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번째 사연: 이상적인 사랑
열여섯 번째 사연: 이상적인 사랑
2017.09.20 15:52 by 오휘명

 

SENING_BLUE

상수동에서

1

사람들은 말하곤 합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자.”

그리고 제가 정말 하고 싶어서 하려고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연애’입니다. 제가 주로 관심을 두는 것도 항상 연애입니다. 그 외에는 딱히 큰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흔한 취미나 친구들을 만나는 것, 공부하는 것, 일하는 것,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이 제게는 딱히 없습니다.

가수 이소라 씨가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본인은 노래를 할 때 비로소 행복한 사람이어서, 노래를 대충 해버리면 자기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리는 것 같다고. 저에겐 연애가 그런 것입니다.

제게는 두 번의 연애경험이 있고, 그중 한 번은 진행 중입니다. 지나간 한 사람은 동갑내기였고, 지금 만나는 사람 역시 동갑내기입니다. 옛 친구는 6년 정도 만났었고, 지금 사람과는 2년째 연애 중입니다.

짧지 않은 기간, 한 사람과 만남과 이별을 겪었고, 지금의 사람과 2년째 만나는 중에도 느끼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누군가 제게 ‘이상적인 관계란 무엇인가?’ 묻는다면, 저는 ‘서로에게 조금은 무관심해도 좋을 관계’라고 대답할 겁니다. ‘관심이 없음’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입니다. 거리가 멀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아니라, 두 사람의 밀접함의 정도가 적당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거죠, 서로 떨어져 있어도, 몇 시간 동안 연락이 되지 않아도, 가끔은 혼자 영화를 봐도 아쉬워하거나 서운해하지 않는 사이. 무관심이 아니라 무심히 서로를 인정해주는, 같이 있지 않아도 마음 한 편에 상대방을 떠올리는 사이.

고등학생 시절 만났던 첫사랑과는 워낙 잘 맞고 잘 통했습니다. 당시의 저는 줄곧 꿈꾸었던 이상적인 연인의 관계를 아주 공들여 형성해갔습니다. 아주 친밀한 관계. 평생의 친구와도 같은 관계. 그러나 그 친밀함은 훗날 제게 독이 되었습니다. 행복이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 후 어느 날, 제게 몇십 살의 나이 차이가 있는 연인들을 바라볼 기회가 생겼고, 저는 그 둘 사이의 나이를 비롯한 여러 차이가 가져다주는 의미들에 대해서 곱씹어보았습니다. 관계에 있어,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것을 보고 느끼고 자라나면, 물론 공감은 잘할 수 있겠지만 어쩌면 그게 전부가 아닌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요. 공감과 공통점을 넘어선 공유와 교감이 있다는 것을요.

요즘은 또 다른 생각이 종종 제 곁을 스쳐 지나갑니다. 좋은 관계를 위해선, 생각의 다름은 괜찮아도 가치관은 비슷하게 생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서로를 대하는 태도나 마음가짐에 대한 가치관 말입니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보고 싶으면서도, 그 여정에 과연 종착역이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항상 존재합니다. 저는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첫 이별 후, 한때 그렇게 좋아서 만났어도, 결국은 헤어지게 된다는 걸 비로소 몸소 겪었을 땐, 사랑이란 정말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낭비에 불과했구나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훨씬 더 많이 흐르면, 언젠가 한때 제가 하루하루 느꼈던 것들이 전부 어떠한 귀중한 가르침을 줄 것도 같다는 생각입니다.

저도 언젠간 저와 잘 맞는, 잘 맞지 않아도 서로를 옭아매지 않고, 서로가 아니어도 잘 살 거 같은, 그렇다고 무관심하지 않고 무심한 애정으로 대하는, 침묵이 지루하지 않고 떨어짐이 아쉽지 않은 사랑, 잔잔한 영화와 음악과 글에 함께 감동하는, 느끼는 것에 감사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까요?

 

WB

합정동에서

2

편지 잘 읽어보았습니다. 편지를 보내주신 분께선 자신이 조금 별나단 식으로 말씀하셨지만,

사랑만큼이나 중요한 게 과연 있을까요? 사람들은 모두 아닌 척하지만, 분명 사랑을 몹시 중요한 삶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사랑이 모든 것 중 제일, 저도 어느 정도는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편지를 읽는 동안 약간의 의구심 같은 것이 생겼습니다.

“저도 언젠간 저와 잘 맞는, 잘 맞지 않아도 서로를 옭아매지 않고, 서로가 아니어도 잘 살 거 같은, 그렇다고 무관심하지 않고 무심한 애정으로 대하는, 침묵이 지루하지 않고 떨어짐이 아쉽지 않은 사랑, 잔잔한 영화와 음악과 글에 함께 감동하는, 느끼는 것에 감사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까요?”

라고 말씀하셨지요? 저는 실례가 안 된다면, 이쯤에서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과연 편지를 보내주신 분께서 저런 사람을 쉬이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잘 맞지 않아도 서로를 옭아매지 않는다? 상대방이 당신을 너무도 사랑하고, 말과 마음을 조절하는 것이 아직은 서툴러서 당신을 조금 옭아매게 된다면, 그 부분부터 당신과 그 사람의 관계는 다시 ‘잘 맞지 않는 관계’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본인께서 가장 관심을 두고 있고,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은 연애라고 말씀하고 다니시면서, 연애 상대가 본인을 옭아매는 것은 또 싫다고 생각하시다니요. 저는 편지를 읽는 동안, 제보자님께선 연애라는 민감한 관계를 다소 이기적으로 생각하고 계신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기분이 나쁘시다면 죄송하지만, 제 본심은 그렇습니다.

