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어른, 어떻게 춤을’
‘어쩌다 어른, 어떻게 춤을’
2017.09.04 16:40 by 지혜

강경수 쓰고 그린, <춤을 출 거예요>

내가 허세가 좀 있나. 가만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다. 지금 살고 있는 소박하고 담백한 삶이 좋다. 좋긴 좋은데, 똑똑하고 예쁜 사람이 되어 주목받는 삶도 좋다. 부럽다. 더 똑똑해지고 더 예뻐지고 싶은 욕망이 이 안에 드글드글한데 막상 밖에서 보이는 일상과 외모는 소소하고 수수하다. 나 혹시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이 아닐까, 스스로를 의심하지만 역시 허세는 아니라고 결론 맺는다. 그저 욕망과 성격의 불일치가 낳은 결과일 뿐이다(라고 믿는다.)

내 생각에 똑똑해지고 예뻐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타고난 재능과 외모, 그것이 없다면 부지런해야 한다. 부지런하게 움직이면 시간과 기회가 충분하게 주어지므로 따라잡을 수 있다. 부지런함은 때에 따라서 ‘노력’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래서 중요하다. 안다. 아주 잘 알지만 나는 마치 사명처럼, 게으름만을 타고났다. 덕분에 평생을 덜 똑똑하고 덜 예쁘게 살았다. 간혹 유명한 피부과를 어렵게 예약해놓고도 당일이 되면 귀찮아서 못가는 사람이 있는데 그게 바로 나다. 이 구역에 나무늘보다. 자연스레 나의 욕망은 바깥 찬 공기 한번 마시지 못한 채 안에서 부글거리기만 하고, 의도치 않게 요즘 대세라는 ‘느리고 단순한 삶’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봄, 발레를 시작했다. 기대는 없었다. 봄바람에 들떠 살랑거리지만 뜨거운 여름에 가까워질수록 나는 다시 냉정하고 엄숙하게 타고난 본성을 되찾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지금은 여름이 지나고 가을, 예상이 빗나갔다. 여전히 발레를 한다. 이로써 발레는 내가 가장 오래, 그리고 꾸준히 하는 운동이 되었다. 기념할 만한 일이다. 어떻게 내가 이럴 수 있나.

(사진:Prostock-studio/shutterstock.com)

사실 발레는 내가 좋아할 만한 구석이 거의 없다. 발레, 하면 연상되는 여러 스트레칭 동작을 단 하나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다. 유연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몸이라 다리를 양옆으로 길게 뻗는 사이드 스트레칭을 90도 넘기기도 힘들다. 선생님이 억지로 누르곤 하는데 그때마다 너무 아파서 비명을 지른다. 스트레칭을 하다가 허벅지에 시커멓게 멍도 들었다. 겉으로는 우아하고 부드러워 보이지만 근력이 많이 필요한 동작이 대부분인데 나의 몸은 공원 산책만 해도 지쳐서 반나절은 드러눕던 몸이다. 수업이 끝나면 팔다리가 마음대로 후들거려 숟가락 들어 밥 먹을 기운도 없다.

발레와 나 사이에 대해 곰곰 생각해보지만 답을 찾지 못하겠다. ‘재미있다’는 말로는 뭔가 부족하다. 나는 왜 발레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춤이 좋으니까요,

<춤을 출 거예요>

 

SAMSUNG C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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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발레를 하기 전에는 별다른 관심이 안 들던 그림책이다. 다른 날과 다름없이 어렵게 발레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위에서 문득 이 그림책이 그리웠다. 아마 주인공의 표정 때문일 것이다. 꿈을 꾸듯 눈을 감고 활짝 미소 짓는, 진심으로 행복한 그 얼굴.

거실을 지나, 집을 나가, 풀을 넘고 숲을 지나, 강 위에서, 빗속에서, 바람 속에서, 폭풍 속에서, 춤을 춘다. 춤이 좀 쉬울 때도, 좀 어려울 때도 있다. 상관없다. 그저 춤을 춘다. 춤을 추는 상황은 늘 다르지만 주인공의 표정은 늘 같다. 이 얼굴은 아무리 봐도 지겹지 않다.

 

SAMSUNG CSC

 

몇 개 안 되는 단어들 사이에서 ‘그러다 보면’을 발견한다. 이 그림책의 매력은 바로 ‘그러다 보면’에 있다. 춤을 추는 주인공이 수많은 관객과 빛나는 조명 아래 서 있다. 그 무대는 언젠가 이루어질 수 있는 꿈이지만, 반드시 이루어 내야 하는 목표는 아니다. ‘그러다 보면’이 앞서 있기 때문이다. 춤을 좋아하는 마음이 먼저다. 춤이 좋으니까 춤을 추다 보면, 그러다 보면 멋진 무대 위에 발레리나가 될 수도 있겠지, 정도의 가벼운 기대가 춤에 대한 부담과 막막함을 덜고 즐거움을 더 하는 것 아닐까.

그렇게 주인공은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고운 표정으로 춤을 춘다.

‘춤이 좋으니까요’

이쯤 되니 춤을 왜 좋아하는지 묻고 싶던 마음이 사라져버린다.

나는 내일도 발레를 하러 간다. 발레가 좋으니까.

크리스마스까지 발레를 열심히 하고 있다면 나에게 발레복을 하나 선물하려고 한다. 평소 몸에 두르는 것은 온통 단정한 무채색이지만 발레복만큼은 진하고 화려한 색을 입겠다.

내 남은 생에, 그냥 좋으니까 좋은 무엇을 자꾸자꾸 발견하길 그리고 지속하길 바란다. 그림책 속 주인공 얼굴이 참 예뻐서, 그런 표정을 종종 지을 수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 그런다.

  Information

 <춤을 출 거예요> 글·그림 : 강경수 | 출판사 : 그림책공작소 | 발행 : 2015.03.30 | 가격 : 11,000원

 

/사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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