일러스트: Brovko Serhii /shutterstock.com) |
대학을 졸업하고,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산초를 관찰하는 시간이 늘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활기를 잃고 우울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잠자는 게 일인 것 마냥 늘어져 있기 일쑤. 우리 가족은 산초의 건강과 정신상태가 점점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어머니가 퇴근해서 버스에 내리는 시간에 맞춰 산초를 산책시켰다. 처음에 산초는 밖에 나가는 것 자체를 싫어했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았다. 집 근처 공원을 걸으면 금세 지쳤다. 그래서 잠시 걷다가 안아서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산초가 산책에 적응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평상시 산초는 ‘밥’에 환장한다. 밥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자다가 눈을 뜰 정도다. 이점에 착안했다. ‘파블로프의 개’(1902년 실시된 개의 조건반사 실험)를 응용한 것.
그래서 산책을 갔다 오면 간식을 조금씩 주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어느 순간부터 산책하는 걸 즐기기 시작했다. 시야가 넓어졌는지, 공원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탐색까지 하는 여유도 보였다. 장족의 발전이었다. 같이 산책을 하는 어머니가 놀랄 정도. 공원을 몇 바퀴 돌고 집에 가기 위해 안으면 아쉬운 표정마저 지어 보인다. 산초는 점점 산책을 즐기기 시작한 것이다.
반려견 산책 시 ‘목줄’ 꼭 챙기세요 최근 개에게 물리는 사고가 뉴스에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역시 예방. 산책 시 목줄을 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요즘은 애견 관련 쇼핑몰이 생길 정도로 애견의 스타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신발을 신기는 건 고려해봐야 한다. 전문가들은 강아지에게 신발을 신길 경우, 관절에 무리가 갈 가능성이 크다고 조언한다. 특히 집에서만 키우는 소형견은 대체로 과체중일 확률이 높고 상대적으로 다리가 약해 슬개골 탈구가 발생할 가능성도 크다. (사진: Javier Brosch /shutterstock.com) |
그러던 중 가족끼리 당일치기 여행을 가게 된 적이 있었다. 차로 이동하다가 시골의 어느 과수원에 내렸을 때, 차 안에서 갑갑했을 산초가 걱정돼 걷게 할 요량으로 산책을 했다. 평상시 산초는 우리의 발을 보며 보폭을 맞췄는데, 그땐 기분이 좋았는지 먼저 앞서갔다. 공이 통통 튀는 모양으로.
잘 걷는 산초가 귀엽기도 하고, 감격스럽기도 해서 동영상으로 당시를 담아봤다.
그때 주변에 사는 강아지 한 마리를 만났다. 사회성 없는 산초가 무서워하지 않을까 걱정을 하던 찰나. 웬걸, 산초가 먼저 다가가 그 강아지를 탐색하는 것이 아닌가. 이리저리 몸 냄새를 맡고 얼굴 쪽에 입을 들이댔다. 우리는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간식을 통한 훈련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비록 이제 고령의 몸이 됐지만, 이제라도 산초가 사회성이 생겼다는 걸 증명해준 셈이다. 뿌듯했다.
이젠 공원 가는 길에 만났던 커다란 ‘믹스’견도, 무작정 달려드는 어린 아이들 무리도 두렵지 않다. 예전 같으면 무서워서 내가 먼저 쫒아냈을 상대들을 요샌 자기가 먼저 다가가 아는 척을 한다. 이제 산초에게 산책이란 삶의 일부분이 됐다.
/동영상: 안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