사랑을 기반으로 한 연애라는 관계에서, 한쪽이 약간의 거리를 뒀으면 좋겠다 하는 욕심을 가진다면, 반대로 다른 한쪽은 상대방을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에, 되도록 거리가 좁혀졌으면 좋겠다 생각하게 되는 것도 당연한 현상입니다. 확신컨대, 제보자님께서 바라는 위와 같은 사람은 앞으로도 만나기 힘들 것입니다.

이상형이 뭐예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연애란? 그런 질문을 했을 때, 사람들은 가지각색의 사람과 관계가 좋겠다며 대답합니다. 하지만 시간을 두고 바라보면, 그들 중 이상형을 만나고,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관계를 이끌어가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다만 그냥 좋기 때문에, 이대로도 행복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누군가와 만남을 이어갑니다.

이대로도 좋은, 다만 그냥 좋은 연애를 하려 애써보세요. 응원하겠습니다.

덧, 극과 극의 다른 두 사람이 주인공이었던 제 소설의 마치는 말을 덧붙입니다. 이 글이 제보자님께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상적인 사랑은 어떤 것일까, 아니, 있기는 있는 걸까?”
“지금 만나는 그 여자가(혹은 남자가) 정말 제 사람이 맞는 걸까요?”

<12장. 저자 후기> 중에서...

카페의 구석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다 보면, 이메일 또는 다른 여러 연락 수단을 통해 종종 그런 고민을 듣게 됩니다. 사실 작가란 글을 쓰는 사람일 뿐이지 현자 혹은 상담사가 아니므로, 그럴 때마다 난감한 기분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랑이라는 소재로 자주 글을 쓴다고 해서, 자신의 사랑을 잘 챙기는 것만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만, 잘은 모르겠지만, 저는 종종 ‘이상적인 사랑’에 가까운 관계들을 종종 눈으로 목격하곤 합니다. 때로는 사소한 다툼을 하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서로를 긁어대고 옭아매는 일이 없이 존중하며, 위해주며, 걱정해주는 관계를 보고 있자면, 저는 저의 마음까지도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는 겁니다. 이상적인 사랑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런 모습과 가깝지 않을까요?

이 이야기는 그런 ‘이상적인 사랑’을 찾고자 노력했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던, 그랬기 때문에 서로를 그리워했던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효빈과 성하의 시선과 마음을 통해 그 과정을 그리고, 궁금증을 풀어보려 했습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이상적인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아니, 있기는 있는 걸까요?

지금 당신의 옆에 있는 사람이 정말 당신의 사람이 맞는 걸까요?

작중의 효빈은 고고한 집안에서 반듯하게 자라난, 무채색의 코트가 잘 어울리는 미남이었습니다. 반면 성하는 여러 매니악한 취향들을 고수하며, 짧은 바지와 항공 점퍼를 즐겨 입는 단발머리 소녀였습니다. 그리고 둘은 한낮의 지루한 카페에서 마치 사고처럼 첫 만남을 갖게 됩니다.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서로에게 처음부터 끌렸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미지의 세계였습니다. 충격적인 사랑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강렬하고 위태로운 사랑의 시간도 잠시, 그들은 각자의 약한 마음으로 인해 오해를 품고, 결국 이별을 하게 됩니다. 저는 이 과정들을 통해 보통의 연인들이 불통(不通)으로 인해 서로를 혹은 자신을 오해하고, 결국 이별에 이르게 되는 모습들을 묘사하고 싶었습니다. 사람은 ‘웬만해선’ 잘 변하지 않는 동물들이고, 사랑의 감정 외에도 질투, 서운함, 변덕스러움을 함께 지닐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렇지만 둘은 서로를 그리워하는 동안, 자신과 정반대였던 그 사람의 몇몇 모습들이 사실은 자신에게도 어렴풋이 스며들어 있고, 알게 모르게 사랑하는 사람과 닮게 돼버린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결국 두 사람은 제법 비슷해진 모습과 마음으로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됩니다. 비가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을 섞어버리는 시원한 비가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사실, 소설은 소설이고, 책 바깥의 지나치도록 현실적인, 마치 사진과 같은 ‘진짜 관계’는 다를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말씀드리고 싶은 겁니다.

조금 다르면 뭐 어때요?

우리는 각자가 부모님의 훌륭한 작품들이고, 공장에서 찍어낸 제품들처럼 모두가 같은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서로에게 맞추거나, 서로를 ‘닮아가며 사랑해야’ 합니다. A라고 할 수 있는 나, 그리고 Z라고 할 만큼 나와는 다른 그 사람, 그 둘이 만나 M 또는 N과 같은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 정말 멋지지 않나요? 아니, 지금 이 순간, 이미 사랑하는 누군가에 의해 조금 더 새로운 사람이 되어 이 글을 읽고 계신 걸까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을 만나 새로운 사람이 되세요, 그리고 둘의 작품인 그 사랑을 이어가세요.

당신들의 사랑을 응원하겠습니다.

 

/사진: vectorfusionart / shutterstock.com, Georgii Shipin / shutterstock.com, welcomia /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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