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루스에는 노래방도, 영화관도 많지 않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흔히 가는 PC방도 찾기 어렵다. 도대체 여기 아이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놀까? 일단 위에 언급된 것들이 없다시피 하니, 모두들 밖으로 나온다.
민스크에서 길을 걷다 보면 10분에 한 번꼴로 마주치는 곳이 있다. 바로 공원이다. 요즘같이 바람 솔솔 불어 걷기 딱 좋은 날씨에, 벨라루스 사람들은 공원을 어떻게 활용할까.
‘공 하나에 까르르’, 소박하지만 여유로운 공원 풍경
가장 먼저 소개할 곳은 스비슬라치 강(Svislach River) 잔키 쿠팔리 공원(Janki Kupaly Park)이다. 어느 나라, 어느 도시든 물이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 민스크 중심부를 따라 흐르는 이 강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늘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즐길 수 있기 때문. 흡사 우리의 한강을 연상케 할 정도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할까?
한강과 마찬가지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제일 많다. 특히 벨라루스는 자전거 이용자들을 상당히 배려해주는 나라다. 이곳의 도보는 한국 2차선 도로에 버금가는 넓이인데, 그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게 바로 자전거 전용도로다. 거의 모든 도보에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고, 지하보도를 건널 때도 자전거를 위한 세심함을 갖췄다. 자연히 자전거 인구가 많아질 수밖에.
이 대목에서 벨라루스와 유럽을 구분 짓는 특징이 하나 등장한다.(유럽 대부분의 나라 역시 자전거 인프라가 잘 발달되어 있다.) 바로 인라인스케이트다. 필자도 초등학교 2학년 때, 아파트 단지 내에서 열심히 탄 기억이 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인라인스케이트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벨라루스에선 인라인스케이트가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우리 기억 속의 그것은 어린이 놀이용이었다면, 이곳에서는 더욱 다양한 연령대가 즐긴다. 함께 일하는 기관 동료들도 출퇴근 시에 강을 따라 타곤 한단다. 다 큰 어른들이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모습을 보면 괜히 귀엽다.
벨라루스의 공원에서 자전거만큼 많이 볼 수 있는 게 바로 공(ball)이다. 늘 오후가 되면 공원 공터에는 공을 가지고 나와 삼삼오오 어울리는 학생들로 가득 찬다. 통통 튀는 공을 따라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끊이질 않는다.
그런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처음에는 ‘얼마나 할 것과 가지고 놀 것이 없으면 저러고 놀까’ 싶기도 했지만, 이젠 그 여유가 부럽다. 어두컴컴한 지하에서 한나절씩 게임에 빠지고, 마주 앉아서도 휴대폰을 바라보는 우리네 풍경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공원 여흥의 화룡점정, 피크닉
외국 영화에 나오는 공원 나들이 장면은 늘 피크닉으로 마무리되곤 한다. 샌드위치를 담은 갈색 나무 바구니와 돗자리,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피크닉. 상상만 해도 낭만적이고 행복하다.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일상인 벨라루스 사람들이니만큼 피크닉은 빠질 수 없는 즐거움이다. 피크닉을 위해 양손 가득 장을 보는 사람들을 쉽게 접한다. 마치 한국 대학생들이 MT를 갈 때 온갖 채소, 과일, 고기를 싸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중에서도 절대 빠질 수 없는 건 역시 고기다.
벨라루스에서 하는 피크닉은 주로 ‘샤슬릭’ 바비큐 파티다. 우리가 삼겹살을 철판에 굽는다면 벨라루스에서는 돼지고기, 소고기, 양고기 등을 꼬치에 꽂아서 화로에 굽는다. 피크닉이 허락된 공원이라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도록 화로들도 미리 준비되어있다.
참고로 벨라루스에선 닭고기가 제일 저렴하며, 그다음은 소고기, 돼지고기 순이다. 돼지고기가 제일 귀한 고기인 셈이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우리나라에서는 꿈도 못 꿀 토끼고기를 즐겨 먹는다는 것이다. 레스토랑에 가면 흔하게 토끼고기를 맛볼 수 있고 파이 속 재료로 들어가기도 한다.
밥이 주식이 아닌 벨라루스 사람들은 피크닉 상차림으로 빵을 종류별로 올린다. 각자의 기호에 맞게 빵을 골라 먹기도 하고, 고기를 감싸서 먹는 또띠아가 차려지기도 한다. 고기를 찍어 먹을 소스와 각종 채소도 준비되어 있다. 주로 파프리카, 오이, 당근, 가지, 버섯 같은 것들인데, 우리로 치면 상추, 깻잎쯤 된다.
자국민의 공원 사랑을 아는지 모르는지, 야속하게도 벨라루스의 겨울은 너무 길다. 하지만 날씨가 풀리면 사람들은 평일, 주말 각자 다른 방법으로 따뜻한 날씨를 즐긴다. 민스크를 벗어나 근교에 있는 공원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도 덩달아 주말마다 새로운 공원을 찾아다니곤 한다.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없어도 일단 공원에 간다. 공원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인다. 하지만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조용함과 평화로움만은 여전하다.
한 주 열심히 산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포상의 시간. 그들은 그 시간을 자연과 함께하길 택한다. 벨라루스 사람들이 오래도록 이 여유를 간직했으면 좋겠다.
/사진:박경